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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등록금 = 불면의 603시간

[2010 빵꾸똥꾸 탈출②] 매일 1시간씩 '봉사활동' 하는 24시 패스트푸드점 야간 노동자

등록|2010.01.04 13:49 수정|2010.01.04 14:08
<지붕 뚫고 하이킥> 해리가 외치는 '빵꾸똥꾸'에 속 시원~하신 적 있으시죠?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우왕좌왕 지하철 우측통행, 예쁜 여자가 능력 있다고 믿는 사람들 때문에 목구멍까지 차오른 '빵꾸똥꾸' 외침을 참느라 힘드셨다고요? 2010년 새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빵꾸똥꾸'들을 <오마이뉴스> 11기 인턴기자들이 모아봤습니다. 여러분을 대신해 속시원히 외쳐드리겠습니다. "야, 이 빵꾸똥꾸야!!!!!!!!!!!" [편집자말]
요즘 '24시간 365일 연중무휴'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이 많다. 야밤에 햄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아예 약속 장소를 패스트푸드점으로 정하고 새벽 시간에 만나기도 한다. 밤에도 낮 못지 않게 활동하고 소비하는 현대인의 생활이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을 만들었다. 심야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에서 속속 생겨나기 시작한 24시간 점포는 곧 전국으로 빠르게 번졌다. 현재 롯데리아는 전국 118개 매장, 버거킹이 16개 매장, KFC가 15개 매장을 24시간 운영한다. 이미 패스트푸드의 24시간 영업은 '대세'로 굳어진 분위기다. 이런 대세를 선도하는 맥도날드의 경우 진작부터 변신을 거듭하여 전국 175개 매장이 24시간 영업이다. 

서울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한아무개(21)씨. 1년 만기 계약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가 일하는 곳에서는 계약할 때 "사내 정보를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준법서약서를 받는다. 그러니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름과 근무처를 밝히지 말아야 한다. 한아무개씨는 지난해 초부터 패스트푸드점에서 야간근로를 했다. 혼이 쏙 빠지도록 손님이 바글바글해 연도가 바뀌는지도 미처 몰랐다. 그는 영수증에 찍히는 '2010년 1월 1일' 날짜를 보고서야 자신이 햄버거를 만들며 새해를 맞이했다는 걸 알았다. 재야의 종소리 대신에 햄버거 주문을 듣고 있었던 셈이다. 억울해하는 그에게 매니저가 슬쩍 다가와 말했다.

"청소 해야지?"

탁자나 바닥은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 심야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을 중심으로 '24시간 365일 연중무휴'하는 패스트푸드점이 늘어나고 있다. ⓒ 허진무


한아무개씨는 두 말 없이 대걸레를 잡는다. 따로 쓰레기통이 있지만 손님들 대부분은 쓰레기를 탁자나 바닥에 그냥 버리고 간다. 자정이 지나면 점차 손님이 늘어난다. 덩달아 한아무개씨의 걸레질도 바빠진다. 매장 크기가 작은 만큼 청소도 빨라야 한다. 시끄럽고 어수선해서 손님이 오래 앉아 있을 분위기는 아니다. 그는 "대략 1시간에 30만원, 햄버거 100개쯤 팔린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손님이 떠나면 냉큼 달려가 탁자를 뒤집어 놓고 타일 바닥을 박박 닦는다. 그는 계산대에서 출입문까지를 육상선수처럼 왕복했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필사적인 청소다. 다른 손님이 오기 전에 청소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일하지만 땀이 난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퉁퉁 부어오른다. 청소는 한아무개씨의 주요 업무다. 그의 오른손 중지 밑에는 큼직한 굳은살이 있다. 매일 대걸레를 잡다 보니 손이 걸레질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첨벙대며 대걸레를 빨고 닦고 하다보면 어느새 신발에도 물이 흘러 들어간다. 그러면 물에 불어 발이 신발 안에 꽉 들어찬다. 좀처럼 신발을 벗기 힘들 정도다. 일과가 끝나고 신발을 벗어보면 발가락끼리 네모나게 각이 져서 붙어 있다. 몹시 쓰리고 저리다.

