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52)

[우리 말에 마음쓰기 835]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다듬기

등록|2010.01.10 15:49 수정|2010.01.10 15:49
ㄱ.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 4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새우 모양의 크릴은 남극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  《홍선욱,심원준-바다로 간 플라스틱》(지성사,2008) 125쪽

 "작은 새우 모양의 크릴"은 "작은 새우와 같은 크릴"이나 "작은 새우라 할 수 있는 크릴"로 다듬습니다. "균형(均衡)을 이루는"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잘 어우러지는"이나 "먹이사슬을 지키는"으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
 │→ 없어서는 안 된다
 │→ 없어서는 안 되는 목숨붙이이다
 │→ 없어서는 안 되는 바다생물이다
 └ …

 바다에서 살아가는 뭇 목숨붙이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애꿎게 다치거나 죽는다고 합니다. 곰곰이 살펴보면, 바다생물뿐 아니라 뭍생물도 사람들 쓰레기 때문에 다치거나 죽습니다. 사람들 쓰레기 때문에 제 보금자리를 잃기도 하고, 사람들이 쓰는 물건을 만들 공장을 닦느라, 또 길을 내느라, 또 집을 세우느라 보금자리를 몽땅 내주고 맙니다.

 이리하여 '자연이 역습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이 우리를 '거꾸로 친다'기보다는 자연 스스로 걸러낼 수 있는 틀을 훌쩍 넘어서면서 끝없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 스스로 치고 받다가 무너지는 셈이 아닐까 싶습니다. 땅싸움과 자원싸움을 하느라 어마어마한 전쟁무기를 만들어 땅을 더럽힐 뿐 아니라, 전쟁무기 만드느라 땅을 끔찍하게 더럽히고, 전쟁무기를 앞세워 또다른 막개발을 밀어붙이거나 독재정권을 이어나가고 맙니다.

 올바르게 써야 할 힘을 올바르게 쓰는 일이 없습니다. 넘치는 힘을 땅에 바치고 바다에 바치고 하늘에 바치는 일이 드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한테 있는 좋은 힘을 좋은 쪽으로 못 쓰고 있습니다. 우리 삶터며 자연이며 언제까지나 아름다우면서 싱그러울 수 있도록 마음을 바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저절로 우리 힘은 우리 밥그릇 지키는 데에만 매입니다. 우리 밥그릇에만 매인 삶이기에 우리 말밭을 알차게 가꾸는 데에는 눈길을 두지 못합니다. 우리 밥그릇만 붙잡는 삶이라서 우리 글밭을 튼튼하게 돌보는 데에는 손길을 나누지 못합니다.

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빈곤

.. 인도양에서 발생한 쓰나미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의 빈곤에는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마음, 불공평하다는 생각, 불안 등을 내보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14쪽

 '발생(發生)한'은 '터진'이나 '일어난'으로 다듬습니다. "관심(關心)이 집중(執中)되어"는 "눈길이 쏠려"로 손보고, '지속적(持續的)으로'는 '꾸준하게'나 '끊임없이'나 '한결같이'로 손보며, '빈곤(貧困)'은 '가난'으로 손봅니다. "관심(關心)을 기울이며"는 "마음을 기울이며"나 "사랑을 보내지"로 손질하고, '불공평(不公平)하다는'은 '옳지 않다는'이나 '고르지 않다는'으로 손질하며, '불안(不安)'은 '걱정'으로 손질해 줍니다. '등(等)'은 '들'로 고쳐쓰고, "내보인 것인지도"는 "내보였는지도"로 고쳐 줍니다.

 ┌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빈곤
 │
 │→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난
 │→ 끝없이 떠도는 가난
 │→ 오래도록 그치지 않는 가난
 │→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있는 가난
 │→ 예부터 끊이지 않는 가난
 │→ 옛날부터 이어온 가난
 └ …

 한 번 가난하게 되면 두 번 다시 가난하지 않던 삶으로는 돌아가기 어려운지 모릅니다. 아니,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가난한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지 모릅니다. 가난은 굴레가 되고, 가난에서 벗어나더라도 가난밭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은 고스란히 남는 가운데, 어쩌면 나날이 더 늘어나는지 모릅니다. 가난을 떨쳐내고 넉넉하고 푸지게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가난에 발목 잡힌 채 눈물콧물 온통 쏟아내는 사람은 늘 그대로이지 않느냐 싶습니다.

 ┌ 한결같이 있어 온 가난
 ├ 늘 있어 온 가난
 ├ 언제나 떠돌고 있는 가난
 └ …

 어디에나 있는 가난입니다. 언제나 있는 가난입니다. 가난한 삶을 팍팍하게 꾸리면서 생각과 말을 넉넉하고 따스하게 다스리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삶임에도 마음만은 넉넉해, 살림살이만 넉넉하고 마음은 가난한 사람을 일깨우기도 하나, 삶이며 살림이며 생각이며 모조리 가난한 가운데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한, 살림만큼은 넉넉하지만 삶과 생각을 넉넉하게 일구지 못하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알맞게 어우르지 못합니다. 알뜰하게 붙잡지 못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처음부터 알맞게 벌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려는 생각이 아니라 좀더 많이 벌고 좀저 많이 쓰거나 누리려는 생각이었기 때문은 아니랴 싶습니다. 나 혼자만 차지하려고 벌어들이는 돈이 아니라, 나도 쓰고 이웃도 같이 쓰는 돈으로는 생각하지 못한 탓은 아니랴 싶습니다.

 팍팍하고 고되게 살아가는 이웃들한테 말과 글만큼이라도 넉넉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써 보셔요 하고 말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살림이 넉넉할 뿐더러 넘치는 이웃들한테 이제부터는 말과 글을 부디 넉넉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써 보셔요 하고 말하고 싶으나, 제 목소리가 닿을 수 없도록 높은 울타리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이곳으로도 말문을 열기 어렵고, 저곳으로도 말길이 가 닿지 못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