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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기본도 모르는 '바보들의 행진'

[정연주의 증언 17] '20억 흑자'를 '345억 적자'로 둔갑시킨 요술쟁이

등록|2010.01.02 12:01 수정|2010.01.02 12:01

▲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은 2008년 8월 6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부실 경영 및 인사권 남용'을 이유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해 해임을 요구한 감사원을 규탄했다. ⓒ 권우성



지난 주 감사원의 '3천억 원짜리 왜곡과 거짓'에 대해 이야기했다. KBS와 국세청 사이에 1999년부터 제기된 17건의 세금 소송(행정소송)에서 1심 승소액과  패소액을 모두 합쳐 놓은 것을 가지고 감사원은 그렇게 주장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도 아니고, 1심 판결 결과만을 가지고, 그것도 패소한 사건의 금액까지 합쳐, 'KBS의 청구권'을 주장했던 것이다.

'3천억 원'의 출발

그렇다면 '3천억 원'이라는 이 엄청난 숫자가 어떻게 감사원 머리에 입력되었을까.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1심 패소금액까지 합친 것을 '청구권'이라 주장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한 인물은 지난해 5월 중순, 나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으로 고발한 조상운 전 KBS 직원(2004년 3월말 정년퇴임)이다.

내가 2003년 4월말 KBS 사장으로 취임하고 두 달 조금 지났을 무렵인 7월 초, 당시 KBS와 국세청 사이의 세금분쟁을 혼자서 담당해 온 조상운씨가 내게 세금관련 첫 보고를 했을 때 '3천억 원 환급'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14일, 나를 배임으로 검찰에 고발했을 때 제출한 고발장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

그가 첫 보고를 했을 때 보고서 제목은 '법인세 등 환급소송 진행 현황 및 향후 조치계획 보고'였다. 그 보고를 통해 내 머리에 각인된 것은 '3천억 원 환급'이었다. 보고서 끝 부분에 결론처럼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승소, 환급 가능성은 시간 문제일 뿐이지 거의 확실할 것으로 사료되며, 이 경우 환급이자 등을 포함한 환급예상액은 3000억 원을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지난해 5월 14일, 나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때 고발인 조상운씨가 제출한 고발장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내가 검찰에 고발된 바로 다음 날, 뉴라이트 단체에서 KBS 국민감사 청구를 했다).

고발장 첫 구절이다.

피고발인(정연주)은, 한국방송공사의 사장으로서 한국방송공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제3자인 국가로 하여금 2875억 원 상당의 재산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한국방송공사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가함으로써, 업무상 배임죄를 범한 것임.

고발장은 그동안의 세금 소송 경과를 설명한 뒤 법원 판결 내용을 요약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방송공사가 패소한 부분은 상급심에서는 승소가 확실시되어 전체 승소금액은 2328억원 상당이 되며, 법인세에 대한 주민세와 환급이자를 포함하면 약 3431억 원이 됩니다.

'배임'과 '세금 포탈', 정반대 주장을 함께 한 고발인

위의 고발장 내용을 종합하면 1심 패소가액까지 모두 합친 게 3431억 원이고, 이 가운데 법원 조정으로 KBS가 돌려받은 법인세 환급액 556억 원을 빼면 2875억 원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감사원 실무자가 이야기한 '3천억 원 청구권' 부분은 이렇게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바로 수사에 들어갔고, 지난해 8월 20일 나를 배임죄로 기소했다. 그런데 검찰은 배임액을 정할 때, 고발인의 주장, 즉 "상급심에서는 승소가 확실시된다"며 1심 패소액까지 포함시킨 것과는 달리, 1심 승소액으로 배임액수를 규정했다. 그리고 공소장 말미에는 "재산상 이익을 국가에게 취득하게 하고..."라고 밝혀, 나의 '배임'으로 그 이익은 국가에 돌아갔다고 밝혔다.

...공사로서는 최소한 1심 승소금액인 1764억원 상당을 국세청으로부터 환급받을 수 있었다...

