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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쓰는 사람, 돈이 쓰는 사람

[서평] 이현주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등록|2010.01.15 13:26 수정|2010.01.15 13:26

표지<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 작은 것이 아름답다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지! 그래서 무슨 일을 하려면 먼저 돈의 눈치부터 살피며 돈이 하라면 하고 돈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는, 돈(경제)의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거라. 사람이 그렇게 살아서야 어디 사람답게 산다고 할 수 있겠니?(책 속에서)

"할아버지 경제가 없으면 우리가 살 수 없는 건가요?"란 질문에 대한 이현주 목사가 해준 대답의 일부분이다. 경제만 살리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처럼 법석을 떠는 세상, 돈 되는 일에만 매달리고, 돈 안 되는 일은 차갑게 외면하는 세태를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구나! 읽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이현주 지음, 작은 것이 아름답다 펴냄)의 장점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어리광 부리며 자란 추억을 회상하면서 배 깔고 엎드리거나, 베개 베고 누워서, 아니면 벽에 등 기대고 철퍼덕 주저앉아서 읽어도 괜찮은 책이다.

편안하게 읽다보면 "아하, 그렇구나!" 생각이 들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환한 느낌이 든다. 지독한 근시안이 새 안경 쓰고 세상을 바라볼 때의 그 느낌처럼. 연륜을 허세처럼 내세우지 않고 알아듣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늙은이에게 묻는 아이
아이에게 답하는 늙은이
누가 누구에게 더 큰 은총인지는 모르겠으나
늙은이 무릎에 앉아 묻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답하는
한 아이와 한 늙은이가
세상에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정겨운 장면들 가운데 하나를
연출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는 말 중에서)

이현주 목사가 5년 동안 아이들이 묻는 질문과 그에 대해 답해준 것을 모아 엮은 책이다.  첫 번째 장은 '나'에 대한 질문과 대답, 두 번째 장은 '너'에 대한 질문과 대답, 세 번째 장은 '우리'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다양하고 막힘이 없다. "마음이 무언가요?"부터 시작해서 "세상의 끝은 무얼까요?"란 질문까지 모두 44개의 질문이다. 질문 속에는 아이들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오롯이 들어있다. "헤어지는 건 누구나 힘든 일인가요?", "어떻게 하면 집중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해야 친구가 저를 좋아할까요?", "꼭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 "지구촌은 하나라면서 왜 외국인 노동자에게 함부로 할까요?","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나요?" ….

아이들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이현주 목사는 자신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상한다. 뒤틀리고 더러워진 몸으로 맑은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을 반성하는 얘기였다.

아이들의 질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만든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를 읽다보면 향기가 절로 느껴진다. 연륜으로 쌓인 지혜가 주는 향기, 맑디맑은 아이들 눈으로 '나'와 '너'와 '우리'를 돌아보는 성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어둔 밤에 길을 가려면 등불 하나만 있어도 돼. 난 그저 오늘 하루 아니면 내일이나 모레, 길면 한 열흘쯤 뒤의 일이나 미리 생각하며 살기로 했지. 당장 오늘 밤 자기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는 게 사람인데, 그런데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안 해도 될 걱정들을 껴안고서 갈팡질팡 하는 모습이 좀 우습구나. (책 마지막 부분)
덧붙이는 글 이현주/작은것이아름답다/2009.12/11,000원

이 책은 재생종이로 만든 책입니다. 국내 종이 사용량 24%가 책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해마다 30년생 나무가 3천 5백만 그루가 사라지는 셈이지요. 재생종이로 만든 책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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