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아기 고래'들은 언제쯤 마음껏 날게 될까
[서평] 이금이의 청소년소설 <주머니 속의 고래>
▲ <주머니 속의 고래>(이금이 지음)겉그림. ⓒ 푸른책들
왜냐고 묻는다면, 왜 꿈이 제일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현실 속에서 현실을 넘어서는 꿈을 꿀 수 있을 때 청소년들이 제 자신을 더욱 굳게 붙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혹 그야말로 한 밤의 달콤한 꿈으로 일기 속에만 남을지라도 새처럼 마음껏 날아다니는 꿈이 있는 청소년들은 적어도 작은 문제로도 세상을 외면하고픈 유혹 만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주머니 속의 고래>(이금이 지음, 푸른책들 펴냄)는 고교 진학이 멀지 않은 중3 아이들이 좌충우돌하며 제 꿈들을 엮어가는 이야기이다. 민기, 현중, 준희, 그리고 연호. 이들 네 명은 마치 서로 서로 비추는 거울인 것처럼 같고도 다른 꿈들로 뭉쳐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작은 일에도 상처받기 쉬운 민감한 세대답게 감추고픈 여러 고민들 때문에 끙끙 앓는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조금씩 알아가는 모습들은 제각기 제 꿈과 현실 속에서 고민하는 모습만큼이나 정겹다.
민기와 친구 현중은 길에서 우연히 받은 연예기획사 명함 한 장에 모든 꿈을 담은 듯 부모님 눈을 피해 틈만 나면 오디션을 볼 궁리에 빠져 있다. 민기네 집 한 쪽에 세 들어 사는 연호는 엄마의 따뜻한 품을 거의 느끼지 못한 채 늘 할머니하고만 지낸다. 제 집 여건이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연호는 적잖이 뛰어난 노래 실력을 잘 드러내지 않은 채 학교에서든 어디에서든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준희. 준희는 자신을 공개 입양한 엄마와 아빠의 세심한 관심 속에서 살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이야기에 민감해져 있다. 부모님이 '이모'라고 부르는 친엄마 소식은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닌 그저 피하고픈 어려운 문제이다. 민기, 현중, 연호 무리에 끼여 랩퍼 실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준희는 연호만큼이나 제 주변 단속에 민감하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연호는 자신을 보여주는 게 싫어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교실에서는 투명인간으로 살고자 노력했다. 물론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몸을 보이지 않게 해 주는 도깨비감투 같은 것이 없으니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심 밖으로 자연스레 밀려나려면 모든 면에서 잘하지도 못 하지도 않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연호는 중간 성적을 유지했고, 준비물도 잘 챙겼고, 아이들에게 모나게 굴지도 않았다. 또 노래로 주목 받게 될까 봐 음악 실기시험조차도 적당히 치렀다.
연호는 앞이 안 보이는 할머니와 월세방에 사는 것보다 엄마가 야시장을 떠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것과, 짙은 화장을 하고 장터에서 노래를 부르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알려지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 동안 연호는 투명인간으로 사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34쪽)
<주머니 속의 고래>는 연호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연호 이야기로 끝나는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 중3이 된 연호가 기초환경조사서를 앞에 놓고 고민하는 모습은 책 끝에서 고등학교에서 받은 기초환경조사서를 보는 모습과 쌍을 이룬다. 연호의 얼굴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필요해 보이는 각종 가족 신상 기록 칸 앞에서 찡그려진다. 그리고 그 찡그린 얼굴은 제 딸을 할머니에게 맡겨놓은 채 가수가 되려는 꿈에만 매달려 잘 나타나지도 않는 엄마의 얼굴과 겹쳐지곤 한다.
그런데, 연호의 엄마는 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연호를 열 여섯에 낳았었다. 부모의 품, 가정의 품이 그리워서였을까. 다 알 수 없는 마음을 감춘 채 뒤늦게 꿈을 좇아 사는 연호의 엄마는 고등학생 나이쯤에 연호를 낳았고 연호 아빠는 지금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민기는 어느 날 밤 동네 놀이터에서 '고래사냥'을 흥얼거리는 아빠를 보았다. 공부 잘 하던 딸의 엉뚱한 장래 희망 선언에 적잖이 실망한 민기 아빠는 '고래사냥'을 흥얼거리며 남몰래 딸애에게 심었던 못다 이룬 자기 청춘을 어루만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민기 눈에도 아빠의 모습은 분명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민기 아빠의 모습은 이제 막 꿈을 발견하고서 그 꿈을 잡을 듯 말듯 또는 꼭 품을 듯 버릴 듯 오락가락하는 아이들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빠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민기는 아빠 노래를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엔 하늘에 뜬 반달이 등을 내놓은 채 바다를 헤엄치는 아기 고래처럼 보였다. '그래,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이 나 자신이듯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야.' 민기는 손을 뻗어 그 아기 고래를 잡아 주머니에 넣었다. "아빠, 이제 집에 가요. 엄마 걱정하신단 말이야." 민기는 아빠를 부축해 의자에서 일어섰다."(241쪽)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주머니 속의 고래>는 엊그제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소설이기보다 수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그런 느낌 때문에 이 책의 이야기를 더 마음에 그려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꿈과 현실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제 모습을 찾아가는 중인 청소년들에게는 꿈과 현실의 괴리가 그 어느 세대보다 심각하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은 일에도 민감하고 하찮은 추억도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열의를 보이기도 하는 청소년들. <주머니 속의 고래>는 그런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청소년의 아름다운 특권, 꿈에 날개 달아주기에 동참하도록 권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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