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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개혁 필요한 곳은 검찰

PD 수첩 재판 결과를 보고

등록|2010.01.22 10:13 수정|2010.01.22 15:36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한다는 생각, 어렵게 쌓아올린 우리의 민주주의가 무너져 간다는 생각, 이데올로기가 퇴색된 21세기임에도 아직 색깔론으로 세상을 도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 . 어제(1월 20일) MBC의 PD수첩 판결을 보고 내 머리를 스쳐지나간 생각의 단편들이다.

나는 먼저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행태가 마음에 걸렸다. 담당 판사뿐 아니라 대법원장에까지 물리력으로 위하하며 좌익판사 운운하는 것을 보고 불쾌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들의 행태는 배척되어야 마땅하다. 민주주의 국가는 삼권분립의 사회이고, 이 삼권(행정 입법 사법)은 상호 견제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정의(定義)이다.

자신들의 생각에 반(反)하는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법원 나아가 담당 판사의 집까지 찾아 가서 물리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동의받기 힘는 행동이다. 일부 극우 단체들의 집단행동은 마치 해방 정국에서의 이승만 독재 정권의 주구 백골단과 땃벌떼의 잔재를 보는 듯하다. 진정 국가의 안위를 염려한다면 상식에 근거하고 이성에 기초하는 냉철한 언행이 필요하다. 극우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을 위해서도 이러한 극단적 집단행동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1950년대 초반 미국에 한때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닥친 적이 있었다. 이 매카시 열풍은 몇 년 동안 미국을 의심과 불안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모든 사람을 코뮤니스트로 보게 하는 마력. 60여년이 지난 지금, 일련의 재판 결과로 불어오는 바람은 마치 매카시즘을 연상케 하고 있다. 극우 단체뿐만 아니라 보수언론 조중동 거기에 행정부와 의회의 보수 정치인들까지 한 목소리로 색깔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하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 악으로 규정하는 색안경을 끼고 있는 자들로 보인다.

최근 국민들의 관심을 끈 몇 개의 재판이 극우적 생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 반(反)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들이 발끈하고 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 무효,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무죄, 용산 참사 미공개 수사기록 공개 결정, 민노당 강기갑 대표 무죄,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무죄 판결, 여기에 이번 MBC PD수첩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까지. 이것은 국민의 다양한 욕구를 외면하고 그들의 보수 이념만 앞세워 일방통행하려고 하는 낡은 정치집단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이와 같은 몇 개의 재판 결과를 놓고 극우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색깔론으로 몰아가고 싶을 것이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가 한참 지났지만 색깔론은 아직도 게임을 쉽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방송의 민주화가 어떻게 색깔의 문제이겠으며, 또 사이버 공간을 통해 한 정부의 경제정책 비판에 그런 잣대가 유효하겠으며,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미공개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것이 이데올로기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가 어떻게 이념의 문제이겠는가! 분명히 밝히건대 이것은 민주와 반민주의 문제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삼권분립이다. 이번 PD수첩 무죄 판결을 두고 담당 재판관을 좌익 판사라며 욕들을 퍼붓고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세상의 가치 기준은 아주 많다. 좌(左)와 우(右)도 그것의 하나일 수는 있겠지만 모든 사건과 상황을 이것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권 들어 행정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의회도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눈치 보기에 바쁘다. 얼마 전 국회 회기 중, 입법부의 수장이라고 하는 국회의장이 의장석에서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호형호제하면서 30여분 전화 통화를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노동법 개정 등 여러 가지 민감한 사안으로 여야가 대치하고 있던 시점에서 일어난 일어어서 더 우려가 되었다. 이것이 대통령의 의회 장악의 한 장면처럼 머리에 와 박혔기 때문이다.

PD 수첩 담당자들의 무죄 판결을 두고 법원과 검찰이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는 것도 잘못된 시각이다. 검찰은 소송 절차로 그들의 입장을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재판 결과를 놓고 마음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법정 밖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법 질서를 문란케 하는 행동에 다름 아니다. 재판 결과를 두고 검찰총수라는 사람이 반발하는 모습은 그런 점에서 좋게 보이지 않는다. 굳이 따진다면 재판 결과를 두고 일어나는 제반 대립은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아니라 사법부와 행정부와의 갈등 문제이다. 아니 사법부를 한 축으로 하고 행정부(입법부는 행정부에 예속!)가 다른 한 축으로 하는 두 권력기관의 갈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삼권분립은 사법 행정 입법 삼권이 상호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때 본연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최근의 정부 여당의 예상과 다르게 나온 재판 결과는 삼권 분립의 견제 기능을 염두에 둘 때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어떻게 정권의 구미에 맞는 재판 결과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검찰은 법무부에 속하고 법무부는 행정부에 속해서 행정 수반 대통령의 명령 계통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재판 결과를 놓고 법원과 검찰의 갈등 양상으로 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기 쉽다. 만약 법원조차도 권력의 눈치를 보며 판결을 한다면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기 힘들게 된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을 보면 행정부와 의회 그리고 법원의 일부 정치집단들은 일방통행식의 재판을 요구하는 것 같다.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광우병이 염려되는 미국의 쇠고기 수입 문제는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촛불 집회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관심의 반영이다. 이 관심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나와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전 국민이 수입 쇠고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 국민들을 촛불 집회로 모이게 한 것이다. 이 집회에 PD 수첩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국민들이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데도 그렇게 많은 숫자가 모여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조능희 PD 수첩 책임 피디의 말은 인상적이다. "우리가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정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정권 하에서도 이 문제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한 우리는 문제를 제기하였을 것입니다." PD 수첩 담당자들은 자신들을 좌경으로 모는 것이 억울했을 것이고, 더욱이 반정부적 시각으로 보는 것에 큰 부담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국민 건강과 언론 자유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틀에서 PD 수첩을 방송하였는데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 검찰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의 검찰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 그들의 하는 액션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들은 군사 독재 시절 땐 불의한 권력의 시녀였다. 독재 정권 유지에 충실한 도구로 전락했던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가까이는 정권이 바뀌자마자 새 정권의 구미에 맞춰 알아서 긴 정치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가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나는 사법개혁이 필요한 곳이 법원보다도 검찰이라고 확신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정의에 입각한 법 집행이 되어야 하는 원칙 앞에 너무나 약한 우리의 검찰이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검찰 생리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면 그들이 발붙일 영역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검찰을 하이에나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PD 수첩으로 오랜 기간 고통을 겪은 당사자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그들이 정치 검찰과 같은 생각, 즉 권력에 대한 매력을 조금이라고 갖고 있었다면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다. 권력은 사람을 한없이 약하게 만든다. 사회운동으로 존경받던 인물들이 정의롭지 못한 권력의 맛을 본 후, 과거를 까맣게 잊고 극우의 행동가로 변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권력 앞에 갈대와도 같은 인간의 더러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국민에 대한 건강권 그리고 언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찬사를 보낸다. 그들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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