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창평, '이승기연못'이 전부는 아냐
관광객들에게 자전거 그냥 빌려주는 '슬로시티'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 삼지천마을 돌담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 이돈삼
단아한 옛집 사이로 난 돌담길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고 돈다. 돌담의 기와 위로 내려앉은 눈이 소담스럽다. 눈 속에서 삐죽 언저리를 내민 기와에선 세월의 더께가 느껴진다. 선조들의 그윽한 숨결이 묻어난다.
"슬비야! 놀자. 예슬아! 노∼올자." 시계바늘이 금세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이 돌담을 한 줄로 세우면 자그마치 3㎞도 넘겠다. 이 돌담은 담양 창평을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하여 돌담과 옛집은 '슬로시티' 창평의 상징 같은 존재다. 돌담은 지난 2006년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 창평면사무소 앞에 선 슬로시티 안내판.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준다고 씌어 있다. ⓒ 이돈삼
▲ 삼지천마을 입구에 우뚝 선 남극루. 그 뒤로 삼지천마을이 보인다. ⓒ 이돈삼
그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다보니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마저도 감미롭게 느껴진다. 남극루 앞 넓은 공터에 자전거를 잠시 세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연인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문을 연다.
"아저씨! 자전거 어디서 빌렸어요?"
"예. 저기 면사무소 가면 그냥 빌려줘요."
"그래요?"
"저기 교회 보이죠. 바로 그 옆이 면사무소예요."
자전거를 타고 도는 모습이 부러웠는가 보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그들은 벌써 면사무소 쪽으로 가고 있다. 그 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또 보인다. 옛집과 돌담 사이로 옛 정취 넘실대는 슬로시티,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三支川)마을의 일요일 오후 풍경이다.
▲ 삼지천마을에는 옛집이 여러 군데 있다. 고재환 가옥으로 들어가는 돌담길이다. ⓒ 이돈삼
▲ 솟을대문이 인상적인 고정주 고택. 삼지천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사진촬영 장소로 인기다. ⓒ 이돈삼
삼지천마을은 월봉산에서 발원한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 등 세 개의 물줄기가 마을로 모여 흐른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삼지내마을'로도 불린다. 이 마을의 역사가 깊다. 16세기 초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마을의 역사와 전통은 금세 겉으로 드러난다. 100년도 넘은 전통한옥이 20여동이나 남아있다. 그 중에서 '고재선 가옥'과 '고재환 가옥'은 민속자료로 관리되고 있다. 대문채와 사랑채, 안채, 문간채 등 전통적인 남도 주택의 주거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다.
'고재욱 가옥'에선 파란 눈의 독일인인 베르너 삿세(Werner Sasse·69)가 살고 있다. 평소 한복을 즐겨 입는 그는 고택에서 수묵화를 그리며 한국생활을 즐긴다. 한국학을 전공한 그는 평소 한옥예찬을 즐겨 한다.
▲ 삼지천마을의 고택에 사는 베르너 삿세(오른쪽) 교수가 집을 찾아온 독일인 제자 빈도림씨와 마주 섰다. ⓒ 이돈삼
▲ 삼지천마을에는 전통쌀엿을 만드는 곳이 몇 집 있다. 전통쌀엿을 만드는 송희용 씨 집앞에 액을 짜낸 식혜 찌거기가 널려 있다. 이것은 소의 먹이로 활용된다. ⓒ 이돈삼
전래의 손맛도 그대로다. 삼지천마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건 전통쌀엿. 돌담길에 기댄 '창평전통쌀엿'이라는 간판을 따라가면 전통방식 그대로 만든 쌀엿을 맛볼 수 있다. 운이 맞으면 쌀엿 만드는 과정도 직접 볼 수 있다.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죽염된장을 만드는 곳도 이 마을에 있다. 장을 담그는 이는 고씨 문중의 종부인 기순도(60)씨. 10대째 장맛을 이어오고 있는 그녀는 농림수산식품부에 의해 진장 명인으로 지정돼 있다.
옛 방식 그대로의 손맛은 한과와 강정에서도 배어난다. 나름대로 브랜드까지 구축한 창평국밥 또한 이 지역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다. 돌담과 고택, 옛 음식 모두 '슬로시티' 창평을 창평답게 하는 것들이다.
▲ 눈 내린 날 죽녹원 풍경. 죽녹원은 담양을 '남도여행 일번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이돈삼
삼지천마을은 담양에 속한다. 담양까지 갔다면 죽녹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죽녹원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담양의 대표적인 여행지 가운데 한 곳. '남도여행 일번지' 담양을 더욱 빛나게 하는 대숲이다.
죽녹원과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죽향문화체험마을도 가볼 만하다. 식영정, 송강정, 명옥헌 등 담양의 이름난 누정들이 축소돼 있어 발품 팔지 않고도 한군데서 여러 누정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텔레비전의 한 오락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승기가 빠져서 유명해진, 이른바 '이승기연못'도 여기에 있다.
판소리를 체험할 수 있는 '우송당'과 한옥체험관, 산책로, 잔디공원, 분수대도 만들어져 있다.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의 주옥같은 시가문학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비공원도 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과 숲으로 이름 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과 관방제림의 겨울풍경도 이국적이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금성면에 있는 송학민속체험박물관에도 꼭 가볼 일이다.
▲ 송학민속체험박물관은 누구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곳이다. 여기선 온갖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 이돈삼
▲ 죽녹원 앞에 있는 관방제림은 사철 아름다운 마을 숲이다. 그 중에서도 겨울에 더 운치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담양 삼지천마을은 호남고속국도 창평나들목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창평나들목으로 나가자마자 좌회전하면 창평면소재지로 연결된다. 삼지천마을은 면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다. 창평면사무소 주변이 삼지천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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