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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을 위한 위트와 유머 <컨택트>, 차분히 삶을 돌아보게 하는 <바냐아저씨>

등록|2010.01.12 14:58 수정|2010.01.12 14:58

뮤지컬<컨택트>LG아트센터에서 지난 1월 8일부터 17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22일부터 이달말인 31일까지 상연되는 국내초연 뮤지컬<컨택트> ⓒ 오디뮤지컬컴퍼니

기사 제목과는 달리 지금부터 소개할 두 공연에는 모두 청소년 할인이 있다. 즉, 원한다면 중고등학생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학생할인이 50%라면 딱 그만한 정도만큼의 값어치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 성인관객들, 그것도 가급적이면 30대 이상의 관객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공연이므로 어느정도 삶의 깊이가 있어야만 훨씬 더 공감하고 만족할수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거나 충분히 조숙한 아이라면 예외일 수는 있겠다. 대학교 계절학기에서 <연극의 이해>같은 과목을 듣는 학생에게도 제법 도움이 될 수 있다.

성인들을 위한 위트와 유머, 도시인의 고독과 소통을 그린 뮤지컬<컨택트>

뮤지컬 매니아 관객들이라면 꽤나 기다렸을법한 국내초연 뮤지컬<컨택트>는 주로 20∼30대 젊은 여성층이 주도하는 우리 한국 뮤지컬 공연시장에서는 또하나의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질만 하다.

이번에 뮤지컬<컨택트>를 들여와 국내초연을 하게된 오디뮤지컬컴퍼니의 신춘수 대표는  최근 몇년간 급격히 성장한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특별히 20∼30대의 젊은 관객들이 주도하는 대중시장이다보니 관객층이 제한되어 그 가변성이 오히려 위험요소일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만일 클래식음악이나 오페라같은 고급취향을 가진 중년이상의 관객들이 보고 즐길수 있는 격조있는 고급 뮤지컬이 들어와 자리를 잡을수만 있다면 관객층도 더 넓어져 좀 더 시장이 안정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뮤지컬<컨택트>의 초연은 남다른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

뮤지컬 <컨택트>는 정말로 매우 색다른 뮤지컬이다. 일단 단 한곡의 노래조차 없다. 게다가 주연배우들은 모두 뮤지컬 배우가 아닌 발레리나들이거나 안무가, 또는 연극배우들이다. 참으로 신기하지 아니한가? 명색이 뮤지컬이라면서 노래도 없고 뮤지컬 배우들이 거의 배제되어 있다면?

뮤지컬에 있어서 노래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가장 요소는 댄스다. 뮤지컬<컨택트>는 노래 대신 재즈, 현대무용, 발레, 자이브, 스윙 등 전문 무용수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몸짓 언어인 율동과 위트와 유머로 경쾌하게 펼쳐지는 극의 전개를 통해 다른 여느 뮤지컬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댄스시어터(Dance Theater)라고도 불리워진다.

<호두까기인형>이나 <백조의 호수>같은 국립발레단의 발레무대에서 몸짓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던 발레리나 김주원이 드디어 무대위에서 말을 한다. 대사를 한다. 40대의 나이로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뮤지컬 안무가로써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란영도 무대에 설수 있게 되었다. 춤이 없다고 말해서 속아 출연하게 되었다는 배우 장현성의 엉거주춤 춤도 그래서 더 리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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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컨택트>중 'Contact'국내초연으로 LG아트센터에서 어제 8일부터 상연되고 있는 뮤지컬 <컨택트>중 3장 'Contact' ⓒ 문성식



뮤지컬 <컨택트>는 총 3개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인 스윙 Swing(그네타기)는 프랑스의 풍속화가인 프라고나르 Jean-Honore Fragonard의 '그네타기'라는 그림을 재현한 것으로 귀족들이 그네를 타며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기지와 해학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번째 에피소드 움직이지마 Don't Move는 권위주의적이고 꽉막힌 남편에 굴종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중년 부인이 남편과 함께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의 식사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이 공연의 제목과도 같은 컨택트 Contact. 가장 성공적인 독신남 뉴요커가 자신의 시상식날 오히려 참을수 없는 고독감과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려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장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골드미스터가 실제로는 지독한 우울증 환자에 마침내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내면의 연기를 베테랑 연기자 장현성이 맡아 어쩌면 출세가도를 달려가고 있는 도시인이라면 누구라도 겪어보았을 법한 장면을 꽤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다.

