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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76)

― '딸의 미소', '하늘의 색' 다듬기

등록|2010.01.12 11:41 수정|2010.01.12 11:41

ㄱ. 딸의 미소

.. 그래서 비밀을 지켜 왔다는 딸의 미소가 더없이 해맑다 ..  <김현아-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호미,2009) 266쪽

소리없이 빙긋이 웃는 모습을 가리켜 '미소(微笑)'라고 합니다. 이 한자말은 일본말이기에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곧잘 터져나오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굳이 이 한자말을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웃음'과 '미소'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이 한자말이 더 좋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니, 이 말이 좋아 이 말을 쓰겠다고 하는 분을 말릴 수 없습니다. 저 말은 내키지 않아 쓰기 싫다고 하면 저 말을 쓰라고 억지로 밀어붙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삶터에 일본한자말 '미소'가 스며들기 앞서는 누구나 '웃음'을 이야기했고, '빙긋 웃음'을 이야기했으며 '말없는 웃음'과 '조용히 짓는 웃음'을 이야기했습니다.

 ┌ 딸의 미소가
 │
 │→ 딸이 짓는 웃음이
 │→ 딸이 웃는 모습이
 │→ 딸이 웃는 얼굴이
 └ …

일본한자말을 널리 쓰는 가운데 아무 말썽이나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은, 저절로 일본 말투를 받아들이기까지 합니다. 이곳저곳에 토씨 '-의'를 붙이고, 곳곳에 '-적'붙이 말투를 넣습니다.

그래서 이 보기글에서 '미소'를 '웃음'으로 고쳐썼다 하더라도, "딸의 웃음이"처럼 적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적어 놓고 '자, 일본한자말을 털어냈으니 잘했지? 잘 썼지?' 하고 생각합니다.

 ┌ 비밀을 지켜 왔다며 웃는 딸아이가 더없이 해맑다
 ├ 비밀을 지켜 왔다는 딸아이 웃음이 더없이 해맑다
 └ …

낱말 하나 알뜰히 간수하거나 갈무리하는 일은 반갑습니다. 일본한자말이건 중국한자말이건, 우리가 널리 쓸 만하면 쓴다 하지만, 굳이 안 써도 될 뿐더러 쓰면 쓸수록 우리 말글을 무너뜨린다 할 때에는 기꺼이 털어내 주는 매무새는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러나, 낱말 한 마디 다듬기에만 그친다면 아쉽습니다. 낱말 한 마디에만 머문다면 안타깝습니다. 낱말 한 마디 다듬는 매무새는, 이 낱말을 비롯해서 낱말과 낱말을 엮는 매무새로 이어가야 비로소 아름답게 뿌리내리니까요. 낱말 하나마다 담긴 넋을 헤아리듯 말투 하나마다 깃든 얼을 곱씹고, 낱말 하나마다 실린 마음을 읽듯 말투 하나마다 배인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ㄴ. 하늘의 색

.. 만약 그 아이에게 딱 한 가지 색깔을 가르칠 수 있다면, 하늘의 색을 가르쳐 주고 싶어 ..  《아와 나오코/김난주 옮김-바람과 나무의 노래》(달리,2009) 53쪽

'만약(萬若)'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덜어내어도 됩니다. '색(色)'은 '빛'이나 '빛깔'로 다듬습니다.

 ┌ 하늘의 색을
 │
 │→ 하늘색을
 │→ 하늘빛을
 └ …

하늘에 빛깔이 있다면 '하늘빛'입니다. 바다에 빛깔이 있다면 '바다빛'이고요. 땅은 어떤 빛깔인가 하고 말하려 한다면 '땅빛'이 어떠하다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래는 '모래빛', 벼는 '벼빛', 물은 '물빛', 살갗은 '살빛'입니다. 우리는 우리 빛깔을 이처럼 이야기합니다.

일본사람은 일본 말투대로 일본 삶터 빛깔을 이야기하니까, '(무엇)の色'처럼 적습니다. 어떠한 빛깔을 이야기하더라도 일본사람한테는 'の'가 붙습니다.

우리는 꽃이 어떤 빛깔인가를 말할 때에는 '꽃빛'이라 적습니다. 풀이 어떤 빛깔인가를 가리키려 할 때에는 '풀빛'이라 적습니다. 나무는 '나무빛'이고 돌은 '돌빛'입니다. 우리는 일본사람처럼 'の'붙이 말투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꽃의 빛"이나 "풀의 빛"이나 "나무의 빛"이나 "돌의 빛"이라 하지 않습니다. 좀더 풀어서 말하고 싶을 때에는 "꽃에서 나는 빛"이나 "꽃이 내는 빛"이라 합니다. "나무에 스민 빛"이나 "나무에 비친 빛"이라 합니다. "풀에 어린 빛"이나 "풀에 감도는 빛"이라 합니다.

 ┌ 하늘이 무슨 빛인지를
 ├ 하늘빛이 어떠한지를
 ├ 하늘이 어떤 빛으로 되어 있는지를
 ├ 하늘은 어떤 빛깔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 …

그렇지만 나날이 우리 빛이름을 우리 스스로 놓칩니다. 우리 눈으로 우리 땅을 들여다보고 있을 텐데, 우리 눈은 우리 빛깔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입은 우리 빛깔을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 귀는 우리 빛깔 이야기를 듣기 어렵습니다.

우리 삶터가 우리 빛을 내몰고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 삶터에서 우리 얼이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 삶터에 우리 땀방울이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 하늘빛이 얼마나 고운지 가르쳐 주고 싶어
 ├ 하늘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르쳐 주고 싶어
 ├ 하늘빛이 얼마나 멋진지 가르쳐 주고 싶어
 ├ 하늘빛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가르쳐 주고 싶어
 ├ 하늘빛이 얼마나 파란지 가르쳐 주고 싶어
 └ …

소리나 모양새만으로는 우리 말이나 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속알과 속내까지 깊고 짙게 우리 말과 글이어야 합니다. 무늬와 그림자만으로는 우리 말이나 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씨눈과 고갱이까지 속속들이 우리 말과 글이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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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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