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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지주의, 기독교와 공존할까

[서평] 일레인 페이절스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등록|2010.01.19 16:03 수정|2010.01.19 16:03

▲ 일레인 페이절스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 알라딘

먼저 이 책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를 덮으면서, 필자는 저자의 이름 '일레인 페이절스'를 메모해 두었다. 그녀의 다른 책들도 만나고 싶어서이다. 처음 표지는 음산한 느낌이 든다. 이와 비슷한 제목과 표지로 '낚인'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근거 없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리고 필자는 '영지주의'는 기독교 '이단'이라는 것을 교회사 책을 읽고 알고 있는 터라,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내심 호기심 반, 긴장 반이었다.

사실 기독교에 몸담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영지주의'란 말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교회나 성당에 다닌다손 치더라도 '영지주의'란 단어 자체를 아예 들어본 적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더더우기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단' 얘기라면 들을 필요도 없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영지주의'는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 하나로 통일하여 말하기는 어렵지만,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했던 종파의 하나로 기독교와 다양한 지역의 이교 교리(그리스, 이집트 등)가 혼합된 모습을 보였다. 이원론, 구원 등의 문제에 있어 정통 기독교와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며 이단이라 비난 받아 3세기경 쇠퇴했으나 그 후에도 다양한 종파의 교리와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며 '영지주의'에 대한 저자의 깊이와 넓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책은 '영지주의'에 대한 종교, 신화 연구서라기 보다는 '영지주의'가 기존 주류교회와 경쟁하며 어떻게 도태되어 가는가를 보여주는 정치사회적 책이다. 거칠지만 간단하게 저자가 말한 '영지주의'의 핵심을 정리하면, 기독교 진리에는 맹목적인 믿음의 단계가 있고, 깨달음으로 저절로 아는 단계가 있는데 후자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비밀스레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밀스런 독특한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선불교의 스승 제자 간에 전승되는 '깨달음'과 '선문답'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영지주의'는 개인의 깨달음과 각 교회의 자발성을 옹호하였다. 이에 반해 주류의 기독교인들은 이미 교회 제도를 마련하고, 나중에는 로마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었다. 로마황제의 후원으로 명령계통이 일원화된 '가톨릭'이 정립되면서, 이에 반대한 '영지주의'는 '이단'시 되어 탄압받고 사라져 갔다. 저자에 의하면 초대 교회는 "자신들을 '정통파', 반대세력을 '이단자'로 규정했다. 다음으로 그들의 승리가 역사적 필연이었으며, 혹은 종교 용어를 빌리자면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는 점을 적어도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부각시켰다"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의 주장 중에 빠뜨려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예수가 죽고 10년에서 20년이 흐른 뒤 지역 기독교 집단에서 여자들이 지도층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자들은 예언자, 교사, 전도사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서기 200년부터 여자들이 정통파 교회 안에서 예언자, 사제 기타 성직자의 역할을 맡았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여성에 관대했던 예수사후 얼마간을 제외하고, 가부장적인 시각을 가진 남성 주교, 사제들은 여성의 성직진출을 막았다. 오늘의 시각으로 볼 때 여성권익의 후퇴는 가부장적으로 제도화된 교회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페이절스의 '영지주의' 재발견은 얼마전부터 두 가지 점에서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첫번째로 먼저는 학문분야에서의 '영지주의'의 르네상스이다. 기독교 내부에서는 20세기 후반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의 정치신학이 풍미하였다.

이제는 이념대결의 시대가 지나고 여성신학, 생태신학, 종교다원주의가 대세다. 여기서 '타종교와의 대화'가 중시되면서, 특히 동양 종교 그 중에서도 (선)불교에 대한 서구 기독인들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 과정에서 초기 기독교 이단이라 불리던 '영지주의'에 대한 재발견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정통기독교에서는 가짜성경으로 보는 '도마복음' 등의 1945년에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들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고조되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올 김용옥이 대중을 겨냥한 책 <기독교성서의 이해> 등을 통해 영지주의를 소개하고 있다.

'영지주의' 유행은 두번째로 고대의 '영지주의'를 오늘에 '부활'시키려는 종교운동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기존 기독교에도 '신비주의'나 '뉴에이지'란 이름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극단적으로 예수는 존재하지 않은 교회의 조작이며, 예수의 부활을 신화로 본 '영지주의'를 정통으로 보고 주류기독교를 이단으로 보는 신흥종파가 등장했다. 이들은 '영지주의' 진리를 오늘에 되살림으로써 새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영지주의' 운동이 21세기 역사의 어떤 흔적을 남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기존 기독교는 이전과 같이 '새로운 영지주의'에 완승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제 3의 길도 가능하다. 둘이 서로 흡수되는 게 아니고 공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현재 불교와 기독교가 불안하지만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한 종교가 국가나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다종교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많은 나라에서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채택하고 있고,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다. 그래서 '영지주의'의 존속 가능성은 크다고 점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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