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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웬수같은 자식, 마녀같은 엄마 (26)

등록|2010.01.21 15:39 수정|2010.01.21 15:48
대입 논술 시험을 채점하는 교수들이 흔히 하는 평가 중에 이런 게 있다.

- 학생들이 작성한 논술 시험 답안이 너무도 천편일률적이라 점수 주기가 어렵다.

학원에서 암기식으로 익힌 내용을 그대로 베껴서 모범 답안을 작성하기에, 몇몇 학생의 답안을 읽다 보면 그 내용이 그 내용이라는 것이다. 마치 한 선생에게서 세뇌 교육받은 것처럼 엇비슷하게 작성된 답안들을 수도 없이 읽고 채점하려다 보면 짜증이 날 때도 많다고 한다.

논술을 잘 하려면 평소에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들 한다. 논술 실력은 학원에 가서 배운다고 갑자기 느는 게 아니다. 평상시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책을 읽은 바탕도 없이 학원에 가서 반짝 수업을 통해 논술 실력을 키워보겠다는 것은 과도한 기대일 수밖에 없다. 심리적 위로를 위한 대책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학원 수업이 논술에 그다지 별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논술 학원에 보낸다. 이곳저곳에서 논술은 배워서 느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

논술을 잘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거의 없다. 누구나 다 알고들 있지만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읽게 만들 방법이 없는 것이다. 책이 없어서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게 아니다. 애가 어려서부터 무리를 해서라도 전집으로 책을 사대는 게 요즘 부모들의 모습이다. 책을 사 줘도 읽지 않는 데야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들 보고 책을 읽으라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책을 코앞에 들이대고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노래를 해대도 정작 당사자가 콧방귀도 안 뀌고 있는 데야 어쩌겠는가. 부모로서도 속이 뒤집힐 노릇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논술의 왕도가 책 읽기임을 부모들도 잘 알고 있지만, 아이가 책을 읽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 부모로서도 답답할 노릇이다. 그 답답함을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부모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학원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읽지도 않는 책을 쌓아놓고 끙끙대며 실갱이하다 결국 학원이라도 보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어찌 되었든 간에 논술 학원이니까 뭔 수를 써 주지 않겠는가 기대를 해 보는 것이다.

왜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아이들마다 타고난 적성이나 소질이 다르니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쩔 수 없다. 정말 그런가.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식으로 가볍게 단정지어질 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게다가 현실적으로는 논술이라는 시험이 눈앞에 있다. 타고난 팔자려니 생각하고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소질이나 성향을 타고나지만 그 타고난 것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니 책을 읽지 않는 아이의 행동을 타고난 것으로 돌릴 일만도 아니다. 타고난 성향도 있겠지만, 후천적인 습관도 무시할 수 없다. 책을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아이에게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 줄 것이냐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를 모방하면서 배운다.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라는 모델이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똑같이 따라하든 정반대로 행동하든 부모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지속적으로 잔소리를 해댄다. 이렇게 자꾸 얘기하면 좀 들어먹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영 딴판이다.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래서 부모는 미칠 지경이다.

아이가 영향을 받는 것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즉,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 부모의 말이 아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부모의 행동이 아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책 좀 읽으라고 하면서 TV 시청에 몰두하고 있는 엄마의 태도는 아이에게 엄마의 말에 대한 신빙성을 감소시킨다. 아이는 엄마의 말보다는 행동에 더 쉽게 동의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렇게 된 데는 부모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이가 태어나서 모방하는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부모 자신이 책읽기에 거의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그러한 부모의 행태를 무의식 중에 답습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살펴 볼 일이다. 부모로서 나는 얼마나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 주었는가 되짚어 보다 보면,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살림살이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책 읽을 틈이 어디 있느냐는 항변만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부모가 책을 읽는 것이다. 살림살이 하고 돈 버는 것보다 아이의 독서가 더 중요하다면 부모가 우선순위를 책에 두어야 할 것 아닌가. 책을 읽더라도 아이에게 눈치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면 아이도 엄마의 눈치에 부응하려 책을 읽을 것이고 이는 일종의 위장(읽는 척)에 그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아주 즐겁게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읽자. 아니 책읽기를 좋아해 보자. 아이의 논술 성적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아이와 그 책의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을 보니까 말이야 어쩌구 저쩌구... 자연스레 부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책의 내용들은 아이에게 간접 독서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아이의 사고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러한 부모의 행동은 아이에게 무의식적인 모방을 서서히 불러일으킨다. 아이 역시 책읽기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교육은 입(잔소리)으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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