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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해 달랬더니, 임금 포기하라고?

사업장 변경 요구에 임금포기 각서 요구하는 사장

등록|2010.01.21 16:31 수정|2010.01.21 17:22
인도네시아 출신 나비는 지난 성탄절에 성탄절 예배 참석 문제로 회사로부터 '무단결근이니, 임금에서 제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비는 회사가 최저임금도 지키지 않는다고 사장에게 시정을 요구하다가 이미 눈 밖에 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회사를 옮길 수도 없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외국인근로자의 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은 "근로계약이 만기되거나, 휴업·폐업 그 밖에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그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사업장의 근로조건이 근로계약조건과 상이한 경우, 근로조건 위반 등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 등으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근로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한하고 있어서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는 한 근무처 변경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비에게 사장은 "마지막달 급여를 포기하고, 노동부 진정이나 기타 민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약정하면 퇴사 처리를 해 주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나비는 사장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여기고, 지난 월요일에 노동부 안산고용지원센터를 찾아 상담을 했다.

고용지원센터 역시 사장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을 확인해 줬다. 담당 직원은 연필로 "미지급분(차액)에 대해 근로개선지도과에 진정 제기하여 지급받을 수 있음"이라고 적어주면서 근무처변경을 핑계로 마지막달 급여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사장의 요구가 부당함을 분명하게 지적해 줬다.

고용지원센터 안내미지급분(차액)에 대해 근로개선지도과에 진정 제기하여 지급받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 고기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은 여전히 똑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나비는 고용지원센터나 사장이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21일 모 단체에서 운영하는 '이주민통역지원센터'를 찾았다.

그런데 이주민통역지원센터에서는 나비에게 통역인을 통해 '임금포기 각서'를 작성하고 서명하게 하였다. 임금포기 각서는 통역인 외에 상담팀장이라는 사람을 증인으로 세워 작성되어 있었다. 이주민을 돕기 위해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기관에서 근로기준법이 금하고 있는 행위를 하며, 이주노동자인 나비의 권리를 묵살해 버린 것이었다.

임금 포기각서는 근로기준법이나 민법에서 강요에 의한 행위로 무효 또는 취소가 되는 사안이다. 이주민통역지원센터라면 응당 근무처변경을 사용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약점을 빌미로 임금포기를 강요하는 부당한 사실에 대해 지적했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노동자에게 임금포기 각서를 작성하고 사용자에게 제출하도록 한 사실은 해당 센터의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지난 18일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1조3448억원, 체불근로자수는 30만1000명으로 지난 2008년보다 체불금액은 40.6%, 체불근로자는 20.5%나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부는 내달 12일까지를 '체불임금 청산 집중지도기간'으로 운영키로 했다고 한다. 또한 임금체불 사업주의 명단공개를 위한 관련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임금체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업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방안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근로기준법상에 명시돼 있는 기본 사항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관련 기관들에 대한 교육과 감독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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