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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첫 만남, 목이 터져라 '김대중'을

경인년 첫 새벽에 읽은 책 <나의 삶 나의 길>

등록|2010.01.02 18:50 수정|2010.01.02 18:50

▲ 책 표지 ⓒ 산하



87년 12월13일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어마어마한 인파를 보고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정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때리며 저절로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그저 인파 속에 몸을 맡겼을 뿐인데 난 어느새 유세장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통령 후보 연설은 시원했다. 누가 들을까 무서워서 하지 못했던 군사정권 비판을 시원하게 해댔다. 연설 중간 중간, 중요한 대목이 나올 때마다 군중들은 환호했다. 그 열기에 동화돼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나도 목이 터져라 '김대중'을 연호했다. 난 이때 처음 김대중이란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때 일을 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가 쓴 자서전 <나의 삶 나의 길>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보라매공원 유세에 무려 2백5십 만 명이 몰려 왔다. 정말이지 신명나는 연설을 했다. 그 신명은 유권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세가 끝난 뒤에도 10만 명이 서울 시청까지 흥분에서 깨지 않은 채 걸어갔다. 그런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승산이 충분하다고 믿었다" - 책 속에서 -

당시 난 선거권이 없었다. 하지만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 그 열기면 당선이 되고도 남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승리를 거머쥔 사람은 노태우 후보였고 원인은 '후보 단일화 실패'였다. 사람들은 당시 김영삼 과 김대중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때 일이 후회스럽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지금도 그때 일을 후회한다. 나 혼자만이라도 양보해서 단일화를 실행 하지 못한 것을 그 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일부 인사들 일시적인 과잉 흥분에 휘말려 내가 그 즈음 냉철하지 못했다. 국민들 염원을 최우선에 두고 양보해야 했었다" - 책 속에서 -

'인동초'가 갖는 '의미'

<나이 삶 나의 길>은 대통령 선거 직전인 97년 11월15일에 초판이 발행됐다. 이 책이 다시 주목 받은 것은 2009년이다. 고 김 대통령이 2009년 8월 18일, 병환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난 이후다.

김 대통령은 지난 97년 세번째  도전에서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87년 대선은 고 김대중 대통령이 두 번째로 겪은 대통령선거 패배였다.

그는 1971년에 이미 대통령 선거 후보(신민당)로 출마한 바 있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다. 대선에 출마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였던 그가 상대했던 후보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공화당 후보였다.

그는 그 선거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정부와 여당들의 집요한 방해를 넘어서지 못하고 94만 7천여표 차이로 패배한다. 하지만 여한 없이 싸웠다고 한다. 당시 정부와 여당이 벌인 선거 방해 공작은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연설하는 곳에서는 향토 예비군을 소집하거나 여관업, 음식업, 이발소 등의 조합들이 야유회를 열도록 압력을 가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던 것이다" - 책 속에서 -

고 김 대통령은 선거를 9일 앞둔 서울 장충단 공원 유세를 감격적인 일로 기억한다. 공원으로 가는 길이 사람들로 가득 차서 차를 운전해 가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때 모인 군중은 무려 1백 만 명이나 됐다.

고 김 대통령 인생 역정에는 대통령 선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인동초'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수도 없이 많은 고난이 있었다. 죽을 고비 다섯 번, 6년 수감, 10년 연금.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야 할 듯하다. 바로 첫사랑이었던 첫 번째 부인 차용애와의 사별이다. 그는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참으로 고마웠던 아내! 그러나 그녀는 나와 끝내 해로 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그녀가 혹시 짧은 생애를 예감한 나머지 내게 그토록 큰 사랑을 한꺼번에 쏟아 부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그녀가 남긴 두 아들과 손자, 손녀들을 마주 할 때면 뭉클해 지는 가슴으로 나는 그녀에게 말하곤 한다. '보시오 이들이 당신이 남긴 당신의 분신들이오. 당신을 결코 죽지 않았소'" - 책 속에서 -

97년에 출판된 이 책이 2009년에 다시 주목 받은 이유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김 대통령이 2009년에 '서거'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인다면  진솔함과 소박함 때문이 아닐까 한다.

고 김 대통령은 책 첫머리에서 "이 책은 이제껏 출판된 어떤 것보다 사실 그대로인 내 삶에 대한 생생하고도 소박한 기록"이라고 미리 밝혀 둔다. 딱딱한 정치 공약보다는 그의 가족, 사랑, 그리고 그가 겪은 인생 역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09년 우리나라 최대 뉴스를 꼽으라면 난 생각 할 것도 없이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서거다. 그래서 경인년 첫 새벽에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정리하고 새해를 맞을까 고민하다가 꺼낸 든 것이 바로 이 책 <나의 삶 나의 길>이다.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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