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자연숭배'? 바티칸의 편협한 종파주의
[주장] 기독교와 자본주의에 대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바티칸, 자연숭배사상 부추키는 영화로 비판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적 신드롬을 낳고 있다. 한국과 중국, 홍콩 등 재개발 압력에 시달리는 나라 서민들은 자신들 처지가 판도라 행성 원주민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판도라 행성 원주민들은 자원을 얻기 위해 강력한 살상무기로 무장한 지구인들에게 쫒긴다.
영화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부시 정권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과 영화 내용이 일치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판도라 행성 신목(神木) 아래에 있는 언옵타늄을 얻기 위해 대기업이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이나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체니 같은 미국 수뇌부가 석유회사나 군수업체 출신이었던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함께 <아바타>의 이탈리아 개봉을 앞둔 지난 13일 로마 교황청도 <아바타>논쟁에 끼어들었다.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 '바티칸 라디오'는 이 영화가 볼만한 영상 효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극단적으로 단순화됐으며 종교 대신 "자연 숭배를 부추기는 현대의 신조들과 교감하고 있다"고 혹평을 퍼부었다. 또한 "생태계를 새 천년 종교로 변모시키는 모든 유사 교리를 교묘하게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자연을 '새로운 신'으로 만들 위험에 대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평소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일 제43차 평화의 날 교서를 통해 "신이 우리에게 주신 땅과 자연자원을 돌보지 않고 철저히 착취하는 데서 비롯되는 위협은 인간 사이의 잔학행위 못지 않게 우려스럽다"면서 "인류는 인류와 환경 사이의 약속을 새롭게 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황의 이러한 견해는 일반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며 <아바타>에 대한 교황청의 비판은 <아바타>를 통해 범신론이나 자연숭배경향이 강한 뉴에이지 문화가 더욱 확산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의 표시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영혼을 지닌 판도라 행성의 모든 생명체들과 교감을 나누며 살아가는 나비족의 삶과 영화후반부에 강렬하게 묘사되는 여신 '에이와' 숭배 의식이 가톨릭 전통신앙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바타>에 대한 교황청의 비판은 교인수 10억을 헤아리는 세계 최대 종교기구로서의 여유와 넉넉함과는 거리가 먼 매우 편협한 것으로 자신들의 교리를 타자에게 완력으로 강요하려는 왜소한 종파주의 집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황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개신교 복음주의자들도 <아바타>는 자연이 하느님을 대체하는 범신론적 견해를 펼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 신앙과 어긋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고대인들, 자연과 일치된 세계관으로 동물이나 약자 배려
종교계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아바타>는 어떤 측면에서는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흥행감독이 평생 그가 추구해온 첨단 디지털 기술을 통한 영화제작방식을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라는 평범한 주제에 접목시킨 속류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에 불과할 수 있다. 실제로 백인 주인공이 원주민들을 구원하는 내용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백인 메시아 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고 정령신앙(애니미즘)을 토대로 자연보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같은 만화영화(애니메이션)의 기본골격과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여러 비판과 논란에도 <아바타>에게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신화를 대중적인 방식으로 되살렸다는 점이다. 영화에 나타난 것처럼 나비족은 동식물을 포함 모든 존재들과 유기적 관계는 물론 영적 소통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기존 판타지 영화와는 다른 진일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비족의 생활방식은 오늘날 유대교나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유일신 종교가 거세해버린 매우 오래된 신화시대의 삶과 유사하다.
인류가 문명과 합리적 사고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배제시키기 전만 해도 인류는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살고 있었다. 동물이나 약자를 배려했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이 대립되는 관계가 아닌 상보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동물을 사냥한다고 해도 사냥감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조심스럽게 사냥을 했고 사냥후 살을 발라낸 후 뼈를 버릴 때도 매우 정성스럽게 모아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일본의 종교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야생적 사고'라고 불렀으며 이는 선사시대 인간들의 보편적인 의식체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이치는 다섯 권으로 된 <카이에 소바주>시리즈를 통해 인간과 자연 저너머의 초월적이고 압도적인 유일신 체계를 만들어낸 유대-기독교 시대가 등장하고 상품경제가 보편화되면서 인류는 자연을 생명의 원천이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결과적으로 자연과 인간은 물론 인간과 인간 간에도 비대칭적 불평등의 세계가 형성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인류는 다른 의미의 동물로 변해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5년 7월 20일 요미우리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신이치는 "포스트모던화된 현대의 인간들은 점점 동물처럼 변해가고 있다고들 한다. 그런 경우의 동물이란 '가축화된 동물'을 뜻하므로, 결국 인간의 삶은 점점 가축의 삶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교육이나 미디어나 가정환경을 통해, 우리의 감각이나 사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정한 관리 수준에 맞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감각이나 사고가 '야생'의 상태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중략)"면서 신화의 시대에 간직했던 야생의 사고를 회복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신이치는 자신의 '야생적 사고' 개념은 그의 사상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개념을 얻은 것으로 고백하고 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일반적으로 서구인들이 비문명화된 아프리카나 남미의 원주민들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신화적인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에 미개인으로 분류해 왔지만 주술 같은 다양한 방식의 표현 밑에 깔려 있는 인간사고의 유형을 보여줌으로서 문명인과 미개인이 결코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와 기독교, 지구를 죽음의 행성으로 만들어
