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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보 록팬, 뮤즈 내한공연에서 '떡실신' 하다

[현장] 뮤즈 내한공연 일일 관객 체험기

등록|2010.01.09 10:18 수정|2010.01.09 10:18

▲ 7일(목) 밤 8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뮤즈 내한공연. ⓒ 장영우


나는 록 음악을 싫어한다. 무릎이 훤히 보이는 갈기갈기 찢어진 청바지에 육군들이 신는 워커와 비슷한 높은 굽의 구두, 젖꼭지가 톡 튀어나올 정도로 딱 붙은 반팔 티셔츠에 갖가지 색깔로 물들인 헤어스타일까지.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결코 아니다. 너나할 것 없이 성대가 찢어져라 옥타브를 높이는 보컬들은 마치 소정의 상품을 거머쥐기 위해 '옥타브 높이기' 경연대회에 나온 참가자들 같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깜깜한 공연장에서 '헤드뱅잉'을 하는 관객들을 보며 '저거 정신 나간 것 아냐?'라고 했던 사람, 걸어서 들어간 공연장을 119 구조대원의 들것에 실려 나오는 관객들을 보며 '돈 아깝게 공연장에 왜가? 차라리 분위기 있게 뮤지컬을 한 편 보지!'했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록 공연장에 갔다.

7일(목) 밤 8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펼쳐진 '뮤즈 내한공연(The Resistance Tour in Seoul)이었다.

록 음악을 싫어하는 내가 뮤즈 내한공연을 찾은 까닭은 뮤즈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남동생 영훈이의 영향이 컸다. 중학교 2학년인 영훈이는 '신나는' 겨울방학을 맞아 뮤즈 내한공연에 갈 계획을 세웠고, 하나뿐인 형인 내가 그 상대로 낙점됐다.

처음 '뮤즈 공연에 같이 가자'는 제안에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아직 어린 동생을 공연장에 데려갈 보호자로는 형이 최고'라고 말씀하신 엄마의 간곡한 부탁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다행히도 평소 뮤즈 음악을 즐겨 들었던 터라 그들의 공연에 대한 큰 부담이 없었음에, 나는 얼떨결에 뮤즈 내한공연에 가게 됐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1인당 7만 7천원의 티켓 값은 영훈이가 전적으로 지불했고, 이 공연은 나의 10대 마지막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

'전 세계가 인정한 밴드' 뮤즈

뮤즈 멤버 세 명뮤즈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2007년 이후 3년 만이었고, 7일 올림픽공원서 열린 내한 공연을 위해서다. ⓒ 옐로우나인

공연 하루 전날, 동생이 일찍 잠든 틈을 타 얼른 컴퓨터 앞에 앉았다. 뮤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멤버는 몇 명이고 언제 데뷔했으며 주요 곡은 무엇이냐, 정도는 알고 공연에 가는 것이 뮤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많은 정보를 쉽게 찾기 위해 '뮤즈 내한공연' 티켓을 파는 '인터파크' 사이트에 접속했다. 놀랍게도 내가 가는 공연이 예매율 1위였고 좌석이 다 팔려 있는 상황이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뮤즈의 인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내한공연 주최사인 '스테이지 팩토리'는 뮤즈를 '전 세계가 인정한 밴드'라고 표현했다. '전 세계가 인정한 공격수'를 호나우두라고 말하는 데 이견이 없는 나였지만, '전 세계가 인정한 밴드'가 뮤즈인 줄은 정말 몰랐다.

전 세계에서 가장 환영 받는 밴드, 뮤지션들에게 존경받는 뮤지션, 밴드들에게 존경 받는 밴드, 뮤즈는 그 어떠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최고의 뮤지션인 모양이었다.

영국의 온라인 음악잡지 'NME'는 "뮤즈는 지금까지 어떠한 밴드도 범접하지 못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밝힌 바 있다.

뮤즈는 매튜 벨라미(보컬, 기타, 키보드), 크리스 볼첸홈(베이스 기타, 키보드 보컬), 도미닉 하워드(드럼)로 구성됐다. 딱 보기에도 잘 생긴 매튜가 우리나라 김창완 밴드의 김창완, 윤도현 밴드의 윤도현 정도로 보였다.

