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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나비, 조강지처 버리고 떼돈 벌겠다?

초기모델 업그레이드 일방 중단선언..."얄팍한 상술"

등록|2010.01.25 14:33 수정|2010.01.25 14:33

▲ 아이나비가 지도 업그레이드 중단을 선언한 네비게이션 단말기 가운데 하나인 PC ePhone II ⓒ 사이버뱅크

요즘엔 내비게이션 없는 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인데요, 저 같은 '길치'에게는 정말 필요하고 고마운 기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초기의 '내비'는 지금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길을 찾지 못했지만 내비 없이는 길을 나설 생각도 못했던 저에게 정말 소중한 보물이었죠. 지금 나오는 가장 최신사양보다 훨씬 비쌌던 내비를 차를 사기 전에 장만했습니다.

내비라는 게 지도 소프트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여서 지도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정확하지 않은 지도를 믿고 따라갔다가 최악의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구요.

그런데 제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나비'라는 내비게이션은 1월초 회사에서 업그레이드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현행 법규상 내비게이션 내용연한은 5년인데 이는 하드웨어 단말기에 해당되는 것이지 지도 소프트웨어에는 적용되지 않으니 업그레이드를 중단해도 법적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요. 

업체 측에서 주장하는 업그레이드 중단 이유는 하드웨어가 구형이라 업데이트된 지도가 원만히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3개월에 한 번씩 지도를 업데이트 해주는데 그동안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길이 얼마나 될까요? 명목상으로는 고객의 하드웨어를 탓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자체 단말기를 만들지 않던 초창기 시절의 아이나비는 소프트웨어만 개발하여 여러 단말기 업체에 팔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단말기 기종이 수백 개가 되었고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기종별로 각각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여러 단말기에 지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것이 돈벌이가 됐지만 결국 그게 자충수가 되었습니다.

각각의 단말기 특성에 맞게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는 감당하기 싫어진 거죠. 초기 모델 고객들은 비난을 감수하고 버리는 것이 기업이익에 더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겁니다. 그 희생물이 초기부터 아이나비를 비싼 가격에 사서 쓴 충성고객이구요.

특별보상판매 해 줄게, 고맙지?

▲ 아이나비는 지난 1월 5일 '업그레이드 서비스 종료 단말 보상판매 시행 안내'를 웹사이트 공지사항에 띄웠다. ⓒ 아이나비


아이나비는 초기 모델을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지도 업그레이드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특별보상판매라는 명목으로 시중가와 별 다를 게 없는 금액으로 단말기로 교체해준다고 합니다. 보상판매 금액은 최소 26만 원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잘 쓰고 있는 내비게이션 단말기와 메모리카드 모두 반납하고 26만 원을 내야 다시 내비게이션을 쓸 수 있게 해준다는 겁니다.

특별보상판매에 해당하는 기종들은 4~5년 전 구매 당시 지금 아이나비 최고가 기종보다도 더 많은 돈을 주고 산 것들입니다. "평생 무료 업그레이드"라는 광고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평생 무료 업그레이드"를 표방하지 않았다면 많은 고객들이 아이나비를 구매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런데 아이나비는 자신들이 "평생 무료 업그레이드"라고 말한 적 없다고 딱 잡아뗍니다. "무료 업그레이드"라고 했지 "평생 무료 업그레이드"라고 한 적은 없다면서요. 그러면서 판매자들이 제품 판매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아이나비의 의사와 상관없이 "평생 무료 업그레이드" 한다고 광고한 탓이라고 하네요.

전자제품을 사용하고 안 하고는 고객이 선택할 일 아닙니까? 컴퓨터 성능이 느려서 바꾸고 안 바꾸고는 고객이 정하는 것이지 컴퓨터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좀 느린 거 참고, 고사양 프로그램 안 돌아가는 거 감안하면서 사용하는 사람은 계속 쓰는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꾸는거죠.