...이로써 피고인은 공사가 조세소송을 통해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인 2448억원(1심 승소금액 1764억 원 + 환급가산이자 684억 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포기하여 실제 환급액과의 차액인 1892억 원(2448억 원 - 556억 원(법인세 환급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국가에게 취득하게 하고, 동액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공사에 가하였다.

나의 배임 혐의와 관련된 검찰 수사와 1심 법원의 재판 내용은 앞으로 자세하게 증언할 것이니, '3천억 원 환급' 이야기나 '189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국가에 취득하게 한' 배임 사건은 여기서 잠시 멈추기로 한다. 이 자리에서 두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첫째, 고발인 조상운씨는 지난해 5월, 나를 배임혐의로 고발했는데, 이보다 3년 전에는 '배임'과 정반대가 되는 '세금 포탈 혐의'가 있다며 국세청에 진정서를 낸 적이 있다. 그는 2005년 11월 KBS와 공사가 법원의 조정으로 세금 분쟁을 해소하려 했을 때 국세청에 "국세청이 승소할 가능성이 있어, 환급해 줘서는 안 될 세금에 대해 환급을 해주는 것이 됨" "그런 결과 한국방송공사는 적법하게 납부할 세금을 포탈하는 행위를 하게 되고, 국세청은 임의로 국고 손실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것임"이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낸 적이 있다. 똑 같은 법원 조정사안을 가지고 '배임'과 '세금 포탈'이라는 정반대의 모순된 주장을 했다. 검찰은 이런 그의 모순된 주장 가운데 '배임'이라는 쪽에서 집중적인 칼날을 들이댔다.

3천억 이야기해놓고, '주의'라는 경미한 처분 요구

둘째, '3천억 원 환급' 이야기가 '경영 부실'의 한 이유로 설명되었고, 그래서 KBS 특별감사 실시에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었는데, 정작 KBS에 대한 대대적인 특별감사를 마친 뒤에 나온 감사 보고서와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에서는 이 부분과 관련한 감사원 지적과 처분 내용은 '태산명동 서일필' 꼴이었다. 감사 처분요구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당기 경영적자를 피할 방편으로 승소 가능성이 높은 소송을 명확한 이유 없이 조정으로 조기에 종결함으로써 추가적인 법인세 환급(예상 환급세액 514억 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상실.

조치할 사항 : 한국방송공사 사장은 송무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서 승소가능성이 높은 쟁송 사건을 명백하고 객관적인 사유 없이 중도에 조정 등으로 종결함으로써 정당한 권리회복의 기회를 일실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3천억 원'(고발인) 또는 '1892억 원'(검찰 주장) 상당의 어마어마한 재산상 이익을 국가에 주고, KBS에는 손해를 입혔다고 하여 배임죄라며 난리 법석을 떨었던 사안에 대해 감사원은 '주의' 라는 경미한 처분 결과를 내놓았다. 그리고 앞으로 증언하게 될 배임사건과 관련한 고발인과 검찰의 주장, 법원의 판결 내용,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이야기들을 보면 알게 될 터이지만, 승소 가능성이 높다느니, 환급 가능한 돈을 포기했다느니 하는 주장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내용일 뿐이다.

회계의 기본도 모르는가

▲ '2005년 적자' 주장은 감사원이 얼마나 정치적 의도에 압도되어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삼정동에 있는 감사원. ⓒ 유성호


그 다음 감사원의 무지막지한 거짓말은 '2005년 적자' 이야기다. 감사원이 얼마나 정치적 의도에 압도되어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다른 한편으로 과연 그들이 감사 전문집단이 맞는지를 근본부터 의심하게 만든 건이기도 하다. 법인세 환급금 555억 원을 제외하면 2005년 당기 순이익은 '20억 원 흑자'였는데, 그게 돌연 '345억원 적자'로 둔갑해버렸던 것이다.

우선 감사원의 주장부터 보자. 뉴라이트 시민단체의 국민감사 청구를 심의한 국민감사청구 심사위원회의 회의에서 일부 심사위원이 KBS '방만 경영'의 구체적 내용이 없다고 비판하자 이렇게 답을 했다(지난 주에 소개한 내용인데, 다시 한번 인용하겠다).

