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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 없이 안 하는 일 없는' 무위당 장일순

[인터뷰]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편집위원 김익록

등록|2010.01.14 07:11 수정|2010.01.14 10:36
선생님께서 남기신 글씨와 그림에는 울림이 크고 여운이 긴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시다가 근기와 형편을 보아 한 말씀하시고 붓을 들어 해 주신 글씨와 그림이 그렇게 많습니다. 세상에 나간 글씨와 그림은 그분들의 삶 속에서 죽비가 되고 경책이 되고 위로와 격려가 되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제 곁에서처럼 어디서나 그랬을 테니까요. (머리말 중에서, 목판화가 이철수)

표지<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시골생활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에 대해 눈을 뜬 게 2006년부터였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여름 연수를 강원역사교사모임에서 주최하게 되면서 원주의 근·현대 인물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삶에 주목을 하고 답사를 준비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답사 준비 과정에서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자료를 챙겨주고, 답사 코스를 알려주고 치악산에서 3박 4일간 진행된 연수기간 내내 자료전시까지 맡아 해주었다. 연수가 끝난 뒤에도 새로운 자료가 있으면 꼼꼼하게 챙겨주었다. 덕분에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귀한 말씀과 그림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2009년이 저물기 며칠 전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이 세상에 나왔다.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익록 편집위원이 무위당 선생님이 남기신 서화 중에 사람들의 마음에 향기로 남을 수 있고, 삶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주옥같은 것을 골라 묶어 출판한 책이다.

2006년 전국역사교사모임 연수 이후 맺었던 인연을 계기로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을 엮어 출간한 김익록 편집위원을 만났다.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사무실에서.

-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을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원주여고 급식소 벽에 무위당 선생님의 휘호가 걸려 있는데, 그 글이 무위당 선생님의 휘호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더라고요. 휘호가 무위당 선생님의 글이라고 알려주어도 무위당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많고요. 무위당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운곡 원천석 선생 선양 사업을 펼치고 계신 양근열 선생께서 원주 시내 각 학교 급식실에 '일완지식 함천지인(一碗之食 含天地人)'이라는 무위당 선생님의 글씨 사본을 기증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밥 한 그릇에 우주가 있다'는 해월 최시형(동학의 2대 교주)의 말씀을 무위당 선생님이 적으신 작품이지요.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종교 간의 벽을 뛰어넘어 유교, 불교, 노장과 동학사상을 두루 넘나들며 자연과 우주의 보편적인 이치와 인간 삶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고민하신 분입니다.

김익록 편집위원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 ⓒ 이기원

20대엔 중고등학교를 세운 교육자로서, 30대 이후엔 협동 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서, 그리고 말년에는 한살림 운동 등 생명 운동을 펼쳐나간 생명사상가로서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삶을 사셨지만 당신의 삶에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을 제외하곤 원주를 떠나지 않으셨지만, 변방에서 전체를 조망하며 우리 민족과 인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시고 온 삶을 바쳐 조용히 실천해 오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리영희, 김종철, 박재일, 김지하, 이현주, 김민기, 김성동, 이병철, 유홍준, 이철수 등과 같은 시대의 지식인들이 무위당 선생님을 찾아오거나 곁에 계셨습니다.

후학들은 무위당 선생님을 '하는 일 없이 안 하는 일 없는 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큰 고목나무 같은 분이셨다고 보면 됩니다. 큰 나무엔 새도 날아오고 온갖 곤충들의 삶터가 되기도 하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을 쉬게 해 주기도 하지요. 때론 벌레가 끼기도 하지만 뭇 생명에게 가리지 않고 품을 내어 주지요. 또 하나 서화가로서의 무위당 선생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그 친구인 차강 박기정 선생한테 서화를 배운 무위당 선생님은 사람의 얼굴을 닮은 의인란(擬人蘭)으로 유명하며 미려한 예서(隸書) 글씨와 조형미 넘치는 한글 서예로 유명합니다.

글씨와 그림은 주로 지인들이나 후학들에게 나눠주셨는데, 몇 번의 개인전을 열어 그 수익금으로 민주화 운동이나 생명운동과 관련된 단체들을 지원하시기도 했습니다. 청강(靑江), 무위당(無爲堂) 등의 호를 쓰셨고, 스스로를 낮추는 뜻으로 일속자(一粟子, 조한알)이라는 호를 쓰시기도 했습니다."     

작품1옛날에 어디서 보니까 ⓒ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어떤 일을 하는 모임인지요?
"2001년부터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에서 심부름을 해왔습니다. 이 모임은 1994년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뒤 매년 기일 따마다 산소 참배와 소박한 식사 모임만 해 오던 지인과 제자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선생님의 숭고한 삶과 사상이 후학들에게 행여나 잊혀질 까 두려워, 제 7주기 기일이 돌아오던 2001년에 만든 모임입니다.

'내 이름으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유지를 남기신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최대한 조용하게 기리는 일을 해 왔으나 2007년에는 무위당 선생님과 인연이 깊은 원주밝음신협 4층에 작은 기념관을 꾸미는 등 전국적으로 무위당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그의 삶 결을 찾는 이들을 위한 몇 가지 사업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2004년 10주기 때 <좁쌀 한 알>의 출간과 이번에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의 출간 등 출판 사업과 작년 광주와 목포 등에서 열렸던 전시회 등의 문화 사업입니다.

