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으로 돌아가 평범한 아빠가 되고 싶다"
[2009년 마지막 인터뷰④] 이영호 쌍용차 정리해고자 특별위원장
용산참사부터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쌍용차 사태, 4대강 사업 강행까지 2009년의 이슈들은 유난히 슬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뉴스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들을 만나보는 연속 기획인터뷰를 통해 우울한 2009년을 정리하고, 2010년은 새 희망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편집자말]
▲ 지난 8월 6일 저녁 7시 쌍용자동차 노사 합의가 이뤄진 후 농성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도장공장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한상균 지부장이 77일간 함께 농성을 벌인 조합원들과 일일이 악수한 후 떠나는 조합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 <노동과 세계> 이명익 기자
붉은 머리띠를 두른 남자의 검은 얼굴이 처연하게 보인다. 77일 동안 함께 옥쇄파업을 벌인 동료노동자들을 하나하나 모두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 준다.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곧바로 감옥으로 향했다. 그렇게 파업은 끝이 났다.
부질없이 시간만 흘러 어느새 연말. 함께 파업했던 이들을 모두 안아주던 그 처연한 남자, 한상균 전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을 만나고 싶었다. 그는 지금 수원구치소 평택지소에 수감돼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구치소를 찾았지만 이미 면회 예약은 꽉 차 있었다. 대신 그를 면회하고 나온 이들에게서 짧은 소식을 들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고 있는 중이다."
한 전 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날은 춥고 눈은 내리는데, 한 전 위원장의 가슴에선 여전히 분노가 들끓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만도 하다. 자신을 포함해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 40여 명은 여전히 감옥에 있다. 노사대타협 뒤에도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이어졌고, 34명이 추가로 해고돼 공장을 떠나야만 했다. 날이 춥다고 끓는 분노가 가라앉는 게 아니다.
대타협 약속 믿었던 노동자, 지금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는 중"
쌍용차에서 해고돼 공장을 떠난 노동자 100여 명이 12월 30일 오후 평택 호남향우회관에 모였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 정기 총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모인 노동자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감옥에 다녀온 '동지'에게는 "고생 많았다"는 격려를, 대리운전에 뛰어든 이에게는 "벌이는 좀 괜찮냐"는 안부를 물었다. 어렵게 사는 건 다들 마찬가지였다. 많은 노동자, 아니 해직자들은 "빚 독촉 받는 신용불량자만 아니면 다행"이라고 쓰게 웃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다시 공장에 돌아가기 위해 싸우고 있고, 복직되는 날을 소망하고 있다.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는 주기적으로 공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해직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 사측의 결렬선언으로 쌍용자동차 노사협상이 암초에 부딪혀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던 지난 8월 3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도장 공장을 점거 중인 노조원들 위로 경찰 헬기가 지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여름 77일 동안 옥쇄 파업을 할 때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파업을 끝내고 겨울 한복판에 서 있는 이들은 지금 "어떻게든 공장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2010년이 밝아오면, 2011년이 찾아오면 공장에 돌아갈 수 있을까?
이영호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 위원장은 "쌍용차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빨리 평범한 아빠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 최근 이건희 회장은 특별 사면됐다.
"허탈하다. 역시 돈 있는 자들은 국가에게 특별대우를 받는다. 쌍용차는 한상균 노조위원장 등 40여 명이 아직도 구속돼 있다. 우리가 경제를 파탄 냈나, 아니면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나. 먹고살기 위해 싸운 사람들과 돈 있는 사람들의 대우가 너무 달라 화가 난다."
- 최근에도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있었다.
"경찰은 20억 원이 넘는 금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노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101명을 상대로 가압류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옥쇄파업 당시 파손된 경찰 장비 수리비라고 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 8월 6일 노사대타협은 국민과 한 약속이었다. 그 안에는 모든 손배소를 취하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건 지금 휴지조각이 됐다. 파업에 동참했던 비해고 노동자 126명을 무더기 징계했고, 이 중 34명을 징계 해고했다. 약속이 지켜진 게 하나도 없다."
▲ 이영호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2월 30일 정기총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박상규
"주로 대리운전, 막노동을 하고 있다. 쌍용차 파업노동자라고 하면 취업이 안 된다. 해고자라는 이유만으로 은행대출금 회수 압박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소득 없이 실업급여 약 112만 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 파업이 끝난 뒤 검찰이 상하이차의 '먹튀'를 발표했다.
"오늘날 쌍용차 사태의 핵심 원인이다. 상하이차는 2004년 쌍용차를 인수한 후 2008년까지 1조 2천억 투자 등을 약속했었다. 그리고 작년까지도 고용안정 협약서 등을 노조와 함께 작성했다. 하지만 지켜진 약속은 없다. 그들은 기술 유출에만 혈안이었다.
검찰은 11월에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우리는 검찰의 조사가 이미 훨씬 오래전에 끝났다고 믿고 있다. 노조의 투쟁에 정당성을 줄까봐 일부러 발표 시기를 늦췄다고 본다. 그런데, 정부는 쌍용차 사태의 책임을 모두 노동자에게 물었다."
- 법원이 쌍용차 회생계획안 강제인가 결정을 했다.
"쌍용차의 진정한 회생은 공장을 떠난 3000명의 복직이다. 앞으로 또 다른 매각과 구조조정 등이 있을 텐데, 회사와 정부가 양심이 있다면 한 인간과 가정을 파괴한 걸 치유하고 보듬어야 한다."
"목표, 희망, 소망 모두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
-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의 조직 목표는 뭔가.
"목표, 희망, 소망 모두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 조직은 존재한다."
- 해고 이후에 무엇이 가장 힘든가.
"나 하나면 어떻게든 버티겠는데, 가족들이 있지 않나. 가족들이 참 많이 힘들어 한다. 가족들 모두 큰 상처를 받았다. 나만이 아니라 정리해고를 당한 모든 사람은 영혼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게다가 쌍용차는 투쟁 과정에서 6명이나 사망했다. 이걸 누가 어떻게 치유해주나."
- 2009년 여름 '77일 옥쇄파업'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일부에서 '영웅적인 투쟁을 했다', '정권과 자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린 영웅이 되기 위해 싸운 것도, 누구를 놀라게 하려고 싸운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을 뿐이다. 한 인간으로서 자존심과 자존감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 내년 소망은 뭔가.
"2009년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개인, 가족, 동료에게도 모두 마찬가지다. 공장으로 돌아가 평범한 아빠와 남편이 되고 싶다. 오직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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