야생 즉 '날 것'의 사고는 형이상학과 추상화된 이론을 사용하는 현대인들과는 달리 자연과 사물을 객관화시키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살았던 원주민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레비 스트로스는 그의 책 <야생의 사고>에서 문명인과 미개인의 사고는 사물을 범주화하고 그것을 추상화하는 방법과 관심의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현대인들의 편견과 과거 식민통치를 정당화했던 서구인들의 관점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신이치는 레비 스트로스의 사상을 발전시켜 유일신 종교와 서구사회에 대한 비판을 추가하고 있다. 그는 '일신교'와 '국민국가', '자본주의'와 '과학'이라는 각각의 체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세계를 착취하고 유린한 곳이 서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이러한 동형의 체계들이 전면적으로 확대된 것이 글로벌리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신이치는 오래전 인류가 이러한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전면적으로 발동하는 것을 막아왔으나 이를 최초로 돌파한 것이 일신교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공동경전 중에 하나인 창세기의 기본사상이 '자연을 정복하라'고 되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탄생과 죽음, 심판이라는 직선적 세계관을 가진 유일신교와 달리 인간이 축생이나 미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순환적 윤회사상을 통해 생명존중사상을 펼치고 있는 불교야 말로 '날 것(야생)'의 사고를 간직한 유일한 현대종교라고 신이치는 주장하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차별적으로 억압하는 유일신 종교로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신이 곧 자연'이라고 주장했던 스피노자의 사상으로 돌아가야 그나마 유일신 종교에게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아바타>는 심오한 통찰력과 영감을 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자본주의와 유일신 종교가 전 지구를 죽음의 행성으로 만들어 버린 오늘날 대중들에게 자연이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바티칸이나 개신교 일각의 비판은 부당한 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아바타>를 본 천만 명에 달하는 한국의 영화관객들에게 뭔가 의미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 역시 무리라는 생각이다.
그들은 영화관을 나오는 즉시 <아바타>의 내용은 잊어버리고 자본주의의 아이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의미 있는 것이라도 물신의 개념으로 해석한다. 그들에게 <아바타>는 환경적 주제와 첨단 기술을 솜씨있게 버무린 잘 만들어진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 자연과 인간을 동시에 파멸시키는 4대강과 용산같은 재개발 현장에 가해지는 현 정부의 악행에 눈감고 오히려 높은 지지를 보내는 그들에게 <아바타>, 특히 3D로 보는 <아바타>는 고급 사치에 불과하다. 여전히 현실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아바타>가 주는 교훈이라면 교훈일 것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적 신드롬을 낳고 있다. 한국과 중국, 홍콩 등 재개발 압력에 시달리는 나라 서민들은 자신들 처지가 판도라 행성 원주민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판도라 행성 원주민들은 자원을 얻기 위해 강력한 살상무기로 무장한 지구인들에게 쫒긴다.
영화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부시 정권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과 영화 내용이 일치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판도라 행성 신목(神木) 아래에 있는 언옵타늄을 얻기 위해 대기업이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이나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체니 같은 미국 수뇌부가 석유회사나 군수업체 출신이었던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 영화 <아파타>의 한 장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바티칸과 개신교 일부에서는 범신론 또는 애니미즘을 부추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 20세기 폭스사
이러한 논란과 함께 <아바타>의 이탈리아 개봉을 앞둔 지난 13일 로마 교황청도 <아바타>논쟁에 끼어들었다.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 '바티칸 라디오'는 이 영화가 볼만한 영상 효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극단적으로 단순화됐으며 종교 대신 "자연 숭배를 부추기는 현대의 신조들과 교감하고 있다"고 혹평을 퍼부었다. 또한 "생태계를 새 천년 종교로 변모시키는 모든 유사 교리를 교묘하게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자연을 '새로운 신'으로 만들 위험에 대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평소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일 제43차 평화의 날 교서를 통해 "신이 우리에게 주신 땅과 자연자원을 돌보지 않고 철저히 착취하는 데서 비롯되는 위협은 인간 사이의 잔학행위 못지 않게 우려스럽다"면서 "인류는 인류와 환경 사이의 약속을 새롭게 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황의 이러한 견해는 일반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며 <아바타>에 대한 교황청의 비판은 <아바타>를 통해 범신론이나 자연숭배경향이 강한 뉴에이지 문화가 더욱 확산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의 표시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영혼을 지닌 판도라 행성의 모든 생명체들과 교감을 나누며 살아가는 나비족의 삶과 영화후반부에 강렬하게 묘사되는 여신 '에이와' 숭배 의식이 가톨릭 전통신앙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바타>에 대한 교황청의 비판은 교인수 10억을 헤아리는 세계 최대 종교기구로서의 여유와 넉넉함과는 거리가 먼 매우 편협한 것으로 자신들의 교리를 타자에게 완력으로 강요하려는 왜소한 종파주의 집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황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개신교 복음주의자들도 <아바타>는 자연이 하느님을 대체하는 범신론적 견해를 펼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 신앙과 어긋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고대인들, 자연과 일치된 세계관으로 동물이나 약자 배려
종교계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아바타>는 어떤 측면에서는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흥행감독이 평생 그가 추구해온 첨단 디지털 기술을 통한 영화제작방식을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라는 평범한 주제에 접목시킨 속류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에 불과할 수 있다. 실제로 백인 주인공이 원주민들을 구원하는 내용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백인 메시아 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고 정령신앙(애니미즘)을 토대로 자연보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같은 만화영화(애니메이션)의 기본골격과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여러 비판과 논란에도 <아바타>에게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신화를 대중적인 방식으로 되살렸다는 점이다. 영화에 나타난 것처럼 나비족은 동식물을 포함 모든 존재들과 유기적 관계는 물론 영적 소통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기존 판타지 영화와는 다른 진일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비족의 생활방식은 오늘날 유대교나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유일신 종교가 거세해버린 매우 오래된 신화시대의 삶과 유사하다.
