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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로 즐기는 고은의 만인보

창작오페라 고은 만인보 4편 '겨울그림자'

등록|2009.12.27 20:45 수정|2009.12.27 20:45
박정희 정권이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정권 유지에 대한 야욕을 불사르고 있던 시절, 대학생 이현철은 달동네 야학에서 신념을 가르치고 있다. 지게꾼 아저씨의 도움으로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게 된 정순이, 신문팔이 김상진 등 야학의 학생들은 그곳에서 육체적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견뎌내며 역사와 현실을 배워간다. 이때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에 성공한 정부는 일체의 비방을 금지하는 긴급조치를 선포하고, 야학을 '의식화의 장'으로 규정해 전국의 모든 야학을 철거시키라고 명령한다. 이를 반대하는 민주화투쟁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독재타도를 외치는 서울역 앞 시국 성토집회에는 군중들이 몰려들며 긴장감이 고조되는데….

▲ 지난해 공연된 오페라 만인보 1편의 장면 ⓒ 김상기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萬人譜: 만인의 족보)를 근간으로 시대정신을 노래하는 창작오페라가 있다. 사단법인 전북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겨울그림자'(만인보 4편)가 고은의 고향 군산에서 무대에 올려지는 것.

2005년 만인보 1편, 2006년 만인보 2편, 2007년 만인보 3편에 이은 4번째 작품이다. 지난해에는 중간점검의 차원에서 1편을 각색ㆍ보완하는 공연을 가진 바 있다.

만인보는 30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한다. 1986년부터 시작해 23년간 3800여명의 인물 스토리를 시로 썼다. 세계 최초로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시로도 유명하다. 특히 작가가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만났던 특정 인물들을 실명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러니 그 하나하나의 시 속에는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수밖에.

오페라 '만인보'는 그렇게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시대정신을 설정하고, 그 시대정신을 적절하게 표현해낼 인물을 만인보에서 끄집어 내 오페라를 완성시켰던 것.

조시민 전북오페라단장은 "고은의 시는 투박한 것 같지만, 가슴을 뛰게 하는 생명력이 있다"며 "특히 만인보 속에는 승리자가 아닌 모든 민중에 의해 역사가 이뤄졌다는 사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라고 밝혔다.

전북오페라단의 만인보 시리즈는 지금까지 1편 일제강점기, 2편 한국전쟁 전후, 3편은 4·19와 5·16사이를 다루었으며, 올해 4편은 70년대, 그리고 내년부터 해마다 한 편씩 5편 6편 7편을 완성해 만인보 속 인물들이 살았던 전 시대를 오페라로 올릴 예정이다.

공연 방식도 독특하다. 역사의 주역이 특정 인물이나 영웅이 아닌 민중임을 강조하기 위해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특별히 드러내지 않는다. 굳이 공연의 주역을 찾는다면 합창단원 정도. 군산시립합창단원들이 평범한 옷차림으로 무대를 주도하며 총 11의 합창곡을 부른다. 이들이 바로 민중이며, 이들의 노래가 바로 민중의 정신인 것이다.

음악도 70년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신중현의 음악과 통기타 음악을 최대한 활용했다. 오페라 형식에 맞는 노래를 부르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성을 가미하는 형태다.

조시민 단장은 "만인보 전체를 이해하고 글을 써야만 하는 특성상 대본 작업이 늦어져 극의 완성도가 조금 미진해보일 수도 있지만 성악과 판소리를 동시에 섭렵한 김흥업을 비롯한 정상급의 성악가, 세계인명사전에도 올라있는 유능한 허걸재 작곡가, 전주시립극단 최균 연출가 등의 합세로 멋진 공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28일과 29일 양일간 오후 7시30분에 공연된다. 특히 28일에는 고은 시인이 직접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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