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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선물한 아름다운 세상

등록|2010.01.09 16:37 수정|2010.01.09 16:37
103년만의 대설이 내렸다고 눈폭탄이니, 전쟁이니 하고 온통 전투용어가 난무했다. 언론은 마치 자연과 사람이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너나 없이 사방에서 난리법석이었다. 자연의 섭리에 왜 굳이 전투용어를 써가면서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지 그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라고는 하지만 무엇이든 전쟁의 각도로만 보는 시각이 아쉽기만 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의 순리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자연의 선물인 하얀 눈은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겨울을 견디는 나목들이 안스러운지 하얀 외투를 입혀주었다. 그 모습은 참 아름답고 보기 좋았다. 매서운 겨울을 나는 키작은 나무들에는 포근한 이불을 덮어주었다. 자연을 향한 신의 손길이 보기만 해도 따스해보였다.

어린 시절에는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내렸다. 그러나 모두 걸어다닐 때니 교통대란도 없었다. 특별히 불편함도 없었다. 시대가 발전하는데도 자연에 대처하는 능력은 예전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자연 앞에 무능하기 그지없는 과학의 발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증심사대웅전의 고드름 ⓒ 김현숙



대웅전의 고드름 ⓒ 김현숙



증심사의 대웅전에는 눈이 녹아내린 처마 끝에 긴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고드름이 얼마나 고운지 수정고드름이라고 노래부르면서 우리는 자랐다. 눈이 오면 불편함보다는 그것을 즐기면서 살았다.

자연이 대지에 선사한 아름답고 거대한 설경은 가슴 설레게 해주었다. 그 장관은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절경이었다. 그것을 만나고자 빙판길임에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산으로 산으로 모여들었다.

증심사 일주문과 사람들 ⓒ 김현숙



무등산 새인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약사사는 찾는 이 없이 눈 속에 깊이 잠들어 있었다. 고즈넉한 적막감이 산사를 더욱 아름답게 했다. 대웅전 너머로 멀리 있는 무등산의 설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다. 그곳에 핀 설화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눈에 선하다.

눈에 잠긴 약사사가 고즈넉하다 ⓒ 김현숙



정갈하게 쓸어놓은 약사사 ⓒ 김현숙



무등산의설화 ⓒ 김현숙



약사사의 스님들은 멀리까지 올라오는 이들이 미끌어질까 봐 이른 아침 눈길 쓸어놓았다. 절마당은 물론 등산 길을 쓸어주신 스님들의 수고가 고마웠다. 그 기나긴 길을 쓸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곱게 쓸린 그 길을 보니 아득한 어린 시절이 되살아났다.

눈이 오는 날에는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할 일이 마당과 길의 눈쓸기였다. 자고 나면 내일은 내가 마당을 쓸어야지 했다가도 부지런하신 아버지께서 이미 마당을 깨끗이 쓸어놓으시곤 해서 내가 할 일을 빼앗긴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눈길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가슴 설레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였다. 그래서 눈이 오면 그토록 행복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눈에 갇힌 세상은 모처럼 시간이 정지하고 태고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그리고 덕지덕지한 도심의 온갖 더러움도 다 덮어주었다. 이럴 땐 불만과 불편함은 잠시 접어두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마음껏 즐길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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