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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선거' 위해 MB참모 자처한 <조선> 김대중 고문

1월 4일자 기명칼럼 <'MB정치', 6·2선거에 달렸다> 감상법

등록|2010.01.05 10:37 수정|2010.01.05 10:37
"MB정권의 유효성을 어느 정도 연장시키려면 지방선거의 승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가 아무리 무엇을 잘했어도 2012년에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면 그는 '불행한 전임자'로 남을 뿐이고, 그의 업적은 쉽게 지워질 것이다."

"6·2선거에서 이긴 세력은 MB정부와 한나라당을 가차없이 파괴하려 할 것이며, 그런 속에서 아무리 '비(非)MB'를 내걸어봤자 결국은 MB와 같이 묻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나온 소리가 아닙니다. 한나라당보에서 나온 소리도 아닙니다. 바로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입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조선일보적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김씨가 <'MB정치', 6·2선거에 달렸다>는 타이틀을 단 새해 첫 기명칼럼을 통해 이 대통령에게 지방자치단체 선거 비책을 충고하고 나섰습니다. 제목이 시사하듯, 지방선거 승리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올인하라는 겁니다.  

▲ 2010년 1월 4일자 김대중 칼럼 ⓒ 조선일보




김씨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부를 위해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6월 2일에 치러지는 지방자치단체 선거는 현 정부의 실효성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MB정치의 후반(8월이 임기의 절반이다)은 다음 대권구도의 향방에 대한 국민적 관심 속에 묻혀버릴 수밖에" 없고 "G20회의를 끝으로 이명박 정권은 사실상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4대강 등 MB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지방선거에서 무조건 승리하는 수밖에 없다나요?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닙니다. 김씨가 지방선거를 6개월이나 앞둔 시점에서 이 대통령에게 뜬금없이 훈수를 자청하고 나선 데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권재창출이 6·2선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고, 만약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기라도 하는 날엔 "불행한 전임자" 신세를 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이 대통령만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김씨의 충정이 참으로 애틋하고 가슴 뭉클하지 않습니까? 이런 절박한 상황인식 위에서 김씨는 이 대통령에게 다음 세 가지를 코치합니다.

첫째,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한 국민 정서를 감안, 돈이 많이 드는 거대한 사업들에 매달리기보다 일을 정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 둘째, 세종시에 대한 시비로 정치적 동력을 잃게 되면 4대강마저 위태롭게 되는 고로, "4대강과 세종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심각히 고려"할 것. 셋째, "선거라는 괴물(?)은 약한 것 쪼개진 것을 먼저 잡아먹는 속성"이 있는 만큼, 당을 정비해서 단합된 이미지를 국민에게 보일 것, 운운.

재밌는 것은, 그러나 한나라당이 야당으로 있었던 김대중 국민의 정부 때는 김씨의 말이 이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의 중간평가적 성격을 띈 2000년 4월 총선거를 6개월 앞두고 작성한 1999년 10월 18일자 칼럼 <내년 4월'로 가는 길>에서, 당시 주필이었던 김씨가 뭐라고 말을 했는지 감상해 보시죠.

"김 대통령이 정녕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생각한다면 역설적으로 이번 선거를 의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김 대통령은 야당이 비록 합리적이지 못한 경우라도 그들을 멀리하지 말고 자꾸 끌어들였으면 한다.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는 쪽은 집권세력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다음 정권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야당을 대할 때 야당은 반드시 협조할 것이며..."

"선거에서 패배하는 순간부터 김 대통령은 더이상 통치의 기능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승세를 탄 야당은 더욱 기승할 것"이며 "국회는 지리멸렬 그 자체가 될 공산이 크다"면서 그 다음에 덧붙인 말이 이러합니다. 한 마디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야당에 무조건 정권을 넘겨주라는 말 아닙니까? 아마 정치개그 가운데 이보다 더 엽기적인 것은 없을 겁니다.

노무현 참여정부 때도 김씨의 이런 낯뜨거운 말장난은 계속됐습니다. 총선을 2개월 앞둔 2004년 2월 28일자 칼럼 <대안없는 정치>에서, 김씨는  정치자금 비리문제로 궁지에 몰린 야당(한나라당)을 국민이 살려야 한다며 이렇게 호소해 마지 않았습니다. 들어 보시죠.

"이제 한국의 정치는 야당의 지리멸렬과 함께 대안 없는 정치로 몰려가고 있다. 대안 없는 정치는 민주정치가 아니다... 이번 선거는 야당에 엄한 벌을 내릴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 벌 때문에 대안의 존재마저 말살할 수는 없다. 집권세력이 죽이려 해도 국민이 살려야 한다. 야당이 살아야 집권측도 산다.,,"

어떻습니까? 민주당이 여당일 때는 선거를 의식해선 안된다고, 또 민주정치를 위해 야당을 살려야 한다고 꼬드기고, 반대로 한나라당이 여당일 때는 정권재창출을 위해 반드시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조선일보 김씨의 복화술 묘기가?

스스로 언론인이기를 포기하고 자신을 한나라당 내지는 MB정부와 동일시하고 있는 김씨에게 이러한 편당질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런 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동경기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팀에 마음이 가듯이 말이죠.

다만 그렇더라도 앞으로 이런 말은 삼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무늬만 직필'이 아니라 진정 거짓과 위선을 경멸하는 사람이라면...!

"신문의 생명은 누가 뭐래도 비판입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습니다마는 신문은 잘한 것에 대한 '칭찬'보다는 비판의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본업이라고 배웠습니다."(김대중 칼럼, <정치의 계절, 시련의 계절>, 200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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