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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간 것이 맞긴 맞어?"

[항해1] 해남 어란 포구에서 여수 가막만 항도마을까지

등록|2010.01.09 10:04 수정|2010.01.09 10:08

▲ 제3은성호(56·선장 조태원)는 08시57분 해남 어란 포구를 출발했다. ⓒ 조찬현


항해 길에 동행하기로 했다. 해남의 어란 포구에서 여수 가막만의 항도마을까지의 여정이다.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선주는 7~8시간 정도 소요될 거라고 했다. 새로운 항해에 대한 꿈에 부풀어 난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키 어려운 상황에서 바다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곤 한다.

헤밍웨이의 걸작 <노인과 바다>가 꿈결처럼 떠올랐다. 망망대해에서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던 노인은 85일째 되던 날 거대한 물고기를 잡게 된다. 늙은 어부는 이틀간의 사투 끝에 작살로 물고기를 잡아끌고 포구로 돌아온다. 어선을 타고 돌아오던 노인은 도중에 상어를 만나 상어와 처절한 싸움을 하게 된다. 노인이 항구에 돌아와 보니 물고기는 상어가 다 뜯어먹고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다는 줄거리로 기억된다.

이번 항해의 목적은 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지인이 홍합양식장에서 사용할 관리선을 해남의 만호조선소에서 건조한 것이다. 그래서 그 배를 건네받으러 해남 어란 포구로 가는 길이다.

미지의 바다, 부푼 꿈 안고 항해 길에 오르다

▲ 해남 어란 포구에 정박해 있는 제3은성호다. ⓒ 조찬현


난 한때 바다를 동경했었다. 마도로스가 되어 5대양을 누비고 싶어했던 적이 있었다. 미지의 바다, 항해 길에서 만날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 망망대해에 대한 그리움과 설렘으로 지난밤을 설친 것도 다 그런 이유다.

6일 새벽 4시 40분에 여수를 출발했다. 일행은 선주를 포함한 5명이다. 1명은 우리 일행을 해남의 어란 포구에 내려주고 복귀할 것이다. 어둠을 헤치고 해보다 먼저 떠서 길을 달린다. 보성 근처에서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해남의 남창 기사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들녘은 하얗다. 설원이다. 마늘밭은 푸르다. 해남 송지면이다. 목적지인 어란 포구에는 8시10분에 도착했다. 포구 양쪽에 자리한 두 개의 등대가 인상적이다. 어불도가 바로 앞에 버티고 서있다. 포구에는 간간히 눈발이 날린다. 저 멀리 해남의 땅끝이 아스라이 보인다.

▲ 저 멀리 해남의 땅끝이 아스라이 보인다. ⓒ 조찬현


고만고만한 조그마한 어선들이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이른 아침의 포구는 고즈넉하다. 바닷물에 흔들리는 어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바다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어민들의 채취가 물씬 풍겨오는 듯하다. 갯벌에 내린 닻을 걷어 올린 어부들은 눈보라 속에서도 김 양식장으로 뱃머리를 향한다.

어란 마을은 해남 송지면의 남동쪽에 있는 어불도와 반도처럼 쭉 뻗은 해안으로 형성되었다. 어란(於蘭)의 지명은 지형이 난초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김을 생산하는 부촌이며 포구 건너 섬마을 어불도에는 패총 고분유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포구에 정박해 있는 배로 향했다. 2개월여의 건조 기간을 거쳐 해남 만호조선소에서 탄생한 배는 6.67톤 제3은성호다. 조타실에는 항법장치와 컨트롤박스가 갖춰져 있다.

선체에 이상... 키를 잡은 선장 당황하다

선장(56·조태원)이 예상한 항로다. 해남 어란 포구에서 출발한 배는 완도 앞바다를 경유, 고흥의 시산도와 나로도 여수 백야도를 거쳐 가막만의 항도마을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선구점에 들려 준비물을 챙긴 배(제3은성호)는 08시57분 출항을 했다. 조심스레 어란 포구를 빠져나간 배는 등대방파제 근처에서 속력을 높인다.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가 양쪽에서 우리 일행을 배웅한다.

▲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가 양쪽에서 우리 일행을 배웅한다. ⓒ 조찬현


배에 동행한 두 명은 배에 관한한 경력이 대단한 분들이다. 하지만 그분들의 항해는 오래전의 일인 듯했다. 해남에서 여수까지의 항로는 그리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방파제를 잘 빠져나가는가 싶던 배의 선체에 이상이 느껴진다. 키를 잡은 선장이 당황해한다.

배를 타본 경험이 별로 없는 나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항해중인 무역선이나 어업중인 어선들이 침몰하는 장면을 간혹 뉴스에서 본적이 있다. 영화에서 '타이타닉'호의 침몰 장면도 보았다. 침몰선에서 집 채 만 한 파도와 싸우며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우리는 영화에서 이럴 때 재빨리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을 종종 보아왔다. 하지만 이건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배가 클수록 침몰시 소용돌이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위험천만이라고.

배에서 탈출한 사람들 중 사망 원인은 대부분 익사가 아닌 체온저하다. 배가 침몰하면 빨리 물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그리고 부유물을 이용해 되도록 신체의 많은 부분을 물 밖으로 내놓아야 한다. 활동을 자제하고 열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열의 손실을 줄여야 살아남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무사히 여수까지 갈수 있을까

▲ 과연 우리 일행은 해지기 전에 무사히 여수까지 갈수 있을까. ⓒ 조찬현


선체가 바닥에 닿은 것이다. 악천후에다 이곳 해안의 지형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다. 눈보라는 더욱 기승이다. 기다란 대막대기로 바다의 수심을 확인한 선원은 선장에게 조심조심 이동하며 뱃머리를 돌리라고 한다. 잠시 후 배가 항로를 바로잡았다. 배를 20년이 넘게 탔다는 선원의 기지가 돋보였다.

어불도의 백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래결이 곱다. 배가 넓은 바다에 진입했다. 김양식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김발사이로 지나간다.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다도해의 섬들이 스쳐간다. 가없는 바다에 아스라이 보이는 수평선, 눈이 흩날리는 겨울바다는 온통 잿빛으로 채색되어 있다.

▲ 어불도의 백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래 결이 곱다. ⓒ 조찬현


▲ 김을 채취하는 어부들이 보인다. ⓒ 조찬현


▲ 09시22분 태양은 중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조찬현


김을 채취하는 어부들이 보인다. 09시22분 태양은 중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환한 햇살이 뭍에서와는 다른 기쁨으로 다가온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바다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의 얼굴로 뱃전에 다가온다.

"요리 간 것이 맞긴 맞어?"

제대로 항로를 잡았나 했더니 얼마가지 않아 뱃사람들이 술렁인다. 의견이 분분하다. 초행길이다. 서로 의논해가며 항로를 찾고 있는 중이다. 과연 우리 일행은 해지기 전에 무사히 여수까지 갈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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