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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했다' 한마디에 울컥했어요"

봄봄, 오르그닷, 제이드 등 다시 만난 '소셜벤처' 기업가들

등록|2010.01.04 11:44 수정|2010.01.04 11:48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함이 가득했던 지난 2009년 한 해, 누가 희망을 입에 담을 수 있었을까? 용산의 망루에서, 부엉이 바위에서, 국회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생경제의 파탄을 지켜봐야했다. 또한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희망보다 절망을 먼저 배웠다.

하지만 지난 세밑에 받은 이메일 한 통은 엄혹한 한파에도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좋은 기사로 용기를 얻었고, 꿈을 키우고 방향을 조율해가고 있다"고 보낸 이 독자는 다시 한 번 기사에서 그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바로 소셜 벤처(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중에서 청년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설립된 기업)에 뛰어든 20~30대 청년들이다. 100만 청년실업 속, 이들의 도전은 지난해 4월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연일 초강력 한파가 계속되는 올 겨울, 이들의 도전은 어디쯤 왔을까? 2009년 세밑 그들을 만났다. 이들은 "2009년 눈에 띄는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면서도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2010년에는 한 발 한 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작지만 의미있는 성과 거둔 2009년... '잘 했다' 한 마디에 울컥"

▲ 디지털 아트 유통업체 '봄봄'의 박보미 대표는 "20~30대 젊은 소셜번체 기업가들의 도전은 계속된다"고 밝혔다. ⓒ 선대식

"지난 10월 전시회에서 제 멘토님인 민병수 경주대 교수님이 '잘했다'고 한마디 해주시는 거예요. 그런 말 잘 안 하시는 분인데…. 순간 울컥하더라고요."

지난달 29일 만난 디지털아트 판매회사 봄봄의 대표 박보미(33)씨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지난 2006년 첫 한국쏘시얼(소셜)벤처대회 입상 때 인연을 맺은 민 교수는 사회적 기업가의 길을 걷는 보미씨에게 등불 같은 존재. 그의 한 마디에 보미씨는 무기력감에 빠졌던 지난 세월을 떠올렸을 터였다.

"대학원을 중퇴한 2004년부터 3년간 정말 막막했죠. 백수가 되자, 내가 사회부적응자·탈락자·낙오자인 것 같아 깊은 무기력감에 빠졌어요. 누가 툭 찌르기만 해도 눈물이 쭉 흐르고,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닌 나날이었죠."

이후 예술가와 대중의 소통을 위한 그의 아이디어는 현실화가 됐고, 2009년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을 거뒀다. 지난 4월 내놓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입힌 티셔츠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위탁 생산을 하느라 수익은 크지 않았지만, 얻은 희망은 컸다.

'싸이월드' 스킨 판매는 월 2천만 원이 넘는 꾸준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역시 수익은 많지 않지만 스킨으로 제공한 작가들의 작품이 더 많은 대중들에 의해 향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미씨는 큰 보람을 느낀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판화로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에 경매에 붙이는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큰 성과는 지난 10월 소설가 이상의 <오감도>를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구성한 그의 전시회가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서울문화재단과 대기업의 후원도 받았다. 보미씨는 "전시기획자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고 밝혔다.

"어려웠던 2009년, 하지만 또 많이 배웠던 한 해"

많은 기업이 스러졌던 2009년, 대부분의 소셜 벤처 역시 시련을 겪었다. 윤리적 의류 생산·유통 업체인 오르그닷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 김진화(34)씨는 "강하게 단련된 한 해"였다고 말했다.

▲ 소셜벤처를 이끄는 젊은 청년 사업가들은 2010년에는 희망찬 한 해가 될 거라고 말한다. 사진은 멸종위기 동물 보호 메시지를 담은 친환경 디자인 소품을 만드는 제이드의 홍선영 대표. ⓒ 선대식


오르그닷은 지난해 4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서 인디 디자이너들의 옷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함께, 공정무역제품·사회적 기업의 디자인소품 등을 파는 가게를 열었다. 또 다른 사업축인 에코웨딩 사업에서도 의욕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진화씨는 "사업을 넓게 벌려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직이 방만해지는 역효과를 낳았다"며 "윤리적 의류 생산·유통에 집중하기로 했고, 에코웨딩은 분리시키고 사회적 기업 제품 판매는 그만두기로 했다"고 전했다.

멸종위기 동물 보호 메시지를 담은 친환경 디자인 소품을 만드는 제이드와 폐현수막으로 재활용 가방을 만드는 터치포굿도 2009년 눈에 띄는 매출 증가는 달성하지 못했다.

제이드의 대표 홍선영(25)씨는 "온라인 숍도 강화하기 위해 밤새 작업을 해 새로운 홈페이지를 완성했는데도 부족한 것 같다"며 "또한 수익 구조 다각화를 위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당장 올해 눈에 띄는 매출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2009년은 힘든 한 해였지만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느냐"며 "큰 기업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지만, 몇 년이 지나면 올해 고생했던 것들이 그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소셜벤처 기업가 청년들의 도전은 계속"

젊은 소셜 벤처 기업가에게 2010년은 어떤 의미일까? "사회경제적으로 엄혹한 시기에도 희망은 있다"며 "2010년에는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진화씨는 "2009년은 계획과 현실의 괴리를 알게 된 한 해였다"면서도 "2009년 기대했던 12억2천만 원 매출 달성은 1~2년 미뤄지겠지만,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있으니 2010년에는 작은 성공의 사례들을 많이 만들겠다"고 밝혔다.

터치포굿의 대표 박미현(26)씨는 "휴일을 반납하고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다, 새로 출시하는 제품마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당장 눈에 띄는 매출은 없지만, 2010년에는 자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미씨 역시 2010년 비상을 꿈꾸고 있다고 밝혔다.

"기성세대는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청년들의 피는 뜨거워요.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이끌리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그들이 세상을 바꿀 겁니다. 저뿐 아니라, 젊은 소셜 벤처 기업가들의 도전은 2010년에 쭉 계속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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