리더의 품위가 느껴지는 외모라고나 할까? 크리스는 옆집 삼촌, 하워드는 장난 끼 많은 미중년 같았다. 뮤즈는 지난 2007년 3월 7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데뷔 후 첫 내한 공연을 열었고, 당시 7천여 팬을 열광시키는 최고의 무대를 선보인바 있었다.

그렇게 뮤즈 공부를 마치고 자정이 넘은 시간 눈을 감았다. 뮤즈의 대표곡인 '스타라이트(Starlight)', '타임 이즈 러닝 아웃(Time Is Running Out)', '히스테리아(Hysteria)'를 무한 반복해 차례대로 들으면서.

영하 10도, 눈밭에 반팔도 좋아 '뮤즈만 볼 수 있다면'

▲ 내한공연 시작 3시간 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모습. 뮤즈를 보러온 수 많은 팬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 장영우


공연 시작 3시간 전인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에 내렸다. 공연 시작이 한참 멀었지만, 올림픽공원역은 등판에 '뮤즈'가 적힌 단체 점퍼를 입은 팬 카페 소속 회원부터 대전, 대구, 울산 등 지방에서 원정을 온 팬들로 북적거렸다. 흡사 축구 A매치를 보러온 관중들로 떠들썩했던 서울월드컵경기장 같았다.

지난해 여름 올림픽공원에서 가까운 올림픽 파크텔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어 주위풍경이 낯설지 않았지만, '뮤즈를 본다'는 기대감과 뮤즈 노래를 흥얼거리는 팬들 속에서 걷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다.

'쿵쾅 쿵쾅' 신촌 한복판에서 헤어진 첫 사랑을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시원한 생수를 마시고 나셔야 금새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우리는 '인기 아이돌 그룹' 2PM을 보러 여의도에 있는 KBS 별관을 찾은 소녀 방청객처럼 일렬로 줄을 서 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10분쯤 걸었을까? 우리나라 공연의 메카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이 그 웅장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거와는 딴판으로 규모가 굉장히 컸고, 무지 따뜻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5시 30분, 벌써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팬들이 무작정 줄을 서 있었다. 그 팬들을 사진으로 몇 장 남기고 저녁을 먹으러 근처 해장국 집으로 향해 한 그릇에 4천 원짜리 '뼈다귀 해장국'을 한 그릇 해치웠다.

'공연장 가기 전에는 얼큰한 국물이 일품인 해장국이 최고예요!'라는 선배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고, 뼈다귀 해장국에 밥 한 그릇 말아 먹고 다시 공연장으로 갔다.

저녁 6시, 마침내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스탠딩 석을 예매한 반팔 차림의 관객들이 '자리 번호'에 따라 순서대로 입장하는 것과 달리 S석 2층 32구역 18-19번을 예매한 우리는 S석 전용 출입구를 거쳐 너무나도 쉽게 공연장에 입장했다.

입이 쩍 벌어졌다. 공연장에 들어가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역시 화려한 무대였다. 파란 형광등에 비추는 세 개의 기둥은 뮤즈의 3명 멤버를 떠올리게 했고, 무대 좌우에는 공연 실황이 나오는 커다란 화면이 설치돼 있었다.

▲ 공연장 모습. 파란색으로 꾸민 무대가 인상적이다. 뮤즈의 몽환적인 음악 색깔과도 참 잘 어울린다. ⓒ 장영우


너무 어려운 헤드뱅잉, 그저 엉덩이 흔들며 박수만 '짝짝짝'

8시 45분, 갑자기 공연장이 조용해지면서 불이 꺼졌다. 흥분한 여성 팬들은 '매튜 오빠'를 외쳤고, 관중석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터졌다. 드디어 뮤즈가 등장한 것이었다. 당초 예정 시간보다 무려 45분이나 늦게 공연이 시작됐지만, 그 어느 누구도 짜증을 내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뮤즈 멤버가 무대에 올라 부른 첫 곡은 5집 앨범의 첫번째 트랙인 업라이징(UPRISING).  이 곡의 전주가 나오자마자 스탠딩석부터 일반석까지 1만 1천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첫 곡을 마친 매튜는 '땡큐 서울'이라는 짧은 인사로 본격적인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레지스턴스(Resistance)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유라시아(United States Of Eurasia) 등 5집 앨범에 수록된 신곡이 계속됐다.