햄버거 말고 해장국을 드셔야지

심야 패스트푸드점의 골칫거리가 또 있다. 취객이다. 아무래도 술자리는 낮보다 밤이기 마련이라, 느지막한 시간이면 취객들이 슬슬 나타난다. 일하는 점포가 유흥가 근처에 있어 더하다. 열심히 닦은 바닥에 음료수를 뿌리는 등 괜히 시비를 거는 행패는 차라리 양반이다. 장난이 도가 지나쳐 치근덕거리는 이들도 있다. 몹시 불쾌하지만 취객에게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겨우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정도였다. 상황이 웬만큼 험해지지 않는다면 홀로 '좋게 좋게' 해결해야 한다.

다른 한 쪽에는 밤을 신나게 보낸 사람들이 커피를 시키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아침 첫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첫차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근처 노숙자들이다. 소파를 다 차지하고 자거나 구석진 자리에 의자를 모아 누워 잔다. 가끔씩 잡상인들도 온다. 영업하기에는 눈엣가시다. 이런 불청객들이 출현하면 슬쩍 쫓아내는 일도 한아무개씨의 비공식적 업무 중 하나다. 시키니까 하긴 하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날마다 1시간씩 '봉사활동' 합니다

▲ 늦은 밤, 어느 24시 패스트푸드점 직원이 청소에 열중하고 있다. ⓒ 허진무


한아무개씨는 보통 밤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9시간을 일한다. 9시간 중 1시간은 휴식시간이다. 근로기준법 54조에 근로시간이 8시간이면 1시간의 휴게시간을 주도록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 1시간은 근로시간이 아니므로 임금을 주지 않는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실상 휴식시간이 없다.

그가 일하는 점포 주변에는 유흥가가 있다. 밤에도 손님이 꽤 많다. 패스트푸드점은 '레이버(노동) 조정'이란 걸 한다. 시간당 손님 수에 따라서 하는 인력관리다. 비용 절감을 위해 매장이 빠듯하게 운영될 정도까지 인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상황에 맞추어 날마다 출근 인원이 다르다. 매장 전체를 한아무개씨까지 3명으로 버티는 날도 있다. 정해진 업무는 있지만 인원이 모자라기 때문에 기실 전방위적으로 투입되어 일한다.

마구 밀려드는 손님들을 맞이하다 보면 휴식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한다. 내가 쉬면 다른 동료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탓이다. 심지어 화장실 가는 일도 슬금슬금 눈치를 살펴야 한다. 출근과 퇴근 시간은 기계에 정확하게 기록된다. 기록상으로는 완벽한 합법이지만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1시간의 휴게시간이 어디론가 증발했다. 한아무개씨는 하루에 1시간씩 패스트푸드점에 '봉사활동'을 하는 셈이다. 이에 "혹시 항의하는 일은 없었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모두들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대답했다. 또 낮에는 휴식시간이 비교적 잘 지켜진다고 했다. 휴식 없는 노동은 패스트푸드 야간 노동자의 숙명이다.

1학기 등록금 = 불면의 603시간

새해에 최저임금은 4000원에서 110원 올라 4110원이 되었다. 근로기준법 56조에 따르면 야간근로에 대해서는 주간근로 수당의 100분의 50을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했다. 그래서 한아무개씨는 시급 6165원을 받는다. 최저임금의 야간수당이다. 한아무개씨는 "따져보면 1시간에 165원 오른 셈인데 물가 오르는 수준도 안 되니 화가 난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올해 최저임금은 2.75% 인상되었는데 한국은행이 전망한 물가상승률은 3%다. 물가를 고려하면 오히려 작년보다 임금이 줄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한아무개씨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어 낸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일하는 생활을 했다. 졸음을 참다가 강의실에서 까무룩 잠들기 일쑤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학기당 등록금이 싼 편이지만 그래도 하루에 9시간씩 67일, 즉 603시간을 꼬박 일해야 버는 돈이다. 한아무개씨는 패스트푸드점이 "법은 지킨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물론 휴식시간을 '삥땅'치지만 나머지 급여는 정확하게 계산해서 지급한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조차 그는 다행으로 여겼다. 경인년 첫날. 한아무개씨는 떡국을 먹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다음 출근 시간까지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덧붙이는 글 허진무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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