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의 시대, 준비는 되었는가
기상청을 부로 승격하는 문제를 검토할 때
▲ 밤새 내리는 눈 ⓒ 김수복
밤새 눈이 내리더니 아침에도 안 그치고 낮에도 계속된다. 95년 겨울에 있었던 폭설의 추억이, 그 악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기저기서 비닐하우스가 주저앉는 것은 기본이었고, 창고 지붕이 내려앉는가 하면 본체가 쓰러지기도 했다. 내 개인적으로도 본체 차양이 뿌직뿌직 솔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이탈하는 피해를 겪었다.
▲ 설국이 따로 없네 ⓒ 김수복
그 해에 자원봉사를 왔던 이로부터 안부전화가 왔다. 서해안 지역에 대설특보가 내렸는데 금년에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안녕하시냐는 인사 뒤에 그는 뜻밖의 말을 하고 있었다. 고창 지역 적설량이 16cm라고 하는데 그 정도면 피해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안심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나보다도 먼저 내가 사는 곳의 공식적인 적설량을 알고 있었던 셈이었다.
▲ 우편함은 경사가 좋아서 눈이 흘러내리며 쌓이는데도 이 정도다 ⓒ 김수복
굳이 자로 재보지 않아도 마당에 쌓인 눈은 16cm가 훨씬 넘어 보였다. 그래도 일단 확인이나 해보자 하고 줄자를 들고 나가서 꽂아보니 50을 훌쩍 넘어 버린다. 다시 그 옆으로 보다 평평한 곳에 꽂으니 40 남짓이다. 여기저기 서너 군데 더 꽂아본 결과 대체로 40cm 전후인 것 같다.
▲ 여기는 이렇게 40이나 되건만, 공식발표는 우째 16이어야 하나. 같은 고창인데도. ⓒ 김수복
맹랑하다. 기분이 묘하다. 무엇인가 여태까지 소외를 당하고 있었다는 느낌도 있고, 내가 지금 고창이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어이없는 생각도 잠깐 들다가 말고 하여튼 어리둥절하다.
고창 지역에도 금년부터 기상 관측소가 업무를 개시했다. 관측소는 고창에서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읍내에 소재한다. 이곳 해리면에서 읍내까지는 20여 km. 그러니까 읍내 쪽에는 16cm 정도의 눈이 내린 반면 해리면에서는 40여cm가 쌓인 것이다. 읍내나 해리면이나 다 같은 고창으로 표기된다. 다 같은 고창이지만, 해리면은 중앙이 아닌 까닭에 40cm의 적설량을 보이고 있음에도 중앙의 16cm로 공식기록이 된 것이다.
내가 만약에 지금 무엇인가 중요한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면, 그 문서가 장기간 보관해야 할 정도로 중요성이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문서에 오늘의 적설량을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나는 내 손과 눈으로 직접 확인한 40cm를 채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오늘 공식 발표된 중앙의 16cm를 채택해야 하는가.
내가 만일 예의 중요한 문건에서 오늘 해리면의 적설량 40cm를 채택해서 기록을 한다면, 먼 훗날 나는 아주 불량한 기록자로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다. 내가 작성한 문서를 열람한 미래의 어떤 사람이 당시의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를 느끼고 중앙에서 발표한 기록을 보게 된다면, 중앙의 기록 16cm와 나의 기록 40cm의 차이만큼이나 나는 엉터리로 규정될 것이고, 그로 인한 불명예는 나와 피를 나눈 형제와 그 후손들에게로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이런 상상이야 물론 가설이기는 하지만, 가설이라 하더라도 이게 간단한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 현대는 기상이변의 시대라고 한다. 언론에서 친절하게 일러주지 않더라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며 걱정을 한다.
▲ 그 짱짱하던 대나무도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휘고,또 휘다가 결국은 쩍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 김수복
이변이란 예전에 없던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무엇을 계획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새로운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기상정책은 지금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내가 확인한 적설량 40cm와 언론에 공식 보도된 16cm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몇 군데 전화를 걸어 보았다. 고창에 새로 생긴 관측소로 전화를 했더니 "재난안전상황실입니다"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관측소 연결을 부탁하니 핸드폰으로 131번 누르면 기상상황 안내를 받을 수 있다는 엉뚱한 답이 돌아온다.
그 뒤로 여기저기 몇 군데 전화를 더 하고, 몇 마디 얘기를 나눈 뒤에야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잡혔다. 고창에는 관측소 담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재난안전상황실에서 겸하고 있고, 따라서 일기와 관련한 답변을 해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럴 만한 시간도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고창에는 관측소라도 있지만, 대다수 군 지역에는 그런 이름조차도 없는 실정이다. 어느 분야인들 기상으로 인한 영향이 크지 않을까마는, 농촌에서의 날씨 의존도는 이와 입술만큼이나 중요하다. 물이 옆에 있다고 별 생각없이 물쓰듯 해온 것처럼, 그동안 우리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낭패와 곤욕을 어쩔 수 없는 운명쯤으로나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 목욕물을 끓이는 아궁이는 그야말로 아궁이만 빼꼼하니 남았다 ⓒ 김수복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에 기상청에서는 소위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바 있었다. 기상예보가 너무 자주 틀린다는 국민적 원성에 따라 크게 예산편성을 해서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들여온 컴퓨터였다. 그런데 결과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슈퍼컴퓨터 아니라 슈퍼슈퍼컴퓨터라도 이변을 읽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나도 예전에는 기상청의 예보시스템이 엉망이라고 투덜이짓을 하기도 했지만, 이번에 몸소 겪어보니 엉망은 기상청이 아니라 국정운영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정부에서 눈에 띄고 생색도 크게 나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생사의 문제는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재앙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내일 그것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바보는 아무도 없다.
말로만 기상이변, 기상이변 할 것이 아니라 그 이변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지, 어떠한 패턴을 지니고 있는지를 면밀히 연구하고 분석해서 축적해 나가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그러한 심층 연구를 위해서는 군 단위가 아니라 적어도 면 단위에 하나씩의 관측소는 있어야 하고, 전문 인력도 배치를 해야 한다. 인력도, 장비도, 예산도 형편없는 현재의 기상청 제도로는 물론 어림없는 일이다.
국가가 진실로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면, 이런 생색나지 않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살피며 그동안 작은 일이라고 치부했던 것을 큰일로 되돌리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 그러나 어쨌든 강아지들은 신이 났다. 이게 뭥미, 뭥미? 마당 가운데의 눈을 발로 밟아 길을 냈는데 강아지들의 키를 훨씬 넘고도 남는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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