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동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다. 방학이 주는 행복함은 책을 만나는 기쁨이 단연 최고다. 읽고 싶은 책들, 읽어야 할 책 목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들이미는 방학의 즐거움은 나를 철없는 어린 아이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새로 만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자양분을 비축하려면 겨울방학 동안 일년 동안 읽어야 할 책의 절반은 채워 둬야 한다. 아무래도 학기 중에 읽는 책은 갈증만 나서 영혼의 땅을 적시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도 함께 작가를 따라 내 유년의 뜰을 거닐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눈을 감고도 선명한 내 고향 뒷산 너럭바위에 가을이면 애호박을 썰어서 말리게 했던 어머니. 가을 오후의 햇볕에 잘 달구어진 그 바위 위를 맨발로 올라서면 따스하던 감촉이 온돌 방 아랫목처럼 좋았었다. 바삭하게 잘 마른 호박꼬지를 채반에 담아놓고 석양을 바라보던 어린 날의 기억도 더듬었다.
땡감이 익을 무렵 맨발로 감나무를 타고 오르면 씨가 많던 땡감의 떫은 엉덩이를 한입 베어물면 입 안에 가득 차던 탄닌 성분으로 오래도록 입이 가득했던 느낌까지. 단감 하나를 얻어 먹기 위해 옆집 자예에게 곰살맞게 친절을 다 보였던 가을 날.
광자 언니, 자예, 정숙이, 희자네가 전부였던 이웃집. 우리는 대부분 가난했고 슬픈 가족사를 가슴에 안고 납작하게 엎드려 살았다. 그런데도 울었던 기억이 별로 없으니 내 기억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밤알 주으러 다니던 뒤란, 오디가 열리던 낮은 언덕배기, 보리수를 따러 가파른 언덕을 달려 오르던 철없음이 거기 서 있다.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유년의 집이건만 뇌리 속에 선명하게 찍힌 모습은 사진보다 더 확실한 그날들.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다 장독대를 씻어내던 모습, 날마다 쓸어서 맨질맨질한 토방과 마당. 작은 마당에 꽃을 가꾸어 주시던 자상한 아버지의 손길이 멈추었던 꽃밭까지 눈에 밟힌다. 내 아버지는 아직도 그렇게 나를 기르고 계셨나보다.
그 아버지께 한번도 사랑한다 못 해본 설움이 코 끝에 내려앉아 황당한 물줄기를 뿜어낸다. 내 아버지 장재칠씨는 깔끔하고 기골이 장대한 분이었다. 피부가 너무 매끈하여 한겨울에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손도 트지 않으셨던 아버지. 짙은 황토색을 닮은 가무잡잡한 피부. 그 피부결이 좋으신 모습을 내 아들이 닮았다.
녀석은 스물 여섯이나 되도록 로션조차 바르지 않는다. 아니 끈적거림이 싫어서 바르기 싫단다. 유전인자가 그렇게 닮을 수 있음이 신기하다. 아들은 그래서 더 예쁘다. 가신 외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몸짓도 잘 해서이다.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모습, 잔말이 없이 점잖은 모습까지 쏙 빼닮았다. 특히 뒷통수는 빼다 박은 것 같다. 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이니 아들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아들에게선 늘 친정아버지의 잔영을 보곤 한다. 아들을 못 가져본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외손자였으니 당신의 좋은 점만 닮았으면 좋겠다.
영민함도 닮고 조심스러운 심성도 잘 간직했으면 한다. 그 아들은 지금 자신과의 싸움으로 군 생활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다. 남들 다 쉰다는 연휴에도 크리스마스에 귀향도 하지 않고 이 추은 겨울에 혼자서 이사도 하고 새해를 설계하고 있다. 생활비를 아낀다며 이 눈 속에 짐을 정리하여 살던 방보다 더 적은 곳으로 이사한다는 고집을 꺾지 못했다. 뭐든지 자신의 선택하고 밀고 가는 모습은 제대를 한 뒤에 달진 점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더 걱정인 아들이다. 그를 믿기로 했다.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기 원하는 그의 결정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대학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취업을 향해 이 눈 속에 돌진하는 아들의 행진에 신의 가호를 빌 뿐이다. 술도 담배도 여자 친구마저도 안중에 없다며 무섭게 삶의 현장으로 달려들어 2010년을 인생공부에 몰입한다는 그의 선택을 그저 바라만 보고 지지해 주려 한다.
아들은 이제 자신의 인생에서 즐겁게 먹었던 '그 많던 싱아'들을 뒤로 한 채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홀로서기의 달음질을 시작했다. 상아탑 속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토론을 즐기며 환타지 소설을 쓰던 취미 생활조차 던지고 어른이 될 준비에 나선 것이다. 최전방 수색 부대에서 잔뼈가 굵어지던 날부터 제대하면 해외 여행을 가고 싶다던 낭만까지 뒤로 미룬 채 달려가는 그의 도전을 생각하면, 어미로서 목울대가 뻣뻣해진다.
그가 인생의 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금은 비록 눈길을 헤매고 있지만 먼 후일 돌아보면 그 시간에 곧 인생의 '싱아'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비좁은 취업의 문턱에서, 넘치는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원칙을 지키며 성실함과 인내심으로 지혜롭게 관문을 통과하도록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일만 남았다. 좌절하고 힘들어할 때 어미의 무릎을 빌려주며 다독이고 싶지만 시공이 다른 서울에 혼자 서 있을 아들이 안쓰럽다. 혼자서 이삿짐을 옮기고 방을 정리하면서도 따끈한 국 한 그릇 해먹이지 못하는 어미 마음은 겨울보다 더 춥다.
