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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교육정책이 진정 '수월성 교육'인가?

'본말전도'된 MB식 교육정책

등록|2009.12.26 11:42 수정|2009.12.31 20:10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보수세력들의 비판적 공세가 갈수록 드세지고 있다. '자율'과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애초의 공약은 지키지 않고 '학원 야간수업 금지', '외고 입시 개편안' 등 관치교육으로 정부가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4일 조선일보는 '사교육의 덫에 걸려 MB 교육정책의 상징인 자율과 경쟁 정신이 퇴색되고 있으며' 서울대 백순근 교수의 말을 인용, '자율과 경쟁과 사교육 줄이기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는 규제보다, 못하는 학교를 끌어올려 공교육의 품질을 높여야 달성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사실 이런 입장은, 지난 17대선 때부터 줄곧 한나라당이 주장해오던 내용이다. 당선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에서도 시장원리가 적용돼야 한다(아시아경제, 2007. 12. 19)'고 주장해왔으며, 이같은 입장은 '관치에서 자율로 교육의 자율경영을 강화하겠다'는 한나라당 17대 대선 공약집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원리와 원칙을 따지기 전에 현 정부의 교육정책의 목표가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원리와 원칙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과 동등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해, 현재 보수진영들이 맹렬히 추종하는 시장원리는 교육정책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MB 정부의 교육정책 = 수월성 교육 = 시장 원리

지난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교육정책은 노무현 전 정부까지 이어져 왔던 '평준화 교육정책'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출발하였다. 평준화 정책은 학교간의 격차 해소 그리고 교육기회 확대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교육의 대량화와 운영의 관료화를 심화시켜 교육의 질을 보장하지 못했으며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에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획일적이고 평준화된 교육체제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수월성을 보장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아시아 경제, 2008. 11. 5)'고 주장하였다.

수월성이란 개별 학생이 개인 내적으로 자신의 적성, 소질, 잠재력 등을 최대한 계발시킨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수월성교육이란 일반학교 교육에서 학생들의 적성, 재능, 잠재력을 조기에 발굴·계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하여 각 학습자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시키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수월성 교육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현재 산업구조가 지식기반산업으로 전환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단순히 학생들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제경쟁시대의 흐름에 맞춰 창조적인 고급 두뇌를 양성하는 교육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학생들 저마다 타고난 소질과 적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계발하고 최대화하여 학생들 개개인이 최고 수준의 수월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공교육의 전문화, 특성화, 다양화 및 학생들의 프로그램 선택권 보장함으로써, 학생들에게 타고난 소질과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시장원리를 통해 수월성 교육의 특징인 전문화, 특성화, 다양화, 선택권 보장을 실현하겠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정책들이 바로 학업성취도 평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등이었다. 다시 말해, 시장원리란 전술한 수월성 교육의 실현을 위한 일종의 '수단'이다. 출범 당시 MB 정부 교육정책의 목적은 학교의 자율화와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질을 높여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기회를 부여하고,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교육의 문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비 지출과 대학진학률, 그리고 서열화된 대학구조 등과 같은 사회·정치적 문제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단순히 시장경제원리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원칙론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시장원리는 수월성 교육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시장에서 개인은 무한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로 나누어진다. 자율과 경쟁이 바로 시장경제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월성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의 적성, 재능, 잠재력을 조기에 발굴·계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하여 각 학습자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시키는 것이지 학생들을 승자와 패자로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더불어 학습자의 역량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공부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와 '열의'이다. 이는 결코 자율과 무한 경쟁의 논리로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 없다. 학교의 자율과 경쟁을 통해 공교육을 전문화, 특성화, 다양화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수월성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장원리의 도입이 교육 분야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요컨대, 노무현 전 정부의 교육제도를 관치로 명명, '관치에서 자율로 교육의 자율경영을 강화 하겠다'고 외쳐놓고, '외고 입시 개편안', '자율고 학생선발 추첨결정' 등 현재 교육제도에 깊숙이 개입해서 '진정한 관치'를 보여주고 있는 MB정부의 태도는 시장원리만으로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수 세력들은 수월성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세력들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시장원리 궤도에 다시 올려놓기 위해 불철주야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의 목적이 아이들의 소질과 적성개발을 위한 수월성 교육이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채,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자진해서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수단이 목적으로 경도되는 현실은 한국 교육의 오래된 자화상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인교육으로 아이들의 내재된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를 위한 효율적인 지식 전달이 주입식교육으로 대체되어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배해왔다. 모든 것을 경쟁과 효율성(학업 성취도)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논리 앞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정치로부터, 자신의 관심과 적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왔다.

이같은 현상은 MB 정부가 내세웠던 수월성 교육체제하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원리는 수월성교육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자 방법이다. 국가성장단계에 따라서 기업들의 자율과 경쟁의 수준도 달라진다. 다시 말해, 정부는 한국 교육문제의 특수성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방식과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월성 교육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공부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불어넣을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우선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 재능, 잠재력을 조기에 발굴·계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경쟁과 자율성만을 강조하는 교육 제도 안에서 가능한가? 수능시험 때마다 아이들을 자살로 몰고 가는 주범은 지나친 경쟁의식에 있는 것이 아닌가? 피라미드식으로 서열화된 대학체계 아래서 자신의 적기·적성보다는 이름 있는 대학을 선택하는 아이들은 무엇으로 구제할 것인가?

막스 베버(Marx Weber)는 효율성과 계산가능성을 통해 부의 증대를 추구하고자 했던 서구자본주의 사회의 합리성이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고 소외시키는 상황을 '아이언 케이지(Iron Cage)'라고 명명했었다. MB정부의 교육정책을 볼 때마다 베버의 '아이언 케이지'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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