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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1)

달밤의 자객들 <1>

등록|2010.01.06 10:48 수정|2010.01.07 10:12
달빛이 너무 고왔다. 메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중전은 뒷갈망을 나직이 떨어뜨렸다.

"사흘 전 비몽사몽간에 꿈을 꿨어요. 밤이 깊어 잠 들어야 하는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조바심 치다 문득 잠이 깨었죠. 소리는 천장에서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가만히 귀 기울이니 쥐들이 천장에 구멍을 뚫고 저희끼리 찍찍대며, '내가 중전마마의 향낭(香囊)을 훔칠게' 하자 다른 하나가 '그러면 나는 주상전하가 쓰는 갓을 훔칠 거야' 하는 게 아니겠어요. 잠에서 깬 후 한 동안 천장을 올려다보았는데 주위는 여전히 조용했나이다."

그 꿈을 꾼 후 중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상한 생각 때문이리라. 쥐란 녀석은 도둑처럼 숨어들길 잘하고 무엇을 하건 조바심치는 동물이다. 그런 느낌을 받아선지 내의원 박봉사는 기(氣)가 허해졌다는 이유로 '가미귀비탕'을 준비시켰다.

이 약은 신경쇠약으로 기혈이 허해지는 불면증에 잘 들었다. 잠들기 전 쥐에 대해 조바심을 치더니 탕약을 마시고 두어 식경만에 깨어난 중전은 식은땀을 흘리며 몽롱한 시선을 허공에 띄웠다. 여전히 아지 못할 웅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저 놈의 쥐를 잡아야 해. 저 놈의 쥐가 상감의 갓과 내 향랑을 훔쳐갔어."

웅얼거림은 곧 신음으로 변해 잠자리를 같이 한 정조(正祖)의 심기를 건드렸다. 규장각(奎章閣)에서 왼종일 실학 논의를 한 탓에 피곤한 몸을 돌아누운 상감은 반짝 잠이 깨었으나 이내 코를 곯았다. 달빛이 구름에 가린 탓에 주위는 어두웠다.

이 시각, 경희궁 담밖엔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는 이들이 있었다. 한결같이 검은색 경장(輕裝) 차림에 등엔 검을 차고 있었다. 앞서 길을 열어 담벼락에 붙은 숫자가 스무 명은 되었고 주위를 경계하며 다가서는 인원이 그 정도는 돼 보였다. 그런가 하면 저만큼에서 경계를 펴는 자가 열 명 쯤인 걸 보면 도합 쉰 명은 돼 보였다. 그들은 누구 하나 말하는 이가 없었다. 길을 인도하는 향도(嚮導)의 손짓 하나로 좌나 우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이곳까지 인도자는 홍상범이었다.

"내가 강별감에게 들었던 곳이다. 근방에 수챗구멍이 있을 거니 자세히 살펴라."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더듬어도 수챗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별감 강계창과 나인 월혜가 자세히 그려준 수챗구멍은 하루 전 중전의 명으로 막혀 버렸다. 밤마다 사나운 꿈길에 쫓겨 허둥대던 중전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었다. 파루(罷漏)를 친 지 얼마 안 된 탓에 어렵게 든 선잠이었다. 악몽에서 깨어나 상체를 일으키자 정조는 가만히 안아주었다.

순간, 정조는 깜짝 놀랐다. 진저리를 치는 중전은 땀으로 범벅을 이루었고 동공이 열린 채 허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불덩이가 쏟아질 듯 머리는 열기가 들끓었다. 신열이었다.

"무슨 일이오, 중전. 정신을 차려요."

중전은 허공에서 시선을 거두고 잔뜩 겁에 질려 옹알거렸다.

"전하, 쥐의 모습을 한 신상(神像)이었어요. 얼굴이 사나운 장승 모습이구요.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쥐의 모습이었다니까요. 이 놈의 쥐, 쥐를 잡아야 해요."

온몸이 땀투성인 중전을 정조는 꼬옥 껴안았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중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쥐들이 다니는 길을 막아야 해요. 그곳을 막아야 쥐가 못 들어와요."

중전이 낯빛을 굳히며 웅얼거리는 바람에 경희궁 수챗구멍은 하룻밤 사이에 막혔다. 사정이 그러했기에 아무리 수챗구멍을 찾아도 나타날 리 없었다. 홍상범이 목소릴 깔았다.

"이보게, 전대장."

전흥문이 얼른 다가섰다.

"예에."
"어차피 거사에 나섰으니 실패든 성공이든 하늘에 달렸네. 허나,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네. 하늘이 도와 거사에 성공하건 그렇지 않건 이 담을 넘는 것과 동시에 우린 모르는 사람이네. 거사가 실패해 죽임을 당할지라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 그 말이야. 그래야 장차 자네의 원수를 갚을 사람이 나타날 게 아닌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수챗구멍을 못 찾았으니 담을 넘겠습니다."