새해 벽두부터 눈 속에 파묻힌 서울 소식을 보니 마음마저 춥다. 유례없는 실업난으로 혹독한 시절을 보내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그래도 희망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 눈 속에도 끄떡없이 서 있는 겨울 나무들을 보면서라도 힘을 내야 한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을 믿고 다시 힘을 내는 그 곳에 네 인생의 '싱아'는 생각보다 많이 있으니까! 아들아! 지금은 네 인생의 싱아를 만들고 있음을 잊지 말거라.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도 함께 작가를 따라 내 유년의 뜰을 거닐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눈을 감고도 선명한 내 고향 뒷산 너럭바위에 가을이면 애호박을 썰어서 말리게 했던 어머니. 가을 오후의 햇볕에 잘 달구어진 그 바위 위를 맨발로 올라서면 따스하던 감촉이 온돌 방 아랫목처럼 좋았었다. 바삭하게 잘 마른 호박꼬지를 채반에 담아놓고 석양을 바라보던 어린 날의 기억도 더듬었다.
광자 언니, 자예, 정숙이, 희자네가 전부였던 이웃집. 우리는 대부분 가난했고 슬픈 가족사를 가슴에 안고 납작하게 엎드려 살았다. 그런데도 울었던 기억이 별로 없으니 내 기억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밤알 주으러 다니던 뒤란, 오디가 열리던 낮은 언덕배기, 보리수를 따러 가파른 언덕을 달려 오르던 철없음이 거기 서 있다.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유년의 집이건만 뇌리 속에 선명하게 찍힌 모습은 사진보다 더 확실한 그날들.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다 장독대를 씻어내던 모습, 날마다 쓸어서 맨질맨질한 토방과 마당. 작은 마당에 꽃을 가꾸어 주시던 자상한 아버지의 손길이 멈추었던 꽃밭까지 눈에 밟힌다. 내 아버지는 아직도 그렇게 나를 기르고 계셨나보다.
그 아버지께 한번도 사랑한다 못 해본 설움이 코 끝에 내려앉아 황당한 물줄기를 뿜어낸다. 내 아버지 장재칠씨는 깔끔하고 기골이 장대한 분이었다. 피부가 너무 매끈하여 한겨울에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손도 트지 않으셨던 아버지. 짙은 황토색을 닮은 가무잡잡한 피부. 그 피부결이 좋으신 모습을 내 아들이 닮았다.
녀석은 스물 여섯이나 되도록 로션조차 바르지 않는다. 아니 끈적거림이 싫어서 바르기 싫단다. 유전인자가 그렇게 닮을 수 있음이 신기하다. 아들은 그래서 더 예쁘다. 가신 외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몸짓도 잘 해서이다.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모습, 잔말이 없이 점잖은 모습까지 쏙 빼닮았다. 특히 뒷통수는 빼다 박은 것 같다. 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이니 아들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아들에게선 늘 친정아버지의 잔영을 보곤 한다. 아들을 못 가져본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외손자였으니 당신의 좋은 점만 닮았으면 좋겠다.
영민함도 닮고 조심스러운 심성도 잘 간직했으면 한다. 그 아들은 지금 자신과의 싸움으로 군 생활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다. 남들 다 쉰다는 연휴에도 크리스마스에 귀향도 하지 않고 이 추은 겨울에 혼자서 이사도 하고 새해를 설계하고 있다. 생활비를 아낀다며 이 눈 속에 짐을 정리하여 살던 방보다 더 적은 곳으로 이사한다는 고집을 꺾지 못했다. 뭐든지 자신의 선택하고 밀고 가는 모습은 제대를 한 뒤에 달진 점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더 걱정인 아들이다. 그를 믿기로 했다.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기 원하는 그의 결정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대학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취업을 향해 이 눈 속에 돌진하는 아들의 행진에 신의 가호를 빌 뿐이다. 술도 담배도 여자 친구마저도 안중에 없다며 무섭게 삶의 현장으로 달려들어 2010년을 인생공부에 몰입한다는 그의 선택을 그저 바라만 보고 지지해 주려 한다.
아들은 이제 자신의 인생에서 즐겁게 먹었던 '그 많던 싱아'들을 뒤로 한 채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홀로서기의 달음질을 시작했다. 상아탑 속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토론을 즐기며 환타지 소설을 쓰던 취미 생활조차 던지고 어른이 될 준비에 나선 것이다. 최전방 수색 부대에서 잔뼈가 굵어지던 날부터 제대하면 해외 여행을 가고 싶다던 낭만까지 뒤로 미룬 채 달려가는 그의 도전을 생각하면, 어미로서 목울대가 뻣뻣해진다.
그가 인생의 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금은 비록 눈길을 헤매고 있지만 먼 후일 돌아보면 그 시간에 곧 인생의 '싱아'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비좁은 취업의 문턱에서, 넘치는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원칙을 지키며 성실함과 인내심으로 지혜롭게 관문을 통과하도록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일만 남았다. 좌절하고 힘들어할 때 어미의 무릎을 빌려주며 다독이고 싶지만 시공이 다른 서울에 혼자 서 있을 아들이 안쓰럽다. 혼자서 이삿짐을 옮기고 방을 정리하면서도 따끈한 국 한 그릇 해먹이지 못하는 어미 마음은 겨울보다 더 춥다.
새해 벽두부터 눈 속에 파묻힌 서울 소식을 보니 마음마저 춥다. 유례없는 실업난으로 혹독한 시절을 보내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그래도 희망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 눈 속에도 끄떡없이 서 있는 겨울 나무들을 보면서라도 힘을 내야 한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을 믿고 다시 힘을 내는 그 곳에 네 인생의 '싱아'는 생각보다 많이 있으니까! 아들아! 지금은 네 인생의 싱아를 만들고 있음을 잊지 말거라.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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