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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개-대기업 1개? "서대문구 만도 못한..."

정부 수정안, 세종시 사실상 '백지화'... 정치권 논쟁 '재점화'

등록|2010.01.06 19:14 수정|2010.01.06 22:06
6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A4용지 70쪽 분량의 '세종시 수정안' 초안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정치권의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지난해 말 정 총리 전격 기용과 더불어 번졌던 세종시 수정 논쟁에 이은 2라운드다.

2라운드 논쟁은 초반부터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수정하겠다"는 정부의 방침만 있을 뿐 구체적인 대안이 없던 1라운드와 달리 이번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틀이 드러났다. 9부2처2청을 포함한 36개 정부부처 이전 계획은 없어졌고, 대신 고려대·카이스트 등 2~3개 대학 일부와 대기업 1곳을 포함한 기업들, 14~17개 연구단체가 옮겨가는 게 청사진으로 제시됐다.

이는 야당과 충청권, 전문가들이 우려한대로 사실상 '세종시 백지화'란 점에서 벌써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 범야권 강한 반발... "21세기판 정경유착"

▲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이 6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 내용과 관련, "이명박 정부와 정운찬 총리는 땅 퍼주기 특혜와 기업 손목 비틀기라는 21세기판 정경유착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 남소연



정부는 대학과 기업, 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인근의 대덕테크노밸리나 청주 3·4공단(3.3㎡당 80~120만 원), 오송·오창산단(3.3㎡당 70~100만 원) 보다 싼 가격(3.3㎡ 당 30~40만 원)으로 토지를 공급하겠다고 밝혀 '특혜시비'가 커지고 있다. 또 삼성그룹 신규사업부문이 세종시로 옮겨갈 것이 유력해지면서 "이건희 사면은 결국 세종시 투자유치를 위한 빅딜"이라는 비판에도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뒤 물을 마시고 있다. ⓒ 남소연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은 즉각 청와대를 비판하며 전투준비태세 갖추기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오는 8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한 뒤 10일 계룡산 등반대회를 통해 반대여론을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에는 서울 및 충청권에서 대규모 규탄집회를 열기로 했다. 여론몰이를 위한 전국 순회대회도 계획중이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졸작 중의 졸작"이라고 깎아내렸다. 안희정 최고위원도 "정부안은 행복도시백지화 계획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예상대로 정부 수정안은 땅퍼주기 특혜와 기업 손목 비틀기를 통한 21세기판 정경유착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대학 제3캠퍼스 2~3개, 대기업 1개, 중소기업 1~2개 가 본들 그게 무슨 도시냐, 시골의 한 읍 정도가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고려대와 카이스트의 일부 대학이 옮겨간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명지대 등 8개 종합대학이 몰려 있는 서울 서대문구 수준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자유선진당도 격앙된 분위기다. 당장 "세종시가 땅투기 공급기지가 됐다"(이회창 총재), "세종시는 (이건희) 특사도시, 삼성그룹은 세종그룹"(박선영 대변인)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한나라당 내부 반발도 만만찮다. 친박그룹은 물론 헐값 토지공급으로 유치해 놓은 기업과 연구소 등을 뺏길 처지에 놓인 혁신도시 지역구 의원들이 앞장 서 반기를 들었다. 경제자유구역과 첨단복합의료단지를 추진 중인 대구지역 유승민(친박), 이한구(중도) 의원은 "날벼락을 맞았다"며 "친이, 친박 가릴 것 없이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해야 한다"고 청와대 공격에 나섰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유승민 권영세 이혜훈 송광호 의원과 얘기를 나누다 지도부쪽을 바라보고 있다. ⓒ 남소연



혁신도시-친박 의원들도 청와대 공격... 지방선거 앞두고 '속도조절론' 고개

이처럼 정치권의 반발이 커지면서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로 넘어온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표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방침에 동의하는 한나라당 지도부조차 '속도조절'을 강조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종시 수정안을 무리하게 강행처리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한나라당 세종시특별위원회(위원장 정의화)는 이날 '세종시특위 백서'를 발간하고 활동을 종료했다. 하지만 세종시특위가 발간한 이 백서는 수정안 찬반 주장만 담고 있을 뿐 명확한 결론이 없다. 말그대로 세종시 백지화를 뒷받침하는 '백서(白書)'가 된 셈이다.

정부는 오는 11일 예정대로 세종시 수정안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날 청와대 보고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수정 지시'가 떨어져 일부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 기업과 다른 도시 유치가 계획된 기업은 세종시에 포함시키면 안 된다"는 등 5개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정부 발표가 하루 이틀 늦춰지더라도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불꽃 튀는 설전은 내주 초반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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