000 : (방만) 경영의 구체적 내용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다 열거는 안 되지만 예를 들어서 (법인세 조정과 관련하여) 법원에 약 3000억 원 상당의 청구권이 있는데, 2004년에 638억 손실이 났고, 2005년에는 576억원(의 이익), 2006년도에는 242억원의 이익이 났습니다. 그런데 법인세 환급금을 받지 않았다면 오히려 손실이 발생된 사항입니다. 경영 손실을 모면하기 위해 그런 것을 포기했다면 그것은 상당히 방만한 경영의 증거가 될 수 있다, 행정실에서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그러니까 2005년에 576억 원의 세전 이익이 발생했는데, 이는 법인세 환급금 덕분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손실이 발생한 사항"이라는 게 감사원 행정실 실무자의 설명이다.

이 감사원 실무자의 발언은 KBS 감사 실시라는 목표를 정해 놓고, 이를 밀어붙이기 위해 동원된 보조장치였다. 그런 정치적 동기에다, 그 때는 감사 이전이었으니,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KBS 전체를 이 잡듯 뒤져 놓고 난 뒤에 가서도 이런 무지막지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도 매우 구체적인 숫자를 적시하면서...

지난해 8월 5일, 감사원은 '한국방송공사 운영실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30쪽에 이르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보도자료는 조중동에 대서특필되었다. 이 보도자료 24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법인세 환급소송 조기종결 후 2005회계연도 KBS 경영수지
- KBS는 2005년 576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하였는데, 만일 위와 같은 소송 조기종결이 없었다면 법인세 등의 환급(555억 원)은 발생되지 않고, 추납액(366억 원)만 발생하여 당기 순손실은 345억 원에 달하게 됨.

이렇게 무지할 수가... 정치적 동기 때문에 눈이 멀어버린 것인까, 아니면 회계처리의 기본도 모르는 '바보들의 행진'인가.

2008년 8월 5일은 '감사원 치욕의 날'

감사원은 2005년에 발생한 당시 순이익이 576억 원이었지만, 이 가운데는 법인세 환급액 555억 원이 사업외 수익으로 잡혀 있어서, 그 환급액이 없었다면 당기 순이익은 20억 원 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 말까지는 맞다.

그런데 이 20억 원 흑자도 2005년 국세청이 부과한 법인세 추납액 366억 원을 제하고 나면 결국 순손실은 345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거짓말을 함부로 하다니...

감사원은 KBS의 회계처리 방식에 무지했거나, 아니면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짓 주장을 했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국세청의 법인세 추납액 366억 원은 KBS에서 비용으로 이미 회계처리했던 것이다. 그러니 보도자료 24쪽에 나오는 감사원 주장은 이미 비용으로 회계처리된 추납액 366억 원을 다시 이중으로 계산하여 2005 회계연도의 당기 손익을  '20억 흑자'에서 '345억 원 적자'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2005년 3월 7일, 국세청은 99년도분 법인세 추징금 333억 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의 납부 고지는 유효한 행정 행위이기 때문에 KBS가 이를 거부할 수도 없었다. 납부하지 않으면 높은 이자와 압류 조처 등이 뒤따르기 때문에 KBS는 법인세 추징금이 나올 때마다 이를 납부했으며, 2005년에도 주민세와 이자 등을 포함, 366억 원의 추징금을 납부하고, 이를 회계처리했다.(이 추징금 366억 원은 이듬해인 2006년에 되돌려 받았다).

그러니까 2005년에는 법인세 추징금 366억 원을 다 납부하고, 그리고 법인세 환급액 555억 원을 받지 않았다 해도, 20억 원 흑자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20억 원 흑자'를 감사원은 법인세 추징금 366억 원을 이중계산하여  '345억 원 적자'로 둔갑시켰다. 그래야 '정연주 해임'에 필요한 '적자 운영', '부실 경영' '무능 경영'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지난해 8월 5일,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나의 '해임'을 요구했을 때, 나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그 글에서 나는 2005년 8월 5일을 일컬어 '감사원 치욕의 날'이라고 규정했다. 그 날이 감사원 치욕의 날이었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니, 더 절실해졌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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