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만든 공무원 '다면평가' 사라진다
[주장] 너무도 궁색한 정부의 다면평가 폐지 이유
▲ 점심식사를 마친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휴계실 모여 불안한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 이화영
전도유망한 31세의 젊은 청년 김아무개씨가 지난해 10월 자살했다.
김씨는 100: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7급 공무원공채시험에 합격해 2005년 경기도 용인시에 임용됐다. 직장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공무원 경력 3년 만에 공직사회에서 노른자위로 꼽히는 인사부서 차석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그는 이 부서에서 근무한지 채 5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특정인을 승진시키기 위해 도장을 위조하고 근무평정 서류를 조작한 혐의로 감사원 감사를 받은 지 20일 만에 결국 심적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검찰은 김씨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직속상관인 전 행정과장 김아무개(53)씨와 전 인사담당 이아무개(48)씨를 구속하는 한편, 이들 선에서 광범위한 인사비리가 자행됐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몸통'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다면평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본격 시행
공무원 6급 이하의 승진인사는 근무평정 70%와 다면평가 30%를 합산해 4배수로 인원을 선발하고 인사위원회에서 2배수로 압축해 그중 인사권자가 1명을 낙점해 승진시킨다. 5급 이상의 경우 과정은 6급과 같지만 승진 자 결정은 인사위원회에서 한다.
이번 사건의 유형은 승진 자를 결정하는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근무평정 서류 조작이다. 10여 년 전만해도 승진 자에 대한 평가는 인사권자나 관리자가 평가를 하는 근무평정이 100%를 차지하면서 금품이 오가거나 줄서기를 하는 등의 사건이 비일비재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다면평가다.
노무현 정부 들어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의 인사비리를 막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다면평가제'를 전면 시행했다. 이 제도는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장관 때 인사의 전횡을 막고 합리적인 인사를 위해 지난 2000년 도입, 체계적으로 만들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다면평가제는 공무원 승진, 보직관리, 성과급 지급, 교육훈련 등에 폭넓게 활용돼 왔다. 이 제도는 인사권자나 관리자 한사람의 독단적 평가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선배, 동료, 후배가 평가에 참여하게 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실적과 능력 중심의 인사 유도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공직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공무원들의 수직 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개선되고,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던 문화가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또한 상명하달, 일방통행 식 회의도 조심스럽지만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선까지 진보했다.
'인기투표', 감정적인 평가라면 대통령 선거도 폐지?
▲ 행정안전부 보도자료 ⓒ 행정안전부
정부는 지난 4일 다면평가제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인기투표와 감정적인 평가, 얼굴도 모르는 직원을 평가하는 등 일부 부작용과 일부기관에서는 비교섭 대상인 다면평가관련 사항을 단체협약에 포함시키는 등 위법사항도 확인됐다는 것이 폐지 이유다.
정부의 폐지 이유가 참 궁색하다. 어떤 평가나 투표든 인기와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에 불신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참여시킨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 기본이다. 체육관 정권으로 불리는 전두환 정권은 아직까지 '정통성 없는 정권'이란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 선거조차 인기와 감정이 개입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기투표로 혹은 감정적인 평가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을 선출한다고 선거제도를 폐지할 건지 정부에 묻고 싶다. 정부의 논리대로 특정인 한사람이 평가 한다면 인기와 감정 개입 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또한 얼굴도 모르고 평가를 한다는 대목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전자결재 시스템에서 이름검색하면 얼굴 확인 가능하고 평가자에게는 피 평가자의 근무실적이 보내져 평가의 바로미터로 활용되고 있다. 다면평가가 단체협약 비교섭 대상이라면 제도적 보완을 통해 해결해야함이 마땅하다.
어느 정책보다 투명해야 하는 공무원 인사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공직사회에선 매관매직 양성화로 부정부패가 심화되고, 표를 의식한 자치단체장이 학연·지연에 따른 인사전횡을 가속화시킬 거란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또한 '어느 라인에 서야 살아남을지 주판알을 잘 튕겨라'라는 줄서기 논란까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번 다면평가제 폐지는 정부가 지난해 말 공무원이 집단이나 연명, 또는 단체 명의를 사용해 국가 정책을 반대하거나 국가 정책의 수립·집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한 복무규정 개정과 맞물려 공무원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려는 검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공무원이 정권을 위한 봉사자가 아닌 국민의 공복이라면 의료민영화라든가 4대강 정비사업 등 잘못된 정부정책에 대해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정책 중 잘못된 부분을 국민들이 바로 볼 수 있도록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정부의 시행하는 공무원 관련 제도는 한마디로 '찍히면 죽는다, 입 닫고 시키는 대로해'로 귀결된다.
소소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훌륭한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은 빈대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일과 같다. 공무원 인사는 어느 정책보다 투명해야 한다. 김아무개 청년처럼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더 이상 이 땅에서 발생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충북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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