그 외에도 단순한 선양에 그치지 않고 무위당 선생님께서 꿈꾸셨던 조화와 살림의 문화가 우리 현실의 삶 속에서 온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다양한 공감과 실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에 들어와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무위당 선생님 생전에 겪었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면 그것도 함께 소개해주시면 좋겠네요.
"중학교 시절에 아주 우연한 계기로 무위당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서예실에 자주 선생께서 들르셨는데, 어느 날 지인들에게 주시려고 글씨를 쓰고 계신 선생님 곁에서 구경을 하다가 불쑥 "저도 하나 써 주세요" 그랬어요.

옆에 있던 원장님한테 "어린 놈이 건방지다"고 꾸중 듣고 주변 어른들은 "그놈 참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주셨는데, 선생님께서 저를 쳐다보시며 껄껄 웃으시더니 진짜 한 점을 써 주신단 말이에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참, 아찔하더군요.

그게 얼마나 무례한 일이었는지. 지금도 액자로 걸어놓은 30년 전 그 작품을 보면 선생님의 크신 마음이 느껴져요. 이후로도 이런 저런 인연으로 선생님을 뵐 수 있었고요, 1991년에는 결혼하면서 주례 선생님으로 모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이어서 그저 곁에서 주위 분들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의 모습을 뵐 수 있었을 뿐이지요. 선생과 함께 재해대책운동, 사회개발운동을 하시면서 고생했던 어르신들도 많은데, 나이가 어리다보니 심부름하느라고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작품2하나의 풀이었으면 좋겠네 ⓒ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 무위당 선생님의 잠언집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위당 선생님과 관련된 책들은 그동안에 몇 권이 나와 있었습니다. 독재 정권 아래에서 정치적 탄압을 심하게 받으셨기 때문에 혹시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되도록 글을 남기지 않으셨던 선생이셨지만 여러 곳에서 강연하신 녹취록과 대담 자료, 드물게 찾아낸 원고 등을 토대로 <나락 한 알속의 우주>,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좁쌀 한 알>, <노자이야기> 등의 책들이 선생의 삶과 사상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선행 작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좁쌀 한 알>을 기획하셨던 나무선 선생이 무위당 선생님을 전혀 모르는 일반 대중들, 특히 주부나 청소년들이 무위당의 삶과 사상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그래서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오로지 선생님의 육성만을 모아 쉽고 함축적인 내용으로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잠언집' 형태의 책이 된 것입니다."

-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은 어떤 책인지요.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은 향기가 있는 책입니다. 어렵지 않게 잘 읽히도록 만든 책이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내용은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생전의 말씀과 서화 작품을 통해 무위당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메시지는 짧지만 큰 감동과 강한 울림을 줍니다. 우리 현실과 그 속에 서 있는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합니다.

책을 엮으면서 20, 30년 전의 선생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렇게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서도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가 싶어서 정말 깜짝 깜짝 놀랐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은 선각자요 예언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해서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다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이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 점이 한없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지요. 저 자신에게는 참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작품3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 책 표지에 보면 '죽비가 되고 위로와 격려가 되는 무위당 장일순의 말씀과 그림'이란 소개글이 있는데요. 모두 다 주옥같은 글이어서 독자들의 가슴을 울려줄 서화이지만, 그 중에 독자들게 특별히 강추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나같이 주옥같은 말씀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몇 개를 꼽으라면,

자꾸 떨어져도 괜찮아요.
떨어져야 배워요.
댓바람에 붙어버리면 좋을 듯싶지만
떨어지면서 깊어지고
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법이에요.
남 아픈 줄도 알게 되고.(38쪽)

이름 없이 일을 해야 한다.
돼지가 살이 찌면 빨리 죽고
사람이 이름이 나면 쉽게 망가진다.(191쪽)

순정을 바치는 것이 최고의 예의다.
예의란 자기 몫을 내주는 것.(194쪽)

아이가 되어야 한다.
아이는 자기가 좋으면
제 것 갖다 주면서 서로 만난다.(195쪽)

이런 말씀들은 쉽고 짧지만 여운이 얼마나 강합니까?
그런데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제일 마지막에

이렇게 얘기를 하고 나면
매일 저녁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네.(223쪽)

이 말씀입니다. 정말 무위당 선생님다운 마무리라고 느꼈습니다."

작품4나무아미타불 ⓒ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


- 무위당 선생님 생가가 재개발로 없어질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최근 원주 지역에도 불어 닥치고 있는 재개발 바람을 타고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무위당 선생님의 생가는 1955년에 선생께서 가족들과 함께 손수 흙벽돌을 찍어서 지은 집입니다. 암울했던 시절, 많은 이들이 무위당 선생님을 뵈러 이 집을 찾아 왔었죠. 협동 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에너지가 생성된 곳이요, 살림과 생명의 사상이 태동한 곳입니다.

무분별한 재개발에 밀려 이렇게 소중한 사상적, 문화적 유산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원주시 의회에 청원서를 내기도 하고 가능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문화유산 등으로 지정하여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지자체의 좀 더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아쉽습니다."

- 앞으로 '무위당을 기리는 모임'에서 추진할 사업 계획이 있다면?
"생전에 무위당 선생님과 함께 활동하셨던 지인, 후학, 제자들의 증언과 자료들을 계속 수집하고 연구할 것이며, 선생님께서 남기신 서화 작품을 정리하여 도록을 편찬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삶과 사상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선생님께서 제시해 주신 우리들 삶의 좌표에 대해 체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일 등을 해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출판, 전시, 교육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될 것이지만 선생님의 유지에 맞게 요란하지 않게, 소박하고 조용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가르침에 감동받은 이들의 자발적인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깊이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익록 엮음/시골생활/2009.12/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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