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설탕 없이도 가래떡이 달달한 이유

[포토에세이] 겨울밤 주전부리 지존 엄마손 가래떡

등록|2010.01.11 18:09 수정|2010.01.11 18:09

▲ 어머니는 다리가 아프시다며 가래떡을 해오셨다. ⓒ 이장연




아침을 꼭 챙겨먹고 나온 뒤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는 종이 울릴 때까지 있다보면, 배도 고프고 입도 심심해 집니다. 그렇다고 도서관 지하의 식당-매점을 이용하기도 그래서, 집에서 나올 때 점심 대용으로 제철과일(사과, 귤)이나 국내산 땅콩, 우리밀 건빵 같은 것을 챙겨옵니다.

지난 2007년 3월 한미FTA 반대 끼니단식을 시작으로 '배고픔을 요기하며 마음에 점을 찍고 넘겼다'는 뜻의 점심을, 따로 사먹지 않은 지 벌써 2년 반이 넘어 그럭저럭 허기를 느끼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오랜시간 공복으로 있을 경우 머리(뇌)에 좋지 않다기에, 도시락 대신 간단한 먹거리를 번거롭지만 싸가지고 다닙니다.

그래도 꼬박 10~12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다 눈 덮힌 산고개 너머 집으로 돌아갈 때는, 따듯한 쌀밥과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끓인 얼큰한 김치찌개가 간절합니다. 요즘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없을만큼 눈이 내리고 날이 추울 때는 특히나.

▲ 가래떡을 굳힌 뒤 썰어낼꺼다. ⓒ 이장연




그래서 병원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는데 허리와 다리가 불편하시다는 어머니는 괜한 걱정을 하십니다. 새해가 밝아 이젠 나이를 서른넷이나 먹게 되었지만 결혼도 번듯한(?) 직장도 구할 생각이 없는 아들이 "날도 추운데 도서관에 나간다"고 말입니다.

그런 어머니께서 날도 추운데 "재작년 묵은 쌀이 아직 남아있다"며, 대야 가득 쌀을 불려놓았다가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으로 뽑아오셨습니다. 눈이 녹기 시작한 희뿌연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와, 방에다 베낭을 부려놓고 아직 온기가 나아있는 가래떡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괜히 코끝이 찡해 옵니다.

부엌 한편에서 어머니는 가래떡을 굳히기 위해 떡줄기를 하나씩 떼어 놓으면서, "구워도 먹고 떡볶이도 해먹을거다"며 길쭉한 떡을 손으로 툭 잘라 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겨울밤 주전부리의 지존인 엄마손 가래떡을 오랜만에 잘 먹었습니다.

설탕에 찍어 먹지 않아도 엄마의 사랑이 달달한 가래떡을.

▲ 저녁을 먹고 또 가래떡을 집어먹었다. ⓒ 이장연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와 U포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