홍상범이 일어서며 전흥문의 손을 움켜잡았다.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짐하듯 한 차례 손을 흔들더니 급히 돌아섰다. 홍상범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시선을 거두며 전흥문은 일어섰다.

"담을 넘겠다. 모두 내 뒤를 따르라!"

전흥문은 훌쩍 담을 뛰어넘어 어둠속에 몸을 숨겼다. 그 움직임이 고양이처럼 날렵했다. 멀지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부엉이 우는 소리가 한층 밤이 깊어졌음을 실감케 했다. 침입자들은 담을 넘은 즉시 전각으로 올라가 존현각(尊賢閣) 쪽으로 달렸다.

움직임은 일사불란 했으나 누군가의 실수로 기왓장이 깨어졌다. 정조와 중전은 깨어있었기에 그 소리를 들었다. 같은 시각에 경추문(景秋門) 근처를 순라하던 위장(衛將) 김춘득(金春得)도 그 소릴 들었다.

"웬 놈이냐?"

장검을 뽑아든 채 앞으로 달려 나갔다. 경추문은 금호문(金虎門)에서 쭉 내려오는 곳이므로 불한당이 침입할 가능성이 높았다. 서문은 평소엔 닫혀 있어 장수가 군왕으로부터 출정명령을 받을 때는 이 문을 이용했다. 김춘득이 앞으로 나아가자 검은 꽃잎같은 무리가 담장 위에서 뛰어내리는 걸 목격했다. 그의 재빠른 솜씨가 몸을 채 가누지 못한 놈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아악!"

사내가 거꾸러지자 뒤이어 뛰어내린 놈들이 김춘득을 에워쌌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사나운 호통이 어둠 속 찬 공기를 흔들었다.

"네 놈들은 누구냐? 어디라고 함부로 침입했느냐!"

고함지르는 것과 함께 김춘득의 칼날이 사선(斜線)으로 그어졌다. 덩치 큰 사내는 상체를 휘며 몸을 누이더니 일어서는 반동에 힘을 모아 칼날을 그었다. 섬뜻한 전율이 목덜미를 엄습했다.

"타앗!"

기합을 내지르며 팽이처럼 몸을 돌려세운 김춘득은 장검을 맞받아쳤다. 금속성의 날카로운 쇠붙이가 철렁대며 두 사람은 순식간에 좌우로 나뉘었다. 거친 숨을 몰아 쉰 복면의 사내는 어둠 속에서 눈빛을 번뜩였다. 전흥문이다. 그는 침입자의 대장으로 부하들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한양 땅에 자신의 칼날을 받을 자가 없다고 큰소릴 쳐 왔는데 경추문의 수직군관 하나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에 내심 이를 갈았다.

자신을 도와 칼을 휘두르는 부하들을 비켜세우고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 상대와 결판을 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김춘득은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침입자의 솜씨가 여간내기가 아니어서 혼자 감당하기 버거웠고 침입자들이 한꺼번에 덤벼든다면 어찌해야 하나 갈등이 일어나던 참이었다. 도망치자니 꼴이 우습고 그들 모두를 상대하자니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침입자의 대장으로 뵈는 자가 일대일로 승부를 가리자 하니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일대일이면 해볼 만하다.'

김춘득은 칼을 잡은 손에 힘을 빼고 두어 걸음 너울춤을 추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와! 하는 함성이 울리며 주위가 밝아졌다. 숙위소 병력이 횃불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횃불엔 상관없이 전흥문은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거사는 이미 실패다. 허나 자신이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만난 호적수와 반드시 겨뤄보고 싶었다.

주위가 더욱 밝아졌다. 궁 안의 모든 불이 켜진 모양이다. 숙위병의 숫자가 늘어나자 자객들은 슬슬 뒷걸음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와는 달리 좌중의 사람들은 칼부림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몸놀림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용호상박, 결투는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침입자들이 달아난 경추문 안은 오로지 두 사람의 결전만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었다. 경이로울 정도로 출중한 두 사람의 무예실력에 어느 누구도 쉬 다가서질 못했다. 밖으로 추격 나갔던 병사들이 짝을 지어 돌아오자 누군가 그들을 향해 핀잔을 놓았다. 홍국영이었다.

"역적 놈들을 모두 놓쳤단 말이냐?"

홍국영이 노발대발 소리쳤지만 이미 괴한들은 멀리 빠져나간 뒤였다.

"에잉, 이런 등신들. 궁 안에 들어온 괴한을 놓쳐?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도 모르잖나. 궁궐 수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자들이 쥐새끼 같은 침입자를 못 잡는 데야 말이 되는가!"

병사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홍국영은 일이 어찌 돼 가는지 몰라 간담이 서늘했다. 지금은 숙위소 병력이 투입되었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수습할 채비를 서둘렀다.