중년 이상의 남녀라면 두번째 또는 세번째 에피소드에 공감할만한 부분이 적지 않은데 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세번째 에피소드는 굉장히 와닿는다. 우울증으로 인해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되지만 나자신이 보여준 열정 에너지가 한 여인의 생명을 1년 정도 연장하게 해준 아픈 기억이 있다. 내 삶의 활력이 그녀를 반하게 만들어 잠시나마 생의 의욕을 갖게해준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던 것이다.

극중에서 장현성이 노란드레스의 열정적인 그녀 김주원을 만나 다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게 되는 장면은 너무나 공감이 가지만 마찬가지로 그런면에서 결국 실제로는 해피엔딩이 아닐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어쩌면 잠시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는가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고나면 다시 깊은 고독속으로 빠져드는 경우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의외로 우연한 만남이 가장 위험한 순간을 넘기게 해주어 다시 삶이 제 궤도를 찾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만남은 너무도 소중하다. 성공이건 실패에 의하여서건 결코 원하지 않았던 절대고독 속에 빠져든 그 순간에 단 한사람이라도 내 삶의 생명줄을 놓치지 않게 해줄 수 있는 그 단 한명의 사람이라도 만날수 있다면 이토록 더 고마운 만남이 어디에 있겠는가?

뮤지컬 컨택트는 LG아트센터에서 지난 8일부터 시작, 오는 17일까지 상연하며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이달 22일부터 말일인 31일 일요일까지 상연한다. 초연인데다 색다른 쟝르의 뮤지컬을 시험적으로 상연하는 것이라 공연기간이 짧은 것이 아쉬운 편이다. 때문에 이 공연이 성공해서 이 외에도 더 많은 중년층 이상을 위한 고급 뮤지컬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극<바냐아저씨>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오는 17일 일요일까지 상연되는 안톤체홈의 연극 <바냐아저씨> ⓒ 극단 전망




꿈과 희망이 사라져도,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연극 <바냐아저씨>


앞서 소개한 뮤지컬 <컨택트>가 삶에 있어 소통이, 우연한 만남이 얼마나 소중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데 비해 연극 <바냐아저씨>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삶은 계속되어야만 하며 비록 막연하더라도 생의 마지막 순간이 행복하리라는 희망을 안고 지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나가며 이 순간들을 묵묵히 이겨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안톤체홉의 대표작들인 5대희곡인 <이바노프>(1887),<갈매기>(1896),<바냐아저씨>(1897),<세자매>(1900~1901)<벚꽃동산>(1903~1904)은 러시아 근대 리얼리즘을 완성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들은 공히 인간의 진실한 삶을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극작가 안톤 체홉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심재찬의 연출로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올해 처음으로 상연되고 있는 연극<바냐아저씨>는 막이 오르고나서 막이 내려가는 그 순간까지 시종일관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속삭이듯 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채 계속된다. 체홉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평범한 서민들이 실제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결코 과장되지 않게 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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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바냐아저씨>안톤 체홉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올해 첫번째로 상연되고 있는 <바냐아저씨>의 하이라이트를 담았다. ⓒ 문성식



아마도 안톤 체홉의 작품의 공통점인듯 <바냐아저씨>에서도 지난 가을 국립극단이 올렸던 <세자매>와 유사한 점이 참으로 많다. 일단 주인공이 제목처럼 나이 47세인 바냐아저씨라야 마땅하겠으나 이 극을 보는 관객들에게는 바냐아저씨의 조카 소냐도 보이고 짝사랑 엘레나와 그녀의 전직 교수 남편 세레브냐꼬프도 보이며 의사이자 바냐아저씨의 친구인 아스뜨로프도 보인다. 어쩌면 이 다섯명이 다 주인공인듯 각 인물들의 캐릭터가 모두 살아난다.

