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분교에선 마을과 학교가 하나라고 말한다

[서평] <산골마을 작은 학교>(김은주·박경화·이혜영 지음)

등록|2010.01.22 11:17 수정|2010.01.22 11:17
"학교와 공동체는 하나지 둘이 아닙니다."

<산골마을 작은학교>(김은주·박경화·이혜영 지음)겉그림. ⓒ 소나무

도시 아파트든 산골짜기 마을이든 해와 달은 똑같이 뜨고 진다. 그 어디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은 어김없이 오고 간다. 큰 학교든 작은 학교든 학교는 지역 사회 아이들의 배움터이면서 동시에 지역 사회의 뿌리이기도 하다. 다른 걸 찾자면, 도시 학교는 학교와 마을이 눈에 띄게 구분되기 마련이지만 시골 학교 특히 분교란 이름을 지닌 '작은 학교'들은 학교와 마을은 그냥 하나라고 해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 오고 가는 소리를 따라 '작은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남긴 이야기를 담은 책인 <산골마을 작은학교>(소나무 펴냄)를 들추어본다. 2000년에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름으로 냈던 책을 2003년에 다시 낸 책이다. 그래서인지, 책에는 '소중한 뒷이야기'라는 이름 아래 각기 작은 글이 딸려 있다. 책 속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이제는 초등학교를 졸업했겠지만 그냥 그때 나이로 기억하련다. 그래서 여기서도 마치 지금 그 학교들이 그때 그대로 변함없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련다.

학교와 마을, 그곳 아이들은 어디서나 배우고 있었다

책에 담긴 학교는 모두 열 곳. 어느 분교는 없어졌다는 뒷이야기도 있고 어렵사리 학교를 지켜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학교와 마을 공동체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분교들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엄마 손을 잡고 달리기를 하던 내 초등학교 시절도 금세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에는 살포시 웃음 짓는 추억으로 누군가에는 못내 아린 추억으로 남아있을지 모를 열 곳 분교 이야기를 이렇게 또 한 사람이 읽어버렸다는 게 마냥 좋기만 한 일인지 모르겠다. 마을과 학교가 한 몸처럼 지냈을 '문 닫은' 학교를 보며 아쉬움과 미안함을 못내 감추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무런 사이도 아닌 내가 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이들이 있어 학교가 있고 학교가 있어 마을에 쉼 없는 생기가 돌고 그것이 다시 아이들을 지켜내는 힘이 되는 곳, 그곳은 분교다.

금산 건천분교, 태백 하사미분교, 죽변 화성분교, 봉화 남회룡분교, 단양 보발분교, 여주 주암분교, 제주 선인분교, 무주 부남분교, 강릉 부연분교, 남해 미남분교. 책에 담긴 순서대로 그 이름들을 빠짐없이 모두 불러주고 '작은 학교'요 '마을 학교'인 열 곳 분교를 사람들 마음 안에 무작정 담아본다. 그 분교들이 지금 어떤 모습이든지 학교와 마을이란 본래 하나라는 뜻을 지닌 모든 이들 마음 안에 말이다.

"저건 더덕이구요, 이건 당귀예요. 여긴 요건 취구요, 저쪽은 몽땅 엉겅퀴 밭이에요. 아, 여기 고사리 있다. 근데, 이건 아직 먹으면 안 돼요. 이 고사리는요, 아직 좀 더 커야 먹을 수 있어요. 저기 개미나리도 있다."(18쪽)

모르겠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더덕은 좀 들어 알고 가끔 보곤 하지만 당귀나 취는 좀체 그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떠오르지 않은 걸 보니 당귀나 취는 지금껏 실제로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근데, 초등학교 3학년 미림이는 그걸 마치 눈  앞에 있는 책을 그대로 읽어가듯이 막힘없이 술술 풀어낸다. 뭔가를 배우는 곳이 학교이긴 하지만 미림이가 사는 마을 곳곳 역시 학교이다. 마을과 학교, 미림에게는 다를 게 없는 셈이다. 하긴, 일곱 살이던 동생 유림이가 먼저 "언니, 이게 뭔지 알아? 엉겅구야, 엉겅구!"하면서 제 마을에 온 손님에게 살아있는 지식을 한껏 뽐냈을 정도이니 말이다. 당시 건천분교 학생은 5학년 시내와 3학년 미림이 단 둘. 미림이 동생 유림이가 가끔 아무 때나 끼어 '도둑공부'를 하기도 하고 달리기라도 할라 치면 유림이가 같이 뛰어주기도 해야 한단다.

봉화 남회룡분교 아이들은 책이 말하는 세상만 보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본 세상을 책에 담기도 한다. 3학년 수업 중에 김선국 선생님이 시냇물 소리를 흉내내보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 책에는 '졸졸졸'이라고 쓰여 있지만 누구는 '쉬~이' 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쏴아~쏴쏴' 하기도 하며 어떤 애는 '철벅 철벅' 하기도 한다. 마을에서 늘 들었을 소리를 다들 제 귀에 들린 대로 솔직하게 말한 것이다. 책은 아이들 웃음소리와 함께 더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선생님에게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마을 어디서나 아이들은 늘 배운다. 그리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기도 한다.

"부연마을 아이들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며 자연스럽게 커간다. 언니, 누나한테 노래도 배우고, 그림 그리는 것도 배우고, 산수 문제도 배우고, 몇 시쯤엔 조용히 하고 수업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배운다. 그것뿐이랴, 봄이면 어디서 진달래가 많이 피는지, 어느 개울에서 고기가 잘 잡히는지, 요놈이 독버섯인지 아닌지……. 도시 학교에 비추어 부족한 걸 일일이 대자면야 끝도 없겠지만 아이들은 모두 형제처럼 지내는 게 좋다고 했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은 사실은 나을 것도 없는 도시 학교의 여러 시설들을 아직 보지 못해서 그러는 건지도 몰랐다."(166쪽)

분교는 작다. 건물도 작을 수밖에 없고 학생 수 역시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모든 게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다. 마을 모든 게 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시골의 '작은 학교' 아이들은 다들 생생한 지식을 배우며 자란다. 어느 분교는 사라지고 또 어느 분교는 전보다 더 작아지지만 그래도 아이, 선생님, 마을 사람 누구랄 것도 없이 학교를 사랑한다. 분교는 그 자체로 마을이며 마을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산골마을 작은 학교>는 학교와 마을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보여준다. 열 곳 분교와 그 아이들, 지금은 다들 어찌 지내는지 괜히 궁금해진다.

마을과 학교는 하나, 내 입 안에도 조금씩 차오른다.
덧붙이는 글 <산골마을 작은학교> / 김은주·박경화·이혜영 지음 / 소나무 펴냄 / 2003
* 이 서평은 제 블로그(blog.ohmynews.com/eddang)에도 싣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