신이치는 다섯 권으로 된 <카이에 소바주>시리즈를 통해 인간과 자연 저너머의 초월적이고 압도적인 유일신 체계를 만들어낸 유대-기독교 시대가 등장하고 상품경제가 보편화되면서 인류는 자연을 생명의 원천이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결과적으로 자연과 인간은 물론 인간과 인간 간에도 비대칭적 불평등의 세계가 형성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인류는 다른 의미의 동물로 변해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5년 7월 20일 요미우리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신이치는 "포스트모던화된 현대의 인간들은 점점 동물처럼 변해가고 있다고들 한다. 그런 경우의 동물이란 '가축화된 동물'을 뜻하므로, 결국 인간의 삶은 점점 가축의 삶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교육이나 미디어나 가정환경을 통해, 우리의 감각이나 사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정한 관리 수준에 맞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감각이나 사고가 '야생'의 상태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중략)"면서 신화의 시대에 간직했던 야생의 사고를 회복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신이치는 자신의 '야생적 사고' 개념은 그의 사상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개념을 얻은 것으로 고백하고 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일반적으로 서구인들이 비문명화된 아프리카나 남미의 원주민들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신화적인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에 미개인으로 분류해 왔지만 주술 같은 다양한 방식의 표현 밑에 깔려 있는 인간사고의 유형을 보여줌으로서 문명인과 미개인이 결코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와 기독교, 지구를 죽음의 행성으로 만들어
야생 즉 '날 것'의 사고는 형이상학과 추상화된 이론을 사용하는 현대인들과는 달리 자연과 사물을 객관화시키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살았던 원주민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레비 스트로스는 그의 책 <야생의 사고>에서 문명인과 미개인의 사고는 사물을 범주화하고 그것을 추상화하는 방법과 관심의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현대인들의 편견과 과거 식민통치를 정당화했던 서구인들의 관점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신이치는 레비 스트로스의 사상을 발전시켜 유일신 종교와 서구사회에 대한 비판을 추가하고 있다. 그는 '일신교'와 '국민국가', '자본주의'와 '과학'이라는 각각의 체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세계를 착취하고 유린한 곳이 서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이러한 동형의 체계들이 전면적으로 확대된 것이 글로벌리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신이치는 오래전 인류가 이러한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전면적으로 발동하는 것을 막아왔으나 이를 최초로 돌파한 것이 일신교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공동경전 중에 하나인 창세기의 기본사상이 '자연을 정복하라'고 되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탄생과 죽음, 심판이라는 직선적 세계관을 가진 유일신교와 달리 인간이 축생이나 미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순환적 윤회사상을 통해 생명존중사상을 펼치고 있는 불교야 말로 '날 것(야생)'의 사고를 간직한 유일한 현대종교라고 신이치는 주장하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차별적으로 억압하는 유일신 종교로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신이 곧 자연'이라고 주장했던 스피노자의 사상으로 돌아가야 그나마 유일신 종교에게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아바타>는 심오한 통찰력과 영감을 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자본주의와 유일신 종교가 전 지구를 죽음의 행성으로 만들어 버린 오늘날 대중들에게 자연이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바티칸이나 개신교 일각의 비판은 부당한 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아바타>를 본 천만 명에 달하는 한국의 영화관객들에게 뭔가 의미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 역시 무리라는 생각이다.
그들은 영화관을 나오는 즉시 <아바타>의 내용은 잊어버리고 자본주의의 아이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의미 있는 것이라도 물신의 개념으로 해석한다. 그들에게 <아바타>는 환경적 주제와 첨단 기술을 솜씨있게 버무린 잘 만들어진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 자연과 인간을 동시에 파멸시키는 4대강과 용산같은 재개발 현장에 가해지는 현 정부의 악행에 눈감고 오히려 높은 지지를 보내는 그들에게 <아바타>, 특히 3D로 보는 <아바타>는 고급 사치에 불과하다. 여전히 현실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아바타>가 주는 교훈이라면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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