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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호텔리어? 반말 호통은 예사

[체험기] 폼나는 호텔 서빙 알바생의 하루

등록|2010.01.02 12:05 수정|2010.01.02 12:05
'알바'의 계절이다.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과 방학을 맞은 청소년, 대학생들이 저마다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처음 알바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일 중 하나가 호텔(연회장) 서빙 아르바이트다.

'호텔 알바'는 수시로 단기인력을 모집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장·단기로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보수를 비교적 빨리 지급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호도가 높다. 또 호텔에 대한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호텔 알바의 인기를 돋우고 있다.

그러나 정말, 호텔에서 일하는 게 드라마에 나오는 호텔리어 주인공들처럼 폼 날까? 호텔에서 일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착각임을 알 것이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좀처럼 구할 수 없었던 얼마 전 처음으로 해 본 며칠간의 '호텔 알바' 경험을 한 자락 늘어놓으려 한다.

폼 나는 호텔 알바, 만만치 않다

▲ 호텔을 배경으로 한 MBC 드라마 '호텔리어'의 등장인물. ⓒ MBC



아침 9시, 각 인력업체가 올리는 인터넷 구인광고 등에 지원해서 모인 아르바이트생들은 호텔 앞에서 출석 체크를 한다. '알바생'들은 호텔에서 직원들과 같이 근무하나 호텔 소속이 아닌 인력소개업체 소속이다. 인력업체 명단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간단한 '용모 검사'를 거친다.

용모가 단정하지 못해 바로 퇴짜를 맞고 집에 가는 경우도 있다. 업무 특성상 청결한 이미지를 위해 염색 머리나 짙은 화장은 금지된다. 특급 호텔의 경우 치아 보철을 착용한 사람도 근무할 수 없다. 업체에 따라서는 키나 체형 제한을 두기도 한다.

심사가 끝나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집합한다. 행사를 앞둔 연회장 주방은 정신없이 바쁘다.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은 경험이 별로 없는 나이 어린 학생들이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직 첫 연회까지 두어 시간이 남았다고, 직원을 따라 어디론가 이동한다. '기물 핸들링'을 할 것이라고 한다.

테이블 위에는 포크, 나이프, 스푼 등이 마구 쏟아져 있었다. 기물 핸들링은 이 식기들을 뜨거운 물과 거즈로 닦아 윤을 내는 작업이다. 직원은 뜨겁게 끓인 물과 어디선가 가져온 거즈들을 테이블 위에 마구 던져 놓는다.

우리는 부랴부랴 거즈를 잡고 식기들을 박박 닦았다. 생각해 보니 거즈들은 그렇다 쳐도 우리 손은 소독은커녕 제대로 씻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지만 "빨리빨리"를 재촉하는 직원들의 등에 정신없이 손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규정상 신고 있는 구두 때문에 벌써부터 발과 허리가 아프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핸들링이 끝나자 어느새 점심시간 즈음이다. 서빙 준비가 된 음식 냄새에 배가 고프지만 곧 연회가 시작될 참이라 점심식사는 미룰 수밖에 없다. 잔뜩 긴장하고 지배인에게 교육을 받는다.

애피타이저, 수프, 빵, 메인 메뉴, 디저트, 커피로 이뤄지는 코스 정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손님에게 서빙해 연회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우리의 업무다. 코스 중에 가장 트레이가 무거워지는 '수프'를 서빙할 때면 직원들과 아르바이트생들 모두 초긴장 상태가 된다.

균형을 잃고 손님에게 수프를 쏟기라도 하면 그 날의 연회는 완전히 '망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근력에 자신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절반만 들고 나가라고 미리 당부한다. 빈 그릇에 물을 담고 미리 연습을 해 보는 아르바이트생들도 있었다.

"빨리 일어나! 놀러 왔어? 주머니에서 손 빼!"

