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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의 숫눈

순수와 용기

등록|2009.12.29 13:42 수정|2009.12.29 13:42
순수, 헤이리의 숫눈

12월 27일 오후 들어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두어 시간 만에 5cm쯤이 쌓인 숫눈(쌓인 채 그대로 있는 눈)이 되었습니다.

▲ 헤이리 ⓒ 이안수



크리스마스 날에 10여 분간 몇 송이가 날리긴 했지만 쌓이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첫눈인 셈입니다. 모티프원의 2층에서 청소를 하면서 내려다본 바깥 풍경은 사람도 차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순백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청소기를 놓고 곱게 뿌려진 저 눈밭위에 제 발자국을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순결한 눈밭 위에 제 발자국을 찍는다는 것은 순수의 오염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곧 다른 사람들에 의해, 혹은 자동차 바퀴에 의해 자국이 날 테지만 그 첫 흔적이 저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다시 내려다 보았을 때는 자동차 바퀴자국과 팔자걸음의 사람들 발자국이 여기저기 박혀있었습니다. 사실, '순수'는 제 마음속에 있어야 되는데 저는 부질없이 눈 위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 헤이리 갈대늪 ⓒ 이안수



용기에 대한 부상(副賞)

어제 내린 눈을 그대로 이고 있는 잣나무의 솔잎이 설화를 피웠습니다. 주목도 눈을 한줌씩 쥐고 있고, 마른 강아지풀도 눈을 그득 얹고 있으니 다시 가을처럼 화사했습니다. 눈을 입고 있는 장독대는 더욱 의초로운 모습입니다.

헤이리의 첫눈

ⓒ 이안수



저는 아침 해가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눈밭위에서 쓰레기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새 한마리가 제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평소에는 저와 상당히 거리들 두던 녀석이었습니다. 조금만 가까이 가도 '포로록' 날갯짓 소리를 내며 자리를 떴었지요. 오늘은 딴판이었습니다. 저와 1m의 거리로 가까워져도 날아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쌓인 눈 때문에 먹이를 구할 수 없었던 녀석이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작은새의 용기

ⓒ 이안수



저는 분리작업을 끝내고 이 새의 용기에 대한 칭찬으로 땅콩 한접시를 선물했습니다. 이 녀석은 접시 속에 들어가 부상(副賞)을 즐겼습니다.

작은 새의 만찬

ⓒ 이안수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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