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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사랑채' 가보니 씁쓸한 웃음만

일반인에게 처음 개방된 6일 아침, '야심찬' 사랑채는 한산했다

등록|2010.01.06 21:24 수정|2010.01.07 09:27

▲ 대통령박물관으로 불리며 내·외국인들에게 청와대 홍보공간 역할을 해 왔던 '효자동 사랑방'이 '청와대 사랑채'로 새롭게 꾸며져 일반에 공개됐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를 찾은 한 시민이 대통령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 지상2층, 지하 1층 연면적 4,117㎡인 청와대 사랑채는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예약없이 누구나 방문 가능하다. ⓒ 유성호


지난 5일 청와대사랑채 개관식이 열렸다. 청와대사랑채라. 그곳은 또 무엇을 하는 곳인가 궁금하여 개장 첫날인 6일 구경 가봤다. 청와대사랑채는 시민 누구나가 찾아와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만들겠다며 '효자동사랑방'을 리모델링해 지은 건물이다. 지난해 3월부터 공사를 시작했고, 예산은 190억 원이 투입됐다.

그냥 사랑채가 아니고 '청와대사랑채'라 역시나 안전요원들의 경호가 삼엄했다. 차에서 내려 사랑채 쪽으로 가는 짧은 길에서만, 까만 옷을 입고 무전기를 든 덩치 큰 아저씨들이 두 번씩이나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대한민국 사랑방 청와대사랑채에 들러 차 한잔 어떠세요?'라는 온화하고 친근한 홍보 문구와는 많이 동떨어져 보이는 청와대사랑채의 첫인상이었다.

그래도 건물외관은 근사했다. 사랑채 앞마당에는 폭설로 인해 눈이 수북했는데, 뒤쪽 눈 덮인 청와대와 북악산의 쑥백설기 같은 새하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며 청와대사랑채의 겨울 배경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당 위에 수북한 눈을 쓸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던 수십 명의 군인들에게는 겨울의 운치란 딴나라 이야기일 것 같았다. 

어라, 사람이 없네?

▲ 대통령박물관으로 불리며 내·외국인들에게 청와대 홍보공간 역할을 해 왔던 '효자동 사랑방'이 '청와대 사랑채'로 재개장한 가운데 6일 오전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을 재현해 놓은 집무실에서 홍보도우미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 유성호


개관식도 화려했고 건물도 화려했다. 이제 수많은 시민들과 다양한 볼거리만 관건으로 남았다. 그런데 일반인에 대한 개방 첫날이라서 그런지, 홍보관 안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왔다 갔다 분주한 사람들은 안전요원이거나 서울시청 관계자들, 그리고 홍보 스태프들이 대부분이었다.

청와대 비서관들 여럿이 와서 홍보관을 돌아보고 있었다. 한 비서관에게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식당도 맛있다고 소문이 나야 사람들이 찾아오지, 바로 사람들이 많이 오겠어요"라며 홍보를 많이 하면 붐비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관람객이 거의 없는 덕에 홍보관 스태프에게 개인 설명을 들으면서 홍보관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청와대 사랑채는 1층과 2층으로 나눠져 있다. 1층에는 '대한민국관', '하이서울관'이 있어서 한국 혹은 서울에 대한 간단한 이미지들과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상징적이거나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자료들이 대다수라,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우리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또 "우리 이제 부자나라 됐어요!"라는 '경제 성장 신화'에만 공간을 너무 많이 썼다.

홍보관 스태프 이진희씨는 "서울에 대한 자료는 많지만 외국인들이 보시기에 한국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자료는 좀 부족할 수 있어요"라며 "박물관이나 고궁을 둘러보시고, 저희 청와대사랑채를 찾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청와대사랑채서 대통령 개인 마케팅을?

▲ 2009년 6월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증한 루즈벨트 대통령 저작 초판본(왼쪽)과 2008년 5월 27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기증한 실크부채가 전시되어 있다. ⓒ 유성호


2층은 1층에 비해 시선을 끄는 것들이 더 많았다. 2층에는 대통령관, 대통령체험관, 녹색성장관, G20휴게실이 있다. 대통령관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들과 이들이 다른 나라로부터 받은 희귀한 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증한 루즈벨트 대통령 저작 초판본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기증한 실크부채 등 예전의 것부터 최근 것까지 다양하다.

