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그림이야? 글자야? 책으로 퍼즐하다

[서평] 그림문자일기 마르스의 <상처는 버려라>

등록|2010.01.05 08:37 수정|2010.01.05 08:37
"그림이나 도형을 수단으로 하여 의사전달이나 사물의 기록을 위한 기호로서 사용한 문자. 문자체계의 발전단계에서는 가장 원초적인 단계에 속한다."

<야후백과사전>에 나온 '그림문자'에 대한 설명이다.

▲ 그림문자일기 <상처는 버려라> ⓒ 노란잠수함

한 때 한몸이던 시절이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그림과 문자는 각기 발달했다. 그렇게 서로 제 갈길 간 지가 도대체 얼마일까.

그 오래전 기억을 한 편 책을 통해 더듬었다. '마음을 그리는 만화가 마르스의 문자그림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상처는 버려라>(노란 잠수함 간, 마르스 저)는 책이다.

책장을 펼친 순간 그림 속에 있는 꼬불꼬불한 것들이 글자인 것은 알았으나 그 문장을 조합해내기란 참 어려웠다. 분명 그림은 그림이고 문자는 문자였으나 서로가 오묘하게 섞여 걸러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처음엔 바로 제목을 읽고 그림문자를 읽었다. 몇 차례 그러다가 그림문자를 보면서 문장을 뽑아냈다. 몇 번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붙다가 다시 어려운 그림문자를 맞닥뜨리며 좌절하길 여러 번. 책장이 넘어가면서 내공이 붙는다. 이젠 아주 어려운 그림문자도 문장을 찾아내면서 스스로를 뿌듯해한다.

퍼즐을 맞추는 방식으로 그림문자일기를 대한 것이다. 꽤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엔 '웬 글자 갖고 장난'이라고 했지만, 점점 재미 속에 빠져들었다.

일기 읽는 즐거움, 퍼즐 푸는 재미

이 책을 퍼즐을 푸는 식으로 다가선 것은 어디까지나 내 방식이다. 이 책은 '일기'인 만큼 글 비중이 크다. 다른 사람이 쓴 일기를 읽는 재미는 본 사람은 안다. 몰래 안방에 들어가서 일기를 들출 때면, '언제 일기 주인공이 올까' 가슴 두근거렸다. 귀는 쫑긋 세운 상태로 방문소리를 들었고, 두 손은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누구나 볼 수 있게 낸 일기에서 그런 긴장감이야 찾기 힘들겠지만, 내밀한 속내만은 엿볼 수 있다.

▲ 그림문자일기. ⓒ 노란잠수함

글쓴이는 처음 혼자 살게 됐을 때 무서움을 달래려 음악 듣던 이야기를 꺼내고, 식지 않고 계속 불타오르는 사랑을 말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그 누군가가 알아채면 어쩌나 조심스레 털어놓는다.

껍질 벗고 내놓은 마음 속 이야기라 읽는 이 마음도 자연스레 무장해제가 된다. 그런 상태로 다가오는 것은 웃음과 아릿한 슬픔이다.

"어릴 적 아이스 바를 너무 좋아해서 먹고 나면 뒤돌아서 또 먹고 싶어 사 먹고, 또 사 먹고 하다 보니 한 번은 아홉 개까지도 먹었다. 결국 배탈이 나고 말았지만 내가 유일하게 남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무슨 자랑거리라고), 아이스 바 먹기. 최초의 중독이었다."

"성탄절은 왠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연인과 데이트를 하는 사람, 가족과 보내는 사람, 어려운 사람들과 시간을 같이 하는 사람 등등……. 그리고 지금 나는 들뜬 마음으로 배를 땅바닥에 딱 붙이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웃음과 슬픔은 다른 감정이지만 참 잘 어울린다. 그림과 문자가 어우러지는 것처럼. 아이러니한 이런 감성은 이 책 전체를 뚫고 지나간다.

글쓴이가 그림문자를 만들게 된 계기는 지루함 덕분이었다. 유럽 여행에서 적막한 밤들을 맞이하게 됐고, 그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한 것이 바로 그림문자. 그러니 이 책이 나오게 된 일등공신은 바로 지루함인 셈이다.

복동이란 개 이야기도 그렇다. 글쓴이가 그렇게 못생기고 불쌍하게 생긴 개는 난생 처음 봤다고 할 정도인 복동이는 그 못남 덕분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측은하게 생겨서 더 사랑을 받은 것이다.

백미는 '(여자로)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편이다.

"딸부자집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집안에서 입지가 무진장 약했다. 어린 시절 가끔 동네 어른들은 내게 왜 고추를 달고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어 왔다. 집안 행사 때 사촌 오빠들이 오면 일곱 살 아이의 마음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열등감이 일었다. 엄마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까진 엄마는 항상 죄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들만 있는 고모들이 딸이 많은 엄마를 제일 부러워하신다. 엄마, 이제 죄송해하지 않겠습니다."

책은 주로 글쓴이 개인 신상을 다루지만, 자전거 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작품도 있다. 지난해 서거 정국 당시 쓰이기도 했단다.

글쓴이 마르스는 어린이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4컷 만화 <두루도로고미>, <오마이뉴스>에 만화 <꽃분엄마의 서울살이>를 연재한 것을 비롯, 만화 <꽃분엄마 파이팅!> <산타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문자그림일기 아트북 <꿈을 찾아 날다>를 펴냈다. 2006년엔 <꽃분엄마 파이팅!>으로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다.
덧붙이는 글 <상처는 버려라> - 마음을 그리는 만화가 마르스의 문자그림일기 / 마르스 / 노란잠수함 / 2009년 11월 / 1만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