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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학점만 인정받는 더러운 세상?

재수강 학점 제한과 학점 관리가 빚어낸 아이러니

등록|2010.01.04 09:49 수정|2010.01.04 10:19
최근 대학생 이진동씨(가명·24·중문과 3년)는 자신의 전공과목 성적을 B+에서 C+로 낮춰줄 것을 교수에게 요청했다. B+면 낮은 성적도 아닌데 이씨는 왜 학점을 내릴 생각을 했을까?

현재 이진동씨가 재학 중인 대학교는 C 학점 이하 과목에 한해 재수강을 허용한다. 상당수의 다른 대학도 이러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B 학점을 받은 과목은 재수강을 할 수 없고, 받은 성적 그대로 졸업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B 학점을 받느니 차라리 C 학점을 받고, 나중에 재수강을 통해 A 학점을 받겠다는 학생들이 나타나고 있다. A 학점을 받기 위해 한 번 더 수업을 듣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이다.

중도에 수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 박성준씨(가명·27·컴퓨터공학과 4년)는 중간고사를 치른 후에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출석도 하지 않고, 기말고사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은 당연히 F가 나왔다. 박씨는 "중간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 A를 받을 자신이 없었다"며 "어설프게 B를 받는 것보다 차라리 재수강이 가능한 F를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씨에게 B 학점은 재수강도 할 수 없는 '어설픈' 학점이었다.

재수강 학점 제한은 원래 학생들의 무분별한 재수강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로 인해 B 학점은 재수강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높지도 않은 애매한 성적이 되었다. 따라서 성적 관리에 민감한 요즘 대학생들에게 B 학점은 계륵 같은 존재이다. C 이하의 성적이면 재수강을 하면 된다고 넘겨버리지만, B-라도 받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진동씨는 "최근 로스쿨에 진학할 계획을 세웠는데, 1·2학년 때 받은 B 학점들 때문에 학점 관리에 한계가 있어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이른바 '스펙' 관리가 중요해진 요즘,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학점을 낮춰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시쳇말로 'A 학점만 인정받는 더러운 세상'에서 B 학점은 천덕꾸러기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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