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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우화] 삐욜라 숲의 고양이들 1

등록|2010.01.19 14:42 수정|2010.01.19 14:42
1.
쨍.
햇살이 유리처럼 빛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돌멩이에 반사된 해님의 분신들은 삐욜라 숲을 구석구석 환하게 해 주었다.
적어도 귀엽고 작은 고양이 미리를 빼고는 그랬다.
미리는 계속되는 고통을 참으면서도 꼭꼭 숨기고 있었다. 결코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돌멩이병.
가슴에 돌멩이 하나가 턱 얹힌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 병은 무서웠다.
처음에는 그저 가슴이 답답하다고만 느끼는 정도로 시작하기에 대부분 고양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조금씩 고통을 호소하다 세상과 작별을 하는 고양이들이 늘어났다.

삐욜라 숲에는 불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돌멩이병은 삐욜라 숲에 사는 고양이들에게 성난 불처럼 번져갔다.
여름 내내 폭우가 쏟아지던 때도 견디며 살아남은 고양이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돌멩이 같은 하찮은 것이 병이라는 이름으로 숲을 덮쳤다.
돌멩이는 피할 수 있지만 돌멩이병은 피할 수 없었다.

돌팔이 의사.
미리는 서슴지 않고 망치를 그렇게 불렀다.
아직도 여름 때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다. 여름 홍수가 막 끝났을 때였다.
막내 미트가 콧물에 기침까지 해대었다.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졌다.
미리는 미트를 데리고 의사를 찾았다.

삐욜라숲에는 딱 한 마리의 의사 고양이가 있었다.
망치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지식으로 주변 과일이나 약초를 사용해 치료했다.
그러나 그의 처방을 믿는 고양이들은 별로 없었다. 어떤 고양이들은 그를 돌팔이 의사라고 놀려대기까지 했다.
그의 치료를 받은 고양이는 대부분 나았다. 그러나 그들은 잠잠했다.
다만 빨리 낫지 않았거나 더 나빠지는 것을 경험한  몇몇 고양이는 망치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좋은 이야기보다는 나쁜 이야기가 빨리 돌기 마련이이서 망치는 그의 노력에 비해 좋은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망치는 배시시 웃으면서 막 익기 시작한 산딸기를 한 웅큼 건네주었다.
"이거면 금방 나을 거예요."
"이게 약인가요?"
"예. 아주 훌륭한 약이랍니다.
제가 구한 이 산딸기는 조금 다른 것이긴 하지만,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산딸기를 먹어도 효과가 있을 거예요.
혹시 증세가 좋아지지 않으면 다시 오세요. 제가 약을 조금 더 드릴게요."

그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미리는 허탈한 웃음에 이어 화가 났다. 
세상에 어디면 뛰어가서 구할 수 있는 산딸기가 약이라니.
망치가 조금 다른 산딸기라고 했지만 미리는 밀치고 나와 버렸다.

"가자!" 
미리는 걸음을 서둘렀다.
이런 돌팔이 의사에게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이 억울할 뿐이었다.
진기한 약초나 신비한 열매를 기대했던 미리는 화가 단단히 났다.
다행히 아들의 콧물은 며칠 가지 않아 이내 멎었다.
그래서 돌팔이 의사라는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약이란 게 그저 흔하디 흔한 산딸기라니. 속았다는 기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졌다.

"싫어."
미리는 딱 잘라 말했다.
아픈 것이 고통스럽긴 했지만 망치에게 가서 진찰을 받으라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친구 수아는 그런 미리를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 마음 잘 알아. 하지만 망치는 결코 돌팔이 의사가 아냐."
"그만 둬.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미리는 말을 잘랐다.

부모님으로부터 망치에 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망치는 그의 부친인 모츠로부터 모든 의학적 지식을 전수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어릴 때부터 병원놀이를 하며 아픈 고양이들을 잘 다루었다고 했다.
망치가 큰 인물이 될 거라며 칭찬이 자자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가자."
미리는 힘 없이 친구 수아에게 말했다.
고양이들은 볼 일을 보고 나면 다른 고양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덤불로 잘 덮는다.
그런데 어제 볼 일을 보고 나서 땅에 묻다가 미리는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아주 심각한 증세임에는 틀림없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미리는 친구 수아를 불렀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가겠어."
"그래. 내가 함께 가줄게. 너무 걱정하지 말어."

미리는 천천히 걸었다.
수아도 미리의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만약에 말야."
미리가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죽으면 내 새끼들을 돌봐줄 수 있지?"
수아는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대답해 줘. 안 그러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미리는 아예 주저 앉아 버렸다. 다리에 힘이 빠질 만도 했다.

"걱정 마. 내 새끼들처럼 돌봐줄 게. 이제 됐지?"
미리는 겨우겨우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돌멩이병이겠지?"
수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덧붙이는 글 예스24 작가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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