대통령체험관에는 파란 부스가 하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전에 유행했던 '스티커사진'처럼 배경 그림에 몸을 맞춰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치를 해놓았다. 그런데 그 배경은? 쩝. 이명박 대통령이다. 원한다면 대통령 내외를 배경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배경이 되는 대통령 모습도 다양하다. 정수리에 손가락을 모으고 '하트'모양을 만든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을 클릭하고 있자니 웃음이 새나온다. 황당해서다. 국민이 편히 쉴 공간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국민의 세금을 써서 이명박 대통령 '개인 홍보관'을 지은 게 아닌가 싶다.

▲ 대통령박물관으로 불리며 내·외국인들에게 청와대 홍보공간 역할을 해 왔던 '효자동 사랑방'이 '청와대 사랑채'로 재개장한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에서 한 시민이 '대한민국'이라고 새겨진 국새를 찍어보는 체험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대통령과의 영광스런(?) 사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메일로 보낼 수 있게 해놓았다. 그런데 기술적인 문제까지 애매하다. 화질이 좋지 않아서 사진을 찍었을 때 이명박 대통령만 '선명하게', 관람객 얼굴은 '찌그러져' 나온다.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찍어서 메일로 보낸 영광의 사진 3장도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

사진 부스 맞은편에는 모형 국새로 종이에다 관람객들이 직접 '대한민국' 도장을 찍어내는 작업을 할 수 있다. 두 번을 시도했는데 두 번 다 잘 찍히지 않았다. "도장 찍기를 경험해보라"던 홍보 스태프도 민망해하는 눈치였다. 복도로 나가는 통로 쪽에는 본인의 얼굴 사진을 찍어서 모니터에 사진을 남기는 '사진 방명록' 기계도 있었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얼굴을 남기면 개운치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화려하고 신기한 장치와 기계들로 서울과 한국의 세계적 위상을 '강조'해놓았지만, 실질적으로 별 내용은 없었다. 국민 세금을 이명박 대통령 개인 마케팅 비용으로 쓴 것과 그나마도 준비가 부실한 것까지, 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서울시 관광홍보과 팀장은 급하게 직원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용을 모르면 설명을 못하니까, 준비를 잘하고 있어!"

"테라스에서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청와대사랑채가 여타 박물관들과 다른 점은 마지막에 4대강 살리기, 녹색성장 등 '현 정부 정책을 선전하면서 동선이 마무리된다는 것'과 역시나 안전요원들의 '무게감'이다. 혼자서는 '시민들이 휴식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는 테라스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얘기에 홍보 스태프를 동반하여 나가보았다.

"어어, 내려오세요. 거기 올라가시면 안 됩니다!"

테라스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으면 청와대의 내부가 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사랑채' 근무자여서 그런지 "바닥이 얼어서 나가시면 미끄러지십니다"라며 부드럽게 둘러 대신다. 2층 홀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또 어딘가에서 "여기서 청와대 방향으로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청와대 방향이 아닌 2층에서 내려다 본 1층 모습을 찍으려고 하자 "뭐… 찍는 거죠?"라면서 다른 안전요원이 어딘가에서 슬쩍 나타났다. 부담스러운 사랑채다.

대통령관 앞 복도에 진열 돼 있던 '파란 어린이 환경그림 공모전'을 혼자 감상 중이던 일본인 관광객 오비나타 시게이(50)씨는 "파전, 비빔밥 등 한국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 지난 3일 부산을 통해 여행을 왔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청와대사랑채에 대한 정보를 얻었던 그는 이곳이 "한국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폴리스맨(경찰)'이 너무 많다"며 "어디에 가느냐는 질문을 3번 받았다"고 웃기도 하였다. 

불편하고 황당한 내용을 한껏 담고서는 화려하게 겉치장한 '청와대사랑채'. 과연 국민의 세금 190억 원의 값어치를 해낼 수 있을까?

▲ 대통령박물관으로 불리며 내·외국인들에게 청와대 홍보공간 역할을 해 왔던 '효자동 사랑방'이 '청와대 사랑채'로 재개장한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에서 시민들이 G20 정상회의장을 재현해 놓은 'G20휴게관'을 둘러보고 있다. ⓒ 유성호

덧붙이는 글 권지은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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