난생 처음 공연장에 간 나는 '도대체 어떻게 공연을 즐길까?' 고민에 빠졌다. 재미있게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리듬에 몸을 맞춰 헤드뱅잉을 하거나 제각기 막춤을 추며 뮤즈의 음악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무대만 멍하게 쳐다보던 내가 일어난건 공연 시작 30분이 흐른 후였다. 공연장에는 버터플라이 앤 허리케인즈(Butterflies & Hurricanes)와 '히스테리아(Hysteria)'가 흘렀고 '생초보 록팬'인 나는 본격적으로 노래를 즐겼다.

옆이 앉은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25, 서울 강남구)씨가 가르쳐준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에 몸을 맡겼고, 팔을 머리 위에 올리고 '짝짝짝' 박수를 쳤다.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다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며.

엉덩이가 딱 붙는 스키니 청바지에 체크 남방, 귀여운(?) 하트 모양의 파란색 니트를 입은 내가 '싼티 록 댄스'를 추자 데이비드는 '그레이트(Great)!'를 외쳤고, 우리는 2층 무대 바로 앞 봉을 잡고 '봉댄스'까지 췄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뮤즈와 하나가 되는 중이었다.

1만 1천여 관중들과 90분 내내 달렸다… 역시 라이브의 신!

▲ 뮤즈의 리더이자 보컬을 맡고 있는 매튜.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환상에 가까운 기타 연주 실력으로 한국 팬들을 사로잡았다. ⓒ 두나이스



관객들은 손을 흔들고 발을 굴렀다. 그리고 환호했다. 뮤즈의 보컬이자 리더인 매튜는 마이크를 입에 바짝 붙이고 흐느끼듯 울부짖는 목소리를 선보였다. 그 순간, 무대에서는 '스타라이트(Starlight)'가 나왔다.

나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이기도 한 이 노래는 뮤즈의 음악 중 가장 대중적인 곡으로 그동안 한국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었다. 밝고 경쾌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멜로디가 시작되자 메튜는 관객들에게 박수를 유도했다.

1만 1천여 팬들은 멜로디에 맞춰 '1-2, 1-3' 박수를 쳤다. 2층 맨 앞에서 박수를 치며 '응원 단장' 역할을 자처한 나도 목이 터져라 '스타라이트!'를 외쳤고, 관객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방 뛰었다.

공연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뮤즈는 '플러그 인 베이비(Plug in baby)'와 '나이츠 오브 싸이도니아'(Knight of cydonia)'를 앙코르 곡으로 선물,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관객들은 특히 '플러그 인 베이비'를 떼창(떼로 몰려 노래를 부른다는 말)했다.

두 곡의 앙코르 곡이 끝나자 매튜는 '사랑해요 서울'을 외쳤고, 그것으로 90분 동안의 뜨거웠던 공연이 끝났다. 관객들은 공연 종료가 못내 아쉬운 듯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90분 중 60분 간 '싼티 록 댄스'를 춘 나도 그제서야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거칠면서도 섬세한 기타 사운드와 메튜의 몽환적이고 호소력 짙은 보컬, 뮤즈의 '뮤'자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빠져들게 만들기에 충분한 일레트로닉 음악까지. 뮤즈는 나에게 '록' 세계로 인도했다.

태어나서 처음 간 공연장. 그리고 영국 출신의 록 밴드 뮤즈. 뮤즈를 보기 위해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찾운 1만 1천여 관객들과 함께한 꿈만 같았던 하루가 금방 끝났다. 노래 몇 곡 듣지 않았는데 9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2010년 1월 7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의 밤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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