<세자매>에서도 어쩌면 세자매 중에서도 대사량이 가장 많은 막내 이리나가 주인공일 수 있지만 세자매 모두를 포함하여 거의 10명에 가까운 캐릭터가 하나 하나 관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진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의 인물들이 다 하나씩 각자의 삶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가장 비중있는 역할이 아닐지라도 자신과 비슷한 연령의 한 인물을 자신처럼 생각하고 본다면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

주인공의 나이가 47세이므로 중년 이상의 남성들, 특히 예전에 꾸었던 꿈들이 모두 허망해지고 이젠 과연 희망이란 있는것일까 생각하며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그러한 순간에 처해있는 이들에게 차분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관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또 중년 이상의 여성들에게는 자신보다 거의 서른살쯤 많은 남편 세레브냐꼬프와 살아가는 엘레나의 따분하고 속박된 삶, 한번쯤 일탈해 보고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장면들을 보며 깊은 공감에 빠져들 수 있다.

또 상당수 자신의 외모에 자신 없어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줄만한 사람을 갈망하는 2,30대의 여성들에게는 바냐아저씨의 조카딸 소냐를 보며 마치 자신의 모습처럼 여길 수 있다. <세자매>에서의 막내딸 이리나가 상당히 엘리트 여성인데다 모든 남성들의 사람을 받는 처녀인것과 비교해 오히려 더 실제적으로 와닿을 수 있다.

극의 내용은 <세자매>와 거의 쌍둥이다. 주된 인물들이 달라졌을뿐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였고 외진 시골마을이란 점도 공통점이다. 다만 시간적 배경은 좀 더 짧아졌다. <세자매>가 몇년의 기간을 나누어 순간 순간을 보여준다면 <바냐아저씨>는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짧은 2~3개월 정도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바냐아저씨와 그 조카딸 소냐, 그리고 그 마을의 의사 아스뜨로프는 소냐의 아버지이자 바냐아저씨의 매형인 전직 교수 세레브랴꼬프와 그의 새 아내 엘레나가 요양을 하러 소냐의 집에 와 머무르는 동안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성실히 일하던 바냐아저씨는 게을러졌고 평소 잘 들르지도 않던 시골의사 아스뜨로프는 거의 살다시피 매일같이 소냐의 집에 온다. 교수 세레브랴꼬프의 까칠한 성격탓에 집안 분위기도 달라진다. 바냐와 아스뜨로프의 변화의 중심에는 팜므파탈 엘레나가 있다.

결국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세레브랴꼬프와 엘레나 부부가 떠나고 의사 아스뜨로프도 떠난다.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을 이별을 하게 되는것이다. 비록 약간의 소동은 있었지만 결코 그다지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머물렀다 떠나간 사람들로 인해 바냐아저씨와 소냐의 삶은 굉장한 시련을 맞게 된다. 삶이 확 달라진것이다. 우연히 찾아온 희망이 갑작스레 떠나버린 탓에 절망하기 보다는 일을 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다. 그래도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다.

안톤 체홉의 희곡들은 다른 연극들에 비해 지나치게 사실주의적이다. 따라서 그 어떤 드라마적 상황이 주는 극적 재미를 원하는 관객들에게는 다 식어버린데다 너무싱거워 어떠한 맛도 느낄 수 없는 음식처럼 담백하기보다는 건조하고 밋밋하게만 느껴져 극을 보는 내내 잠에 빠져버릴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깊이가 만만챦게 느껴지는 어느 순간의 그 누군가에게는 어떤 특별한 영웅의 성공과 실패이야기보다는 훨씬 더 자신에게 와 닿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고통과 좌절을 겪으며 마셔본 한잔의 짙은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더 없이 권할만한 작품이다. 올해는 특별히 안톤 체홉의 탄생 150주년이다. 아마도 전국 곳곳에서 그의 5대 희곡작품들이 상연될것 같다. 아마도 체홉의 작품에 한번 맛을 들인 관객이라면 이 모두를 찾아가 보게 될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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