그런데 내비게이션은 다릅니다. 제품을 선택하기 전까지는 고객이 마음대로 고를 수가 있지만 일단 제품을 사고 나면 주종관계가 바뀝니다. 사용자는 내비게이션 업체에서 지도 업데이트를 충실히 잘 해주기만을 노심초사 바랄 수밖에 없죠. 어느 순간 업체에서 업데이트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 그 순간 내비게이션은 고철로 전락하고 마는 겁니다.

고장 나지도 않았는데 새 제품을 사야 한다니

아이나비는 일방적인 업그레이드 중단에 항의하는 고객 글을 웹사이트에서 삭제하거나 비공개 게시판으로 옮기고 있고 강하게 항의하는 고객에게는 별도로 전화를 걸어 개별적으로 보상판매 가격을 협상하는 등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업그레이드 중단을 선언하고 특별보상판매라는 명목으로 새 단말기 구매를 강요하는 것은 물건 하나 더 팔기 위한 얄팍한 상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존 고객에게서는 더 이상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으니 일부 항의가 있더라도 물갈이를 하겠다는 의도죠.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14인치 TV를 가지고 있습니다. 화면도 작고 화질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KBS가 쏘아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기에는 한계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KBS에서 14인치 TV로는 KBS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대로 시청할 수 없으니 전파를 쏘아줄 수 없다, 최소한 32인치 이상 되는 TV로 바꿔야 KBS를 볼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요? 아이나비의 초기 모델에 대한 지도 업그레이드 중단은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 하고 포기하면서 아이나비를 욕하고 떠나는 소비자도 봤고 항의글에 동조하는 의견을 달면서 끝까지 소비자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고객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일개 소비자의 힘은 너무 미약합니다. 항의글은 지워버리고 감춰버리면 그만이니까요.

50∼60만원이나 주고 전자제품 사서 고장나지도 않았는데 3~4년 쓰다가 버리고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제품을 사야 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요?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9-1)을 보면 내비게이션의 품질보증기간은 1년, 품목별 내용연수는 5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품질보증기간 경과 후 품목별 내용연수 기간 내에 하자 발생시에는 정액감가상각한 금액에 10%를 가산하여 환급해야 한다고 밝혀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무시하고 일방적 업그레이드 중단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내비도 내일 당장 고철이 되거나 비싼 MP3나 DMB 기계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아이나비의 다른 모델들도 언제 업그레이드 중단이라는 철퇴를 맞을지 모릅니다. 고객을 버리는 기업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아이나비'를 만드는 내비게이션 업체 팅크웨어는 최근 일부 저사양 단말기 지도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보상 판매를 실시했다.

팅크웨어 박상덕 팀장은 21일 전화 통화에서 "이번에 지도 업그레이드가 중단된 모델은 1999년에서 2007년까지 생산된 1세대 단말기 39종으로, 요즘 3세대 단말기와 비교해 CPU와 운영체제, 메모리 용량 등 성능이 많이 떨어진다"면서 "이미 지난해 초 공지하고 그동안 방법을 찾아봤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박 팀장은 "2004년 당시 지도 데이터는 256~512MB 메모리 용량에 맞춰 설계됐는데, 요즘 지도 용량은 3GB에 이른다"면서 "저사양 단말기에 맞춰 지도 용량을 줄이게 되면 지형 변화, 과속탐지기 감지 등 중요 정보가 빠지게 돼 원래 목적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팅크웨어 주장대로라면 디지털기기의 발달 속도에 따라 똑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에 박 팀장은 "업계에선 내비게이션의 사용 연한을 4년 정도로 보고 있지만 기술력으로 최대한 유지할 계획"이라면서 "이번에도 자체 생산 모델의 경우 4~5년 이상 최대한 유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해당 제품 판매 당시 '평생 무료 업그레이드'라고 홍보했다는 사용자들 지적에 대해 "우리 회사에서 그렇게 홍보한 적은 없고, 초기 일부 홈쇼핑에서 그런 식으로 광고한 듯하다"고 해명했다. / 김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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