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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슬픈 얼굴 하지 말아요

박물관 이야기1- 박물관에서 만나는 얼굴

등록|2009.12.29 10:40 수정|2009.12.29 10:40
국립중앙박물관 3층 중앙아시아 관에 가면 우즈베키스탄관이 있습니다. 동서양 문화가 접목된 묘한 분위기의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건너 뛰어 이 시대까지도 존재하며 우리들에게 표정으로 말을 하는 유물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우상의 머리기원전 1500-1350년 사마르칸트 고고학연구소 소장 수르한다리야 자르쿠탄 출토 ⓒ 정민숙


<우상의 머리>를 보고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이 유물의 용도는 알 수 없답니다. 너무 울어서 눈이 부었을까요? 슬픔이 너무 진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마음이 슬퍼서 그렇게 느껴진 것일까요? 기원전 1500~1350년대에 만들어졌다는데, 서기 2009년도에 저렇게 생생한 얼굴로 저와 만나고 있습니다. 동양사람 모습도 아닌, 서양사람 모습도 아닌, 독특한 느낌의 모습입니다.

쿠샨왕자의 머리1~2세기 달베르진테파 출토 ⓒ 정민숙

<쿠샨왕자>는 우즈베키스탄관에서 가장 우아하고 잘 생긴 꽃미남왕자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위엄있는 귀공자 같으면서도, 너무 경직되지 않은 부드러움, 온화함을 느꼈습니다.

본래 등신대인 이 상은 현재 머리부분만 존재하며, 뾰족한 원추형의 모자는 지위를 추정하는 근거가 되는데, 원추형 모자는 쿠샨동전에 새겨진 왕과 마투라마트 등의 유적지 출토품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동서문명의 십자로 우즈베키스탄의 고대문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왕자의 상은 균형잡힌 얼굴,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표현, 크게 뜬 눈에서 헬레니즘과 파르티아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모자표면에 붙어 있는 동그라미 문양과 모자 아래쪽 연주문 장식은 원래 모자에 부착된 귀금속이나 보석장식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부처의 얼굴수르한다리야 카라테파 출토 3~4세기 사마르칸트 고고학연구소 소장 ⓒ 정민숙


<부처의 얼굴>입니다. 유물의 제목을 보지 않았다면 잘 모를 뻔했습니다. 꼭 다문 입술에서 위엄을 느꼈습니다. 머리카락의 끝부분과 얼굴만 남아 가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면서 어쩐지 그 앞에서 명상이라도 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그 고요함. 그 앞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사실적인 표현에서 간다라 불상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답니다. 그런데 곧게 뻗은 머리카락과, 다소 짧은 얼굴형, 엄격해 보이는 표정은 그 지역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신의 머리2~4세기 수르한다리야 테르메즈 출토 사마르칸트 고고학연구소 소장 ⓒ 정민숙



부서지고, 마모가 많이 되었어도, 눈을 지그시 뜨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한 모습에선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머리만 남아 있어도 무섭지 않습니다. 이상한 것은 왼쪽 신의 모습에서보다, 마모가 많이 되어 이목구비의 형태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오른쪽 신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가끔 형태가 완전하지 않아도 본래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향기를 뿜어내는 것 같습니다.

신의 머리1~2세기 달베르진테파 출토 예술연구소 소장 ⓒ 정민숙


불교의 신상 중 하나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단정한 이목구비, 이런 특징들은 헬레니즘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시대에 나타나도 미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살짝 미소까지 지은 모습에서 바라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웃음이란 유물에서조차 그 힘을 발휘합니다. 이 웃음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보살2~3세기 달베르진테파 출토 예술연구소 소장 ⓒ 정민숙


보살 2~3세기 달베르진테파 출토 예술연구소 소장 ⓒ 정민숙


대형 불상입니다. 역시 <보살>이라는 유물 제목을 보지 않았다면, 보살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모습니다. 다른 유물들과 달리 반만 유리로 격리되어 있고 공개되어 있는지라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역시 근엄함을 느꼈습니다.

전사의 머리 기원전 1세기 할차얀 출토 예술연구소 소장 ⓒ 정민숙


마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것 같습니다. 전쟁 중에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을까요? 아니면,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을까요?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워 하는 것일까요? 작은 디카로 찍으니 그 슬픔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기원전에 만들어져 시공을 초월해서 우즈베키스탄이 아닌 대한민국 서울에서 만나다니... 갑자기 삶의 연속성과 찰나에 지나가는 짧은 인생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벽화편 7세기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출토 ⓒ 정민숙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편>입니다. 지난 10월 31일 KBS1TV의 <역사스페셜>(역사스페셜 바로가기)에서 '연개소문은 왜 투르크에 사신을 보냈나'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했습니다. 고구려가 보낸 사신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에 나와 있어 그 시기의 한국인과 국제정세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아주 흥미롭게 봤습니다.

방송으로 본 후 유물을 만나니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 얼굴에서는 뭔가 두려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준비(전쟁 준비? 공격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크게 위로 치켜뜬 눈과 눈썹이 뭔가 깜짝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보는 사람까지 어쩐지 긴장을 하게 합니다.

참 다양한 표정을 지닌 유물들... 그 중에서도 <우상의 얼굴>과 <전사의 머리>에서 느낀 슬픔은 강도가 세서 박물관을 나와 집에 와서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그 유물들에게 '그런 슬픈 얼굴 하지 말아요'라고 나직하게 이야기 해주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유물의 자세한 내용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간한 <동서문명의 십자로 우즈베키스탄의 고대문화>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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