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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연쇄살인] 북한의 인기곡 <그 겨울의 찻집>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 -51회- '남북대화'

등록|2010.01.20 20:48 수정|2010.01.21 09:57
김인철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뭔가를 깊이 생각하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영파에 가면 누가 있을까요?"
"최소한 중간책은 있지 않겠어?"
"중간책이 있다면 최고책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뿐만 아니라 필경 옥상옥의 범인도 있으리라는 감이 들어."

"옥상옥의 범인이라는 말이 머리를 치는군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정말 그렇다면 이 범죄에는 참혹한 연쇄살인과 기만적인 정치 테러가 함께 들어 있는 셈입니다."
"일단 영파에 가면 뭔가 단서가 잡히겠지."

상해 푸동국제공항에서 내린 네 사람은 구내식당에서 급히 점심을 먹었다. 푸동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유천일과 안동준은 해외여행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작이 굼떠 조수경의 조바심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들은 쾌속선의 일등실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파도가 거칠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더니 급기야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유천일이 조수경에게 말을 건넸다. 평소 말수가 적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그가 먼저 말을 붙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불행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북남이 합작하여 일을 하니 통일된 기분이 듭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조 총경님이나 김 경감을 알게 되면서 남조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겼습니다."
"저도 막상 평양의 바람을 직접 쏘이게 되니 북한에 대해 지니고 있던 경직된 생각이 많이 풀어졌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주민들이 순박할 수 있는지 부럽기도 했습니다."

"부럽다니요? 한 동포인데."
"맞습니다. 흡족합니다."  
"남조선은 경제가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하더군요?"
"통계 수치로는 그런데 아직도 어려운 면이 많습니다."

유천일은 천정을 한 번 보더니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저는 남조선 가수 조용필 씨의 공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 그랬던가요?"
"몇 년 되었습니다만 아무튼 정주영체육관에서 성황리에 공연했습니다."

유천일은 조용필의 공연이 평양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조용필은 이미 북한 주민들 사이에 많이 알려져 있는 가수라고 그는 말했다. 관람권을 구하려는 시민들이 많아 행사를 주최한 문화성 사람들이 곤란을 겪었다고 그는 말했다. 암표가 30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고 했다.

유천일은, 젊은이들이 "조용필이다, 조용필이다!"라고 달려들다가 어른들에게 주의를 들었다고 말했다.

"조용필 선생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조용필씨라고 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수경은 웃음을 머금으며 유천일의 말을 흥미롭게 들었다.

유천일은, 관람객들은 사전에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박수를 세게 쳐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성의 없이 쳐서도 안 된다. 점잖게 행동하다 와야 한다는 내용의 교육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노래를 들으셨습니까?"

유천일은 조용필의 노래를 잘 알고 있었다. <허공>은 북한 주민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곡이라고 했다. 조용필은 <친구여> <모나리자>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을 불렀다고 했다.

"선생님은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세요?"

유천일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저는 <그 겨울의 찻집>을 좋아합니다."

유천일은 북한에는 쉰 목소리를 내는 가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맑은 음만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오히려 그가 말했다.

조수경은 그의 말에 진정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남과 북은 그동안 많은 오해를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유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느 사회든지 단점과 장점이 있는 법인데, 우리 북조선 사람들은 남조선의 단점만을 가지고 전부로 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그것은 조수경이 하려고 했던 말이었다.

유천일은 가방에서 보드카 한 병과 종이컵을 꺼내더니 세 사람에게 권했다. 보드카를 두세 잔씩 마신 네 사람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각자 휴식을 취했다. 선실 창유리에서는 빗줄기가 부산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북 대화

중국어로 닝보우라고 발음되는 영파는 인구 600만이 넘는 대도시였다. 영파는 융장강과 위아호강의 합류점에 있는 하항이다. 이 하항을 빠져 나가면 황해인데, 이곳에서 북으로 가면 상해, 남으로 가면 홍콩이고 동으로 가면 북한의 황해도거나 남한의 경기도였다.

조수경 일행은 저우산 군도(群島)라고 불리는 다도해 지역을 통과했다. 비는 갰지만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불과 1km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끝없이 나타나는 섬 자락을 끼고 하항 근해를 거슬러 올라갔다. 저우산 군도는 무인도들의 밀집지였다. 무려 4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한정식 식탁의 반찬처럼 놓여 있는 형세였다.

그들은 저녁 무렵 영파 선착장에 닿았다. 안동준은 중국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그는 네 사람 중 중국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것 같았다.

"중국에서 경제가 가장 활성화되어 있으며 조선 사람들이 북남 가리지 않고 뒤섞여 사는 곳입니다."

그들이 찾아간 동항대호텔은 풍광이 절묘한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무수한 섬들은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안개 때문에 부단히 출몰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시시각각으로 전경(前景)이 변화하는 곳이었다.

주철식이 써 놓은 대로 지하 1층에는 양성반점이 있었다. 정통 광동요리 음식점이라고 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음식점의 영업시간이 지난 후였다. 방을 잡아 여장을 푼 그들은 유천일의 방에 모여 간단히 수사 사항을 점검했다. 그들은 본격적인 작업은 내일부터 벌이기로 하고 오늘 밤은 영파 시내로 나가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네 사람은 풀코스 중국 요리를 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조수경은 자신이 추정하는 범인의 정체에 대하여 길게 설명했다. 유천일과 안동준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미리 들은 바도 있었지만 그들은 남북 정세에 어두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조수경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진다이를 아십니까?"

안동준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유천일은 그를 안다고 했다.

"진다이는 소련의 첩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KGB에서 훈련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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