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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36) 속 1

[우리 말에 마음쓰기 838] '사회 속에서', '희망 속에서' 다듬기

등록|2010.01.15 18:59 수정|2010.01.15 18:59
ㄱ. 사회 속에서

.. 하지만 근본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빚을 갚고 돈 모아 집 장만하고 아이 낳아 키워도 끝내 사회 속에서 어울릴 수 없게 됩니다 ..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김연자, 삼인, 2005) 10쪽

 우리 말 '속'에는 모두 아홉 가지 뜻이 있다고 국어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우리 말이니 이런 자리와 저런 자리에 알맞게 쓰는 '속'은 잘못이나 말썽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어사전 여섯째 뜻풀이로 나오는 "어떤 현상이나 상황, 일의 안이나 가운데"는 곰곰이 돌아보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국어사전은 모두 네 가지 보기글을 실어 놓고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말을 해도 될는지 돌아보고, 우리 말투나 우리 말문화에서 '속'을 이 같은 자리에 넣는 일이 올바른지 하나하나 짚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 연속극에서나 이루어지는 이야기
 ├ 잠 속으로 빠져들다
 │→ 잠에 빠져들다
 ├ 그 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 그 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 그 일은 온 나라 사람을 크게 놀라게 했다
 ├ 그 소년은 가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 그 소년은 가난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 그 아이는 가난하여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 그 아이는 가난한 살림이어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 …

 제가 어릴 적에 둘레에서 듣거나 나누던 말투를 헤아려 봅니다. 저는 '속'을 사이에 넣어 "연속극 속"이라든지 "영화 속"이라든지 하는 말투를 듣지 못했고,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으로 지내며 한동안 대학생으로 배울 때에는 '속'이라는 낱말을 곳곳에 끼워넣었습니다. 머리통이 한창 굵어질 무렵에 읽던 책에는 어김없이 '속'이라는 낱말이 넘쳐났습니다. 책을 비롯해 신문이며 방송이며 온통 '속'투성이였습니다. 교사나 교수나 지식인이나 기자나 한결같이 '속' 없이는 말을 못하고 글을 못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우리 말글을 찬찬히 살피면서 가다듬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제 둘레 숱한 지식인들마냥 '속'이라는 낱말을 끝없이 쓰면서 아무 걱정과 근심이 없었을 테며, '속'을 넣지 않는 말투는 아주 마땅하게도 어설프거나 올바르지 않다고 잘못 생각했으리라 봅니다.

 '속'이라는 말을 새삼스레 짚어 봅니다. 제가 이 말투를 처음 듣고 읽으면서 살아가는 동안, 이 말투가 알맞는지 알맞지 않은지를 알려주는 분은 없었습니다. 이 말투가 깃든 책이나 신문이나 글이 올바른지 올바른지 않은지를 가려내는 분은 없었습니다. 이오덕 님이 <우리 글 바로쓰기> 이야기를 신문에 싣고 책으로 묶어낸 때는 1980∼90년대입니다. 요즈음은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게 다루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책이 쏟아지고 있으나, 1980∼90년대에는 이 책 하나를 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문교부에서 펴내던 '국어순화자료용어집'은 있었습니다). 우리 말글을 알맞고 슬기롭게 다루자는 책을 깊이 들여다보거나 살피는 흐름은 얕았습니다. 이와 같은 책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말을 바르게 가누고 글을 옳게 돌보자고 애쓰는 분들이 드물었습니다. 생각없이 말을 하고 마음없이 글을 썼다고 하겠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생각을 깊이 다스리지 않았고, 아이들한테 생각을 깊이 다스리라면서 다독이거나 이끌지 않았습니다.

 ┌ 사회 속에서 어울릴 수 없게 됩니다
 │
 │→ 사회에서 어울릴 수 없게 됩니다
 │→ 이 사회에서 어울릴 수 없고 맙니다
 │→ 우리 사회에서 어울릴 수 없습니다
 └ …

 "학교에서 동무들하고 잘 놀아야지"와 "학교 속에서 동무들하고 잘 놀아야지"를 나란히 놓고 생각해 봅니다.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와 "집 속에서 하는 일이 뭐야?"를 마주 놓으며 헤아려 봅니다. "이 사회에서 무슨 구실을 하지?"와 "이 사회 속에서 무슨 구실을 하지?"를 함께 놓은 다음 곱씹어 봅니다.

