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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눈 오는 게 골칫거리 됐을까

[정명희의 냇물아 흘러라(3)] 눈온 뒤 도시 풍경

등록|2010.01.19 12:00 수정|2010.01.19 12:00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오며 "엄마, 눈 와, 펄펄" 한다. "우와, 우와, 눈 온다" 하며 아이는 마루에서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눈을' 뿌려 주는 것처럼 손을 너풀대며 뛰어다닌다.

신이 난 아이와 달리 며칠 전 내린 기상관측 이래의 최대폭설이 아직 다 녹지도 않았는데, 또 눈이라고 하니 또 지난 번처럼 폭설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여느 때보다 붐빌 지하철을 떠올리며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이 부지런히 눈을 쓸고 계시고 인도를 따라서는 염화칼슘이 미리 뿌려져 있다. 오늘 눈은 금방 그친다 하니 다행이다. 눈이 내리는 걸 좋아하는 건 강아지와 아이들 뿐 이라고 하던데, 요즘 보면 딱 그 말이 많다.


눈이 하루 종일 퍼붓던 새해첫날,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왔다. 우리 가족은 지난 달부터 시댁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 시댁은 지은 지 10년 안 되는 마포의 한 아파트촌이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그 시각까지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아저씨라기보다 할아버지에 가까운)들이 눈을 쓸고 계시는 거다.

이미 무릎 넘게 쌓인 눈은 쓸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삽으로 퍼내서 치워야 하는 중노동에 가까운 일로 보였다. 오밤중이라도 눈을 치워놓아야 다음날 입주민들의 출근길에 지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낮 동안에도 주민들이 같이 눈을 치우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집집마다 삽이라도 있을까 모르겠다 하신다.


▲ 새해 첫 출근날인 4일 새벽부터 서울시내에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마포구 상암동에서 한 직장인이 자전거를 끌고 눈 쌓인 도로를 건너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 권우성



다음 날 아침, 차도의 눈들은 이미 치워져 있고 인도에도 사람들이 다닐 만한 길이 나 있다. 열 몇개의 동이 넘는 이 아파트 단지의 눈을 몇 분 안 되는 경비 아저씨들이 결국 다 치우신 거다. 주말이 아닌 바에야 같이 눈을 치울 형편도 아니었지만, 경비 아저씨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내내 가시지 않는다.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은 며칠 동안의 출근길에도 내내 그랬는데, 지하철이나 이런 저런 일로 들르게 되는 건물들에서도 청소하시고 경비서는 분들은 모두 나와서 눈을 쓸고 바닥을 닦고 계셨다.



눈 온 다음날부터 서울 곳곳엔 제설차량들이 분주히 오갔다. 트럭이란 트럭은 전부 다 눈을 실어 나르는 듯했다. 언젠가부터 서울의 길엔 딱 인도와 차도밖에 없다. 사람들이 편히 다니기에도 힘든 인도에, 또 차가 다녀야 할 길에 눈을 쌓아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눈은 계속 어딘가로 실어 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길에 쌓아놓는 것도 문제가 된다. 흙 위에 쌓인 눈은 녹으면 자연스럽게 흙으로 물기가 스며들면서 땅이 얼더라도 빙판 수준이 되진 않지만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뒤덥힌 길바닥에선 눈이 녹으면 바로 빙판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을 실어다 어디에 쌓아두어야 하나? 도로 위의 눈은 도로에 있던 각종 오염물질들이 뒤섞여있어 그 자체가 오염덩어리다. 주로 강변에다 눈을 쌓아두게 되는데 눈이 녹아 강으로 흘러 들어가면 수질오염이 뻔하다. 그나마 맨땅이 좀 나은데, 알다시피 대도시엔 그런 땅을 찾아보기 어렵다.


눈이 오는 동안 내내 뿌려댄 가장 강력한 제설제, 염화칼슘도 문제다. 올해 염화칼슘 사용량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염화칼슘이 섞인 눈이 녹고 나서 그 물이 하천이나 호수로 흘러들면 수질오염을 일으킬 거고, 도로에 뿌려진 염화칼슘은 주변 가로수를 말라 죽게 할 수도 있다. 분말로 된 염화칼슘은 사람들의 기관지에도 무리를 준다고도 한다.


이래저래 눈이 와서 불편한 것 투성이다. 이러니 눈이 온다고 좋아하는 건 아이들과 강아지뿐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게 아닐까? 언제부터 이렇게 자연의 자연스런 현상이 우리의 생활을 불편하게만 하는 골칫거리가 되었을까?


그러나 실은 이 모든 불평불만이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서가 아니라, 자연을 거스르며 살기 때문에 생기는 도시와 도시인들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폭설이 쏟아진 날을 하루이틀 정도 쉬는 날로만 한다면, 눈 치우는 일을 고용된 몇 분의 중노동으로 돌리지 않아도 되고, 교통지옥이 일어날 일도 없다. 눈이 쌓였다 절로 녹을 수 있는 진짜 땅이 도시에도 있다면 빙판을 염려해 무리하게 눈을 녹일 일도 없을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자연이 우리에게 겨울을 겨울답게 보내라는 선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른들도 눈이 온다고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정명희님은 녹색연합 정책팀장입니다. 이 기사는 ilabor.rog에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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