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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75)

―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다듬기

등록|2010.01.09 12:16 수정|2010.01.09 12:16

- 일석이조의 : 일석이조의 효과

.. 자동차 속도가 줄어들면 보행자와 운전자의 안전도 늘어나지만, 도로에 더 많은 자전거들이 다닐 수 있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  《윤준호,반이정,지음,차우진,임익종,박지훈,서도은,조약골,김하림-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지성사,2009) 286쪽

 "자동차 속도(速度)가 줄어들면"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자동차 빠르기가 줄어들면"이나 "자동차가 천천히 달리면"이나 "자동차가 좀더 느려지면"으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보행자(步行者)와 운전자(步行者)의 안전(安全)도 늘어나지만"은 "걷는 사람과 차를 모는 사람도 안전해지지만"이나 "걷는 사람과 차를 모는 사람 모두 안전하지만"으로 다듬고, '도로(道路)'는 '길'로 다듬습니다. "효과(效果)가 있다"는 "도움이 된다"나 "좋다"로 손질해 줍니다.

 ┌ 일석이조(一石二鳥) : 돌 한 개를 던져 새 두 마리를 잡는다는 뜻으로, 동시에
 │    두 가지 이득을 봄을 이르는 말
 │   - 일석이조의 효과 / 이것이야말로 소위 일석이조, 일거양득이 아니겠습니까
 │
 ├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 두 가지 효과가 있다
 │→ 두 가지 좋은 일이 있다
 │→ 두 가지로 보탬이 된다
 │→ 두 가지로 좋다
 └ …

 두 가지로 좋은 일이 있다고 하니 "두 가지로 좋다"입니다. 두 가지로 좋은 일이란 "겹으로 좋은" 일이며, 겹으로 좋다니 "곱배기로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가지 좋은 일이 있다고 할 때에는 다른 좋은 일이 한 가지만 뒤따르지는 않기 마련입니다. 궂은 일이 있을 때에도 이 궂은 일 하나에 다른 궂은 일 하나만 뒤따르지 않기 일쑤입니다. 여러 가지 좋은 일이 함께 따르기 마련이고, 온갖 궂은 일이 잇따르기 일쑤입니다. 여러모로 좋은 일이 가득하기 마련이고, 갖은 궂은 일이 넘치기 일쑤입니다.

 ┌ 더 많은 자전거들이 다닐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
 ├ 더 많은 자전거들이 다닐 수 있어 서로한테 좋다
 ├ 더 많은 자전거들이 다닐 수 있어 모두한테 좋다
 └ …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석이조'는 꽤 재미있는 한문입니다. 이 한문 한 가지는 '일석삼조'나 '일석사조'로 이어지고, '일석오조'나 '일석육조'처럼 끝없이 가지를 치거나 뻗습니다. 새롭게 말할 수 있고 새삼스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말놀이를 잇고 말재미를 꽃피웁니다. 말씀씀이를 북돋우고 말살림을 부풀립니다.

 그렇지만,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문 '일석이조'를 쓰기 앞서 이런 느낌이나 뜻을 우리들은 걱정없이 나누어 왔습니다. 우리들은 거침없이 이런 느낌이나 뜻을 주고받아 왔습니다.

 먼저 "두 가지"라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여러"나 "여러 가지"가 있고, "여러모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온갖'이며 '갖은'이며 '갖가지'며 '가지가지'며 있습니다.

 말마디는 숱하게 많고, 글줄은 수없이 많습니다. 때와 곳에 걸맞게 다 달리 쓰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문 '일석이조'는 이 모든 말마디를 한꺼번에 밀어냅니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스스럼없이 쓰고 즐기던 말마디가 하루아침에 잊혀지거나 스러지거나 멀어지도록 합니다.

 ┌ 일석이조의 광고 효과 → 두 가지 광고 효과
 ├ 일석이조의 살아 있는 수업 → 여러모로 좋은 살아 있는 수업
 ├ 일석이조의 송이버섯 → 여러모로 좋은 송이버섯
 ├ 일석이조의 맛 → 두 가지 맛 / 여러모로 좋은 맛
 └ 일석이조의 기쁨 → 두 가지 기쁨 / 겹으로 찾아온 기쁨 / 잇단 기쁨

 "두 가지 광고 효과"를 "일석이조의 광고 효과"처럼 쓰는 셈이지만, 좀더 살피면 "더없이 좋은 광고 효과" 같은 말마디마저 묻히고 있는 셈입니다. "참 좋은 광고 효과"라든지 "매우 좋은 광고 효과" 같은 말마디가 스러지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모로 좋은 살아 있는 수업"을 "일석이조의 살아 있는 수업"처럼 적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주 좋은 살아 있는 수업"이라든지 "훌륭하게 살아 있는 수업"처럼 이야기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 말을 잘 쓸 때에는 다른 한 가지 말을 잘 쓰기 마련입니다. 한 가지 말을 잘못 쓸 때에는 다른 한 가지 말까지 잘못 쓰기 마련입니다. 잘 쓰는 말은 잘 쓰는 말을 낳고, 잘못 쓰는 말은 잘못 쓰는 말을 낳습니다. 우리 스스로 좀더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한결 나은 말마디가 되도록 힘을 쓴다면, 우리 말마디는 나날이 좀더 나은 말마디로 새로워집니다. 우리 스스로 아무런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말삶을 잇는다면, 우리 말마디는 시나브로 나날이 얄궂거나 뒤틀리는 말삶으로 뒹굴고 맙니다.

 ┌ 더 많은 자전거들이 다닐 수 있어 훨씬 좋다
 ├ 더 많은 자전거들이 다닐 수 있어 아주 좋다
 ├ 더 많은 자전거들이 다닐 수 있어 더없이 좋다
 ├ 더 많은 자전거들이 다닐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
 ├ 더 많은 자전거들이 다닐 수 있어 좋은 일이 가득하다
 └ …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반가운 일이든 씁쓸한 일이든 한 가지로 그치지 않습니다. 잇달아 생겨납니다. 꾸준히 되풀이됩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좋은 일이 넘치도록 할 수 있지만, 우리 삶에 궂은 일이 넘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을 싱그럽고 슬기롭게 가눌 수 있지만, 우리 생각을 멍청하거나 어리숙하게 내팽개칠 수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 애쓰기 나름입니다. 사랑을 쏟으려는 사람한테는 사랑을 담는 삶이요 생각이요 말입니다. 믿음을 바치려는 사람한테는 믿음을 담는 삶이며 생각이며 글입니다. 우리 사랑과 믿음을 아름답고 맑게 지키거나 북돋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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