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우린 책 먹는 여우예요"

한달에 20~30권씩 읽는 아이들

등록|2010.01.01 17:47 수정|2010.01.02 12:26

▲ 교실로 하나둘씩 모여드는 아이들 ⓒ 정현순


"어머 오랜만이에요. 아직도 여기(어린이도서관)에서 봉사하세요?"
"아니요. 지금은 못하고 있어요. 이 근처에 왔다가 궁금해서 들렸어요. 그러는 선미씨는 웬일이예요?"
"저는 여기에서 아이들 독서 지도를 하고 있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좋은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거 취재해도 될까요?"
"되지요. 취재할 게 뭐있나 모르겠어요."
"그 대신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하고 갈게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시흥시 어린이도서관 근처를 가면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곳을 들어가  한바퀴 돌곤한다. 그곳에서 1년 동안 봉사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나 보다. 지난달 중순경에도 그 근처  갔다가 나도 모르게 그곳을 들어가고 말았다. 그곳에 가니 오래 전에 책 만들 때 함께했던 김선미씨를 만나게 되었고 그가 봉사하는 모습을 취재하게 된 것이다.

그의 뒤를 따라가니 우리가 책을 만들 때 강의실로 사용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강의실로 들어서니 어느새 그날 담당 선생님과 몇명의 아이들이 와있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저는 풀이 없어요. 가위가 없어요. 선생님 선생님~~~ "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선생님을 찾아대지만 봉사자들은 귀찮은 내색,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친절하게 문제를 해결해 준다. 누가 들어와도 모를 정도로 지도교사와 아이들은 수업에 여념이 없어보였다.

강의실을 꽉 채운 열기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둘씩 모여든 아이들은 어느새 강의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 그날처럼 아이들의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날의 수업은 1~3학년.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과 독후감을 적은 독서기록장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분홍, 노랑, 보라색 등 자신이 좋아하는 종이로 크기를 자르고, 풀칠을 하고, 앞뒤를 맞추어서 완성시켜야 하는 독서기록장이다.

▲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는 심민호군 ⓒ 정현순

한창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심민호군을 만나보았다. 민호군은 그곳을 오기 위해 엄마와 함께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온다고 한다.

"집에서 아이들하고 놀고 싶을 텐데"
"노는 것도 재미있는데 여기 오는 것이 더 재미있어요. 글쓰기 실력도 늘고, 생각도 느는 것 같아요. 한 달에 20~30권은 읽어요."

민호군이 그렇게 대답하자 주변에 있던 봉사자들이 "와 ~~ 우리 민호 대답하는 것을 보니깐 진짜  생각이 많이 컸는데"하면서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때 봉사자들은  보람을 느꼈을 것같다. 민호가 20~30권 읽는다고 했는데 결코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 온 아이들 대부분이 그정도는 읽고 있었다.

민호군이 버스를 타고 엄마와 함께 한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민호가 수업을 들을 동안 엄마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민호를 기다린다고했다. 민호가 사는 그곳에도 어린이 도서관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김선미, 동아리 회장 박현실씨 ⓒ 정현순




내 아이를 위해듣던 수업

집에서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며서 책을 읽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하려면 봉사자들 자신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할 터인데 어떻게 이런 봉사를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김선미 봉사자를 만나보았다.

-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들 뒷바라지 하다 보면 책을 많이 읽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동아리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어요? 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 되나요?
"처음에는 집에서 책을 자주 접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생활이 되었어요. '책 먹는 여우'란 동아리 이름은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는 동화책에서 따왔어요. 아이들이 읽은 책으로 글쓰기도 하고, 신문 활용 수업도 하니깐 한번 읽은 책의 내용을 많이 기억하고 있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매주 읽은 책으로 책 먹는 아저씨처럼 여러 가지 작업도 하니깐 재미있어 해요. 근력운동을 매일 해서 몸을 튼튼하게 하듯이 책을 자주 접해서 많이 써보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박현실씨

"처음에는 어린이도서관에서 제 아이를 위해서 수업을 들었어요. 그러다 마음에 맞는 엄마들끼리 모여 동아리를 만들고 다른 아이들도 함깨 해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점점 커진 거예요. 저희가 부족한 것은 채우기도 하고,  공부도 계속하고 있어요."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아이템회의를 하고 아이들과는 두 번의 수업이 한다고 한다.

▲ 그날 봉사를 담당한 엄마 선생님들 ⓒ 정현순


주부로서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힘이 나는 것은 아이들이 강의실을 가득 매우고,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아이들이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라고 한다. 그곳에서 수업을 듣는 대부분 아이들의 한 달 독서량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닌 듯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봉사자들의 독서지도의 힘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나면  다음 수업을 위해 아이템회의가 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취재를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방해가 된 듯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날 수업내용인 독서기록장이 완성된 것까지 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날 봉사 담당자인 엄마 선생님들의 사진을 찍고 그곳을 나왔다. 그들의 미소가 환하고 밝다.

엄마 선생님들, 파이팅!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