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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발에 달라붙는 김이 웬수여, 웬수"

겨울 한철 매생이 채취로 먹고 사는 전남 완도 화가마을

등록|2010.01.22 13:13 수정|2010.01.22 13:17

▲ 겨울철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우는 매생이. 이것은 물이 깨끗하고 바람과 물살이 세지 않는 따뜻한 곳에서만 자라는 해조류다. ⓒ 이돈삼


특유의 향과 감미로운 맛으로 미식가들을 사로잡는 해조류가 있다. 겨울철 남도에서만 나는 매생이가 그것. 파래과에 속하는 녹조식물인 매생이는 가늘고 부드러워 '실크 파래'로도 불린다.

이 매생이는 물이 깨끗하고 바람과 물살이 세지 않는 따뜻한 곳에서 산다. 환경오염에 특히 민감하다. 태풍으로 바닷물이 뒤집히거나 육지로부터 오염물질이 유입되면 생육이 떨어질 정도다. 엽체 길이는 대략 10∼30㎝, 굵기는 3㎜안팎으로 가늘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매생이는 발이 가늘고 부드러운 게 특징. 발이 가늘고 잡태가 섞이지 않은 게 최상품으로 꼽힌다. 수확해 다듬어 놓은 매생이는 마치 소녀의 단정한 뒷머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결이 곱고 매끄럽다.

매생이의 효능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감칠 맛 나는 구수함이 일품이다. 소화도 잘 돼 겨울철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하여 매생이 맛을 아는 미식가들은 해마다 이맘때를 손꼽아 기다린다. 한 번 먹어 본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찾는다.

▲ 채취해서 다듬어 놓은 매생이는 소녀의 단정한 머리결처럼 곱고 매끄럽다. ⓒ 김준


▲ 조근봉 화가마을 어촌계장이 채취한 매생이를 깨끗한 물에 헹궈 물기를 빼고 있다. ⓒ 이돈삼


매생이는 철분과 칼륨, 요오드 등 각종 무기염류와 비타민A, C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열량이 그다지 높지 않으면서 부피가 비교적 크고, 식이섬유 함량이 높아 금세 포만감을 준다. 과잉 섭취로 인해 살이 찌는 것을 방지한다는 연구결과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매생이는 어린이의 성장 촉진에 좋다. 골다공증, 위궤양 등을 예방하는 데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주가들의 술안주로도 으뜸이다. 술 마신 후 숙취해소에도 탁월한 효능을 지닌다. 콜레스테롤 함량을 떨어뜨리고 고혈압을 내려주며 변비 해소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니코틴을 중화시켜주는 효력도 지녀 애연가들에게 더 없이 좋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매생이는 다른 음식과 달리 뜨거워도 김이 많이 나지 않는 게 색다르다. 촘촘하고 가는 조직에 막혀 뜨거운 김이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탓이다. 그래서 뜨거운 줄 모르고 덥석 삼켰다간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지기 십상이다. '미운 사위에게 매생이국 준다'는 말이 나온 연유다.

매생이의 요리법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싱싱한 굴(석화)을 듬뿍 넣어 끓인 매생이국이 상에 오르면 시쳇말로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한두 그릇은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요즘엔 떡국과 칼국수, 부침개에도 매생이를 넣어 즐기기도 한다.

▲ 완도 화가마을 앞 매생이 어장. 대 막대 아래에서 매생이가 자라고 있다. ⓒ 이돈삼


▲ 완도 화가마을 주민들이 매생이를 채취하고 있다. 매생이 채취는 어선 밖으로 상반신을 드러낸 채 종일 이어진다. ⓒ 이돈삼


'매생이마을'을 찾아간다.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 화가마을이다. 화가마을은 강진 마량항에서 연결되는 고금대교와 약산대교를 차례로 건너서 만난다. 마을 앞 바다의 모양이 요강의 형세를 하고 있다. 겨울바람에도 물결이 잔잔한 이유다. 바닷물도 깨끗하다.