이윽고 예식이 끝나고 손님들에게 식사가 나갈 준비가 됐다. 접시에는 예쁘게 담겨진 요리들이 커다란 쟁반 위에 놓여 있다. 지배인이 다시 한 번 당부를 한다.

"여기 나오는 코스가 인당 5만원 이상은 하는 거야. 여기 오는 사람들 다 부자라서 옷도 좋은 거 입고 오는데, 거기다 음식 쏟으면 어떻게 되겠어? 조심해."

5만원이라면 오늘 우리의 일당과 거의 맞먹는 금액이다. 생각도 잠시, 문이 열리자마자 재빨리 음식들을 서빙한다. 손과 발이 덜덜 떨리지만 다행히 큰 실수 없이 연회를 마쳤다.

간신히 오늘의 첫 연회 뒷정리를 끝냈다. 아직 연회가 두 개나 더 남아 있는데도 온 몸이 뻐근하다. 아르바이트생들도 모두 지친 표정이다. 의자, 바닥에 잠시나마 피곤한 몸을 의지하려는 찰나, 직원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빨리 일어나! 놀러 왔어? 주머니에서 손 빼!"

연회장에는 수백 개의 의자가 있었지만 지친 아르바이트생을 위한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편인 나는 반말로 호통을 듣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연회를 준비해야 했다. 

호텔 서빙 아르바이트는 대개 정해진 종료시간이 없이 그날의 연회 예약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즉, 연회가 한 건 밖에 없는 날은 근무가 일찍 끝나지만, 연회가 많은 날은 새벽까지 일하기도 한다. 치러야 할 연회가 있는 한 식사 시간이나 휴식 시간도 업시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아르바이트생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남들은 연회를 즐기는 주말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표정이 밝지 않았다. 호통 소리 때문에 감정이 나빴던 호텔 직원들 역시 '주말에 출근해서 고생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니, 그들도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노동 끝 식사 시간, 식욕은 달아난 지 오래

두 번째 연회는 혼이 반쯤 빠진 상태에서 치른 것 같았다. 연회가 끝나고 식탁보까지 치우고 나면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직원의 말에 조금이나마 힘이 난다. 아르바이트생들의 손이 조금 빨라진다. 주방에는 손님들이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남긴 요리들이 쌓여 있었지만, 우리는 지하의 푸드 코트로 내려간다. 30분이나마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식당 의자에 자리를 잡은 알바생들은 식탁에 그대로 엎드린다. 이미 배고픔보다는 힘들다는 생각이 더 크다. 힘든 노동 끝의 식사는 달콤할 줄 알았는데, 너무 지친 탓인지 생각보다 입맛이 없다.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 오는 시간을 빼고는 소화시킬 틈도 없이 바로 다음 업무를 한다. 연회장을 정리하고, 마지막 연회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직원들의 목소리가 더 날카로워졌다.

지친 몸으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내서 움직이고 있는데도 빨리빨리 안 움직이냐고 성화다. 남자 알바생들에게는 가끔 험한 말도 나온다. 몸도 고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거의 들을 일 없던 '반말 호통'을 듣는 게 더 고되게 느껴졌다.

마지막 연회와 또 한 번의 기물 핸들링이 끝나면 오늘의 업무가 끝났다. 장부에 확인 서명을 하고 퇴근을 한다. 시급 4500원,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총 13시간을 일하고, 식사시간으로 1시간을 공제하면 총 12시간 분량의 일급이 통장으로 입금될 것이다.

일당을 계산해 보면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학생으로서는 그리 작은 돈도 아닌 편이다. 이번 달 학원 등록비를 보태는 데는 충분할 것 같았다.

퇴근하는 길에 내가 일한 연회장을 둘러본다. 깨끗이 정돈된 탁자와 의자, 그릇들, 고급스럽게 치장된 인테리어. 이곳에서 오늘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추억' 뒤에는 꽤 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하루'가 있다는 사실을 몇 명이나 기억할까. 나의 고단했던 하루도 '5만원'보다는 값진 경험이 되길 바라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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