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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포천 축산 농가를 구제할 것인가

구제역을 이겨내려는 포천의 눈물겨운 현장을 다녀와서

등록|2010.01.18 10:57 수정|2010.01.18 14:19

영중면 장용출씨가족같은 젖소 92마리를 묻고 망연 자실한 장용출씨 ⓒ 이철우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의 장용출씨는 지난 14일 면사무소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장씨가 기르는 젖소 92두가 구제역 의심소이니 15일 오전 10시 살처분을 집행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유는 구제역 발생 농가를 방문했던 수의사가 다녀갔다는 것이다.

장씨는 이렇게 아무 대안도 없이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평생을 길러오던 젖소를 산 채로 묻어야 한다는 것을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묻으려면 내 가족도 함께 묻어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한다. 하지만 장씨는 이틀 후 애지중지하던 소들을 마당에 묻고 허탈해 몸져 누었다. 이렇게 죽어간 소와 돼지들이 3000마리가 넘는다.

구제역! 포천 방어선을 사수하라! 지금 포천의 발생 농가 주변 뿐 아니라 포천시 전역에 이동 통제소가 16개 운영되고 있다. 모든 공무원과 자원봉사 시민들이 발생일로부터 지금까지 철야 근무중이다. 기르던 가축을 땅에 묻어버린 농가들은 망연자실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그 외 축산 농가들도 불안과 공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4개 농가가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고 더 이상 추가 발생은 없는 상태이지만 포천의 축산은 한마디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위험지역 내 가축들의 관외 반출이 금지되어 있고, 관내 도축장마저 폐쇄되어 설 대목을 앞둔 축산 농가와 포천 경제는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게다가 축산물 청정지역 지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초유의 사태로 인해 축산 도시 포천의 명성에 큰 오명을 남기게 될까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직 전염 경로와 매개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고 이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예측할 수 없어 축산농가와 포천시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그 원인과 책임 소재는 나중 문제다. 마치 산불 진화의 방화선처럼 포천시의 경계는 구제역의 방화선이 되었다.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더 이상의 확산을 막아야 하는 절박감에 정부는 총력전을 치르고 있다. 이 총력전에 포천시와 축산농가 그리고 포천 경제는 구제역에 걸린 소보다도 더 힘겨워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절박한 시점이다.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는 방역 뿐 아니라 축산 농가의 절박한 경영 악화와 연쇄 부도를 막아야 한다. 축산물의 관외 반출이 금지되어 농가들은 자금 회전을 할 수 없고, 사료값과 난방 등 운영비만 소비하고 있다. 게다가 출하 시기를 놓쳐버린 소와 돼지들은 육질 저하로 인한 상품가치 하락과 생산비의 막대한 비용 증가만 초래한다. 또 구제역에 감염되지 않고 살처분한 농가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하고 부채상환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구제역의 확산을 막기 위해 포천시 민·관·군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면에 축산농가들과 포천경제는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문제 해결은 구제역 사태가 하루 속히 종결되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정부는 축산 농가와 포천시에 긴급 자금을 지원하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살처분한 농가는 보상이 언제 어떤 수준으로 나올지 아무도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출하를 못하는 양돈 농가와 낙농가, 육우 농가의 하늘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 있다.

이동통제소발생지 중심으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이동통제소. ⓒ 이철우



누가 포천의 축산 농가를 구제할 것인가?

지금도 세종시를 둘러싼 정쟁에 매달린 채 정치권은 포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하다. 방화선 내 초목을 모두 태우더라도 더 이상 번지지 못하게 하는 산불 진화와 이번 포천 구제역 방역은 다르다. 방역과 확산 방지에 눈물겹게 희생하는 포천의 축산 농가와 포천 시민들을 위해 하루 속히 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 기회에 제도적 보안과 함께 과학적 예방에 대한 새로운 축산관리 시스템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지금 포천의 축산인들은 서로 왕래하기도 꺼린다. 모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상호 방문도 자제한다. TV에서조차 국제적 이미지를 고려해 자극적인 장면을 방영하지 않고 있다. 이번 구제역 사태를 통해 보여준 축산 농가들의 눈물 겨운 희생을 신속히 보상해 주어야 함을 다시 한 번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지금도 잠 못 이루며 내일을 걱정하는 포천 축산 농가들은 정부와 국민들의 아낌없는 지원과 이해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 포천은 대한민국 축산을 지키기 위해 외로운 전쟁을 한다. 정치권도 즉각 정쟁을 중단하고 포천 축산 농가들의 고통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필자 이철우씨는 전 국회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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