마을 옆으로 펼쳐진 바다가 드넓다. 그 바위에는 대 막대가 무수히 꽂혀 있다. 언뜻 보기에 김양식장 같기도 하지만 이게 매생이 어장이다. 발마다 초록의 매생이가 물살 따라 하늘거리는 매생이 어장은 지난해 10월 설치한 것이다.

어장에선 매생이를 훑어내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겨울 칼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에서, 그것도 어선 밖으로 상반신을 드러낸 채 매생이를 훑어내는 모습에 이내 몸이 먼저 오싹해진다.

매생이 채취는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고된 작업이다. 아낙들은 이렇게 배 위에서 고무장갑 하나 달랑 끼고 바닷물을 헤집고 있다. 매생이 한 올 훑어 입 안에 넣어본다. 부드러우면서도 사각거리는 게 진한 갯내음과 함께 전해진다.

▲ 매생이 채취는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고된 작업이다. 완도 화가마을 주민들이 매생이 채취를 위해 바닷물을 헤집고 있다. ⓒ 이돈삼


채취된 매생이는 곧바로 뭍으로 옮겨진다. 여기서 매생이는 맑은 물에 몸을 풀어 헹궈진다. 그 다음 물기를 빼서 적정 분량으로 뭉쳐진다. 그 모양이 영락없이 곱게 빗어 넘긴 아녀자의 쪽머리 같다.

주민들은 이 묶음 하나를 보고 '재기'라 한다. 1재기의 무게는 대략 450∼500g. 저울도 필요 없다. 대충 한 움큼 꺼내 손질하면 어김없이 1재기에 이른다. 매생이 포장상자에는 10재기가 들어간다. 이렇게 상자에 담긴 매생이는 중간 수집상의 손을 거쳐 도심의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 등지로 나간다.

"가격이 좋을 땐 하루 1000만 원도 벌었제. 한 재기에 4000원할 때가 있었는디, 하루에 2500재기만 훑어내면 그게 1000만 원이었어. 그래서 매생이 해갖고 아이들 가르치고 논도 사고 그랬제. 그런디 지금은 일할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그렇고 해서 어려워."

화가마을 조근봉(60) 어촌계장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은 겨울 동안 이렇게 작업을 해서 평균 3000여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농한기 부수입치곤 꽤 짭짭한 편이다.

▲ 조근봉 화가마을 어촌계장이 갓 채취한 매생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 이돈삼


▲ 바닷물 속에서 매생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매생이는 물이 깨끗하고 바람과 물살이 세지 않는 따뜻한 곳에서만 자란다. ⓒ 이돈삼


이처럼 매생이는 겨울 한철 농어가의 소득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매생이도 몇 해 전까지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 양식으로 살림을 꾸려가던 시절, 매생이는 김 농사를 망치는 훼방꾼에 다름 아니었다. 매생이가 김발에 붙으면 김이 빨갛게 변해 김의 상품가치를 떨어드렸다. 김 어장을 망쳐놓기 일쑤였다. "김 양식장에 떠도는 해적이나 다름 없었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해산물 신세도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천덕꾸러기였던 매생이가 지금은 복덩이로 변신한 것이다. 화가마을에서 김과 매생이의 처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은 매생이 발에 김이 붙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옛날엔 매생이 없애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제. 그런디 이것이 지금와서 금덩이가 될 줄 누가 알았겄는가? 지금은 매생이 발에 달라붙는 김이 웬수여 웬수."

매생이를 수확하는 아낙의 말에서 인간사 뿐 아니라 해조류의 앞길도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을 여운으로 남기고 매생이국 한 그릇 맛보러 간다. 벌써 매생이 특유의 향과 감미로운 맛이 입안에 감도는 것만 같다.

▲ 매생이는 생육환경에 민감하다. 육지로부터 약간의 오염물질만 유입돼도 생육에 지장을 받는다. 그래서 매생이는 '바다환경의 척도'라 일컬어진다. ⓒ 이돈삼


▲ 미운 사위한테 준다는 매생이국. 하지만 감칠 맛 나는 구수함이 일품이다. 겨울철 별미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맛을 본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찾는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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