"뭣들 하느냐. 부상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치료하라. 그 중에 침입자가 섞여있지 않은질 파악하라!"

병사들이 부상자를 살폈으나 침입자는 없었다. 비명을 울리는 자는 한결같이 숙위소 병력이었다. 괴이하게도 침입자들은 모두 숨통이 끊겨 있었다. 전흥문이 움직이면서 운신이 어려운 부하들의 숨통을 자른 것은 국문을 통해 배후가 드러날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망자를 한 곳에 모으는 소란이 끝나자 병사들은 원진(圓陣)을 짜고 빙 둘러서 구경했다.

이제 결투는 승패가 분명해 보였다. 원진의 중앙에서 전흥문은 비세에 몰려 뒷걸음질쳤다. 그의 무예가 김춘득에 미치지 못해선가. 아니다. 둥그렇게 둘러싼 군사들을 보면서 전흥문은 자신이 이곳에서 죽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허탈해졌고 검기가 흐트러졌다. 순간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김춘득의 칼날이 파고들 때 홍국영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여보게 김춘득! 그놈 숨통을 끊지 말고 반드시 생포해야 하네!"

김춘득은 고개를 끄덕이며 칼날을 곧추세웠다. 그 순간 침입자가 자기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것이 자결할 때의 동작임을 김춘득이 모를 리 없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칼날을 안으로 당기던 전흥문은 팔이 시큰했다. 그 순간 손에서 빠져나간 칼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소릴 들었다. 다시 다리가 시큰거렸다. 그는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달려들어 그를 결박했다.자신의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절망감에 전흥문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장하다, 김춘득!"

홍국영이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장하다, 김춘득!"

누군가 홍국영의 말을 받아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자신을 희롱하는 줄 알고 뒤돌아보던 홍국영이 넙죽 엎드렸다. 어느 새 정조가 거동해 있었다. 홍국영의 뒤쪽으로 병사들이 엎드리자 고운 달빛에 번쩍이는 용포가 찬연한 빛을 뿜었다. 정조의 한마디가 무거웠다.

"모두 수고 많았소!"

죽을힘을 다해 싸운 끝에 기진해 버린 전흥문은 오랏줄에 묶여 숙장문(肅章門) 앞으로 끌려 나왔다. 친국장소다. 보위에 오른 후 친국하는 건 처음이라 가능하면 좋은 말로 타일러 배후를 알고자 할 뿐 가혹한 형벌은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기가 찼다. 저놈에게 명을 내린 자가 누군가. 어떤 배포를 가졌기에 군왕의 침전까지 들어오려 했는지 정조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마음자리가 넉넉한 왕은 장형(杖刑)이나 태형(笞刑)으로 죄인을 고문하거나 참수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 자리를 떠나 실학을 연구하는 고아한 선비들과 규장각에서 시문을 들척이며 담론을 즐기고 싶었다. 눈앞의 죄인, 전흥문이란 사내가 자신을 죽이려 궁에 침입했다는 사실에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죄인은 고개를 들라! 과인은 너와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무슨 일로 나를 향해 칼을 들었느냐?"

작가의 말
정약용은 영조 38년인 1762년 6월 16일 경기도 광주군의 명문집안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대학자다. 나이 열다섯에 서울에 옮겨 산 그의 곁엔 문학으로 이름 높은 이가환이 있었고 매부 이승훈은 성호 이익의 유서(遺書)를 읽어 크게 심취했다. 그의 10세 이전의 작품집 <삼미집(三眉集)>을 보면 격찬을 받은 바 있거니와 26세에 반시(泮試)를 보았을 때 13귀(句) 한 편의 글자들이 살아 있다고 정조(正祖)가 부채를 두드리며 감탄할 정도였다.

그의 일생은 대체로 3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제1기는 스물 둘에 경의진사(經義進士)가 되어 줄곧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될 때였다. 이후 암행어사 · 참의 · 좌부승지 등을 거쳤으나 한때는 금정찰방 · 곡산부사 등으로 좌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조의 지극한 총애는 화를 불러 신유교옥에 연좌돼 곤욕을 치렀는데 이 시기엔 학문적 업적으로 대단한 건 없으나 이미 16세 때 이가환 · 이승훈으로부터 이익(李瀷)의 학문에 접하였고 스물 세 살 때에는 마재와 서울을 잇는 두미협(斗尾峽) 뱃길에서 이벽(李檗)을 통해 서양서적을 가까이 하였다.

연재되는 내용은 그의 1기에 해당하는 서른 살 전후 행장(行狀)을 담은 내용으로 서른셋에 경기도 암행어사를 제수받기 전, 홍문관 수찬(修撰)으로 근무할 무렵, 정조의 특별한 암행지시에 대한 기록이다. 그의 빼어난 추리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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