 '속'을 붙이는 말투는 틀림없이 있습니다. 몸속, 산속, 물속, 바닷속, 머릿속, 마음속, 가슴속 ……. 이와 같은 낱말에서는 얄궂을 대목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속'을 집어넣으면서 무언가 내 뜻이나 느낌을 좀 더 힘주어 나타내고자 하는지 모릅니다. "사회에서"는 여느 자리에서 주고받는 말투이고, "사회 속에서"라 하면 한결 힘주어 말한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우리 말문화는 올바를까요? 이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내 생각과 마음이 한결 깊어질 수 있을까요?

 "가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와 비슷한 말투로 "아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처럼 이야기하는 우리들입니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처럼 이야기하기도 하는 우리들입니다. "아프면서도"나 "아프지만"이나 "슬프면서도"나 "슬프지만"처럼 이야기하던 우리 글매무새와 말매무새를 차츰차츰 잃거나 버리는 우리들입니다.

 유행처럼 휩쓸리는 우리들이기에, 유행처럼 '옳은 말인지 옳지 않은 말인지를 헤아리지 않고 쓰는' 우리들이구나 싶습니다. 다들 으레 살아가는 모양새대로, 다들 으레 말하는 모양새 그대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들이구나 싶습니다. 바른 삶, 바른 넋, 바른 말이 아닙니다. 유행하는 삶, 유행하는 넋, 유행하는 말입니다.

 ┌ 끝내 이 사회에서 함께 어울릴 수 없습니다
 ├ 끝내 이 사회에서 즐겁게 어울릴 길이 막힙니다
 ├ 끝내 이 사회에서 어우러지지 못합니다
 ├ 끝내 이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습니다
 └ …

 말을 말답게 하고 삶을 삶답게 일굴 수 있는 우리들로 나아간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꿈을 꿉니다. 글을 글답게 여미고 삶을 삶답게 북돋울 수 있는 우리들로 어우러진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고 비손을 합니다.

ㄴ. 희망 속에서

.. 질식 상태를 모면할 수 있을까 하는 미친 듯한 희망 속에서 숨쉴 수 있는 공기가 남아 있는 곳을 찾아보다 ..  <피카소의 게르니카>(J.L.페리에/김화영 옮김, 열화당, 1979) 53쪽

 "질식(窒息) 상태(狀態)를"은 "숨막힘을"이나 "갑갑함을"로 손봅니다. "답답함을"이나 "아찔함을"로 손봐도 되고요. '모면(謀免)할'은 '벗어날'로 다듬습니다.

 ┌ 희망 속에서
 │
 │→ 희망을 찾으면서
 │→ 희망을 붙잡으면서
 │→ 희망 하나 헤아리면서
 │→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면서
 │→ 한 줄기 희망을 바라면서
 └ …

 어떻게 쓰는 말이 알맞을까 궁금합니다. 말을 알맞게 쓰는 일은 우리한테 어떻게 도움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알맞지 않게 쓰는 말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알맞게 쓰지 않는 말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는지 궁금합니다.

 말 한 마디를 살피면서 밥 한 그릇을 생각해 봅니다. 밥 한 그릇을 생각하며 제가 하는 일을 떠올려 봅니다. 제가 하는 일을 떠올리면서 제가 즐기는 놀이를 되새기고, 제가 즐기는 놀이를 되새기며 제가 바라보는 사람들을 곱씹어 봅니다. 이 모두와 우리 말글은 따로따로 돌아갈까요? 아무런 이음고리가 없을까요? 모두 동떨어진 채 지식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은지, 다 따로따로이면서 제멋대로 흘러가도 되는지요?

 우리 삶터에서 자그마한 희망 하나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아니 자동차가 따로 없이 모두들 오붓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은 있을 수 없을까 하고 꿈줄기 하나 붙잡고 싶습니다. 대단한 정치 지도자 하나 없어도 아름답고 깨끗하고 빛나는 삶터를 가꾸거나 지킬 수 없는가 하고 꿈날개를 펼치고 싶습니다. 돈이 있고 없고 이름이 높고 낮고 힘이 세고 여리고를 떠나, 사랑과 믿음이 어우러지면서 흐뭇한 터전을 다 함께 갈고닦을 수 있을까 하면서 꿈잔치를 열고 싶습니다. 말과 넋과 삶 모두 아름다울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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