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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때문에 '가짜 기사'를 썼어요

큰아들 새롬이 일찍 재우기 프로젝트 성공할까

등록|2010.01.23 11:45 수정|2010.01.24 16:28

▲ 글로 표현된 것은 쉽게 믿는 큰아들 녀석, 글을 좀 일찍 가르쳐놓으니 이런 좋은 점도 있더군요. ⓒ 윤태



설 쇠면 여섯 살 되는 큰아들 녀석이 잠을 일찍 안 자 걱정입니다. 세 살 되는 둘째 녀석과 떠들고 장난치고 책이나 만화도 보고 하다 보면 거의 밤 12시가 다 돼 잠을 잡니다. 그 시간은 엄마 아빠도 잠자는 시간이고 불을 다 꺼버리니 어쩔 수 없이 자는 겁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어린이집을 갑니다. 억지로 깨우긴 하는데 금세 정신 차리고 즐겁게 어린이집에 가곤 합니다.

어린이집에서 오후에 1시간 정도 낮잠을 재웁니다. 여하튼 이 녀석은 일찍 자려고 하는 의지가 없습니다. 이 또래 아이들 밤 9시 정도 되면 졸리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집 녀석들은 하품은커녕 늦은 밤까지 그렇게 떠들고(행동보다는 수다) 놀아댑니다.

그래서 몇 번은 밤 8시에 모든 불을 끄고 엄마 아빠는 물론 같이 사는 이모까지도 모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누워서도 쫑알쫑알 두 형제 녀석이 어찌나 떠들고 노는지... 여하튼 억지로 그렇게 하니까 1시간 정도 걸려 잠을 자게 되더군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착한어린이고 키 큰다고 말로 설명해도 먹히지 않는 큰아들. 도무지 일찍 자야 한다는 의지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엄마 아빠 이모가 모두 밤 8시부터 불 끄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큰녀석만 재워놓으면 작은 녀석은 자동으로 따라서 잡니다. 형아 하는 모든 것은 다 해야하는 시기이니까요.

그러다가 엊그제 정말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이 녀석 활자로 된 것은 뭐든지 잘 믿습니다. 글자를 좀 일찍 깨우쳐줬더니 그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가정통신문이나 주간, 월간 계획서 등을 비교적 꼼꼼하게 먼저 살펴봅니다. 지난해 말에도 산타 선물을 부담되지 않는 것으로 부모님께서 준비해 달라는 가정 통신문을 녀석이 먼저 읽고 왜 부모님이 준비하냐며 물어보는데 진땀 뺐습니다. 다섯 살 짜리가 산타할아버지의 실체를 알게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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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일찍 자야하는 이유는? ⓒ 윤태



여하튼 저는 왜 일찍 자야 하는지를 신문 뉴스 기사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아이가 읽기 쉬운 어휘를 이용해 그럴 듯하게 만들었습니다. 일찍 안 자면 키 안 크고 병에 잘 걸려 엄마 아빠와 떨어져 병원에서 살아야 하고 키가 작아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다는 게 가짜 기사의 골자였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요.

퇴근하면서부터 '너가 꼭 읽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무슨 할 말이 있냐고 몇 번이나 깐죽깐죽 대는 녀석. 밤 11시 30분에 가짜 기사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워낙 중요한 것이니까 동영상으로 촬영할 것이라고 이미 설명했습니다. 오늘 읽은 것을 까먹을지도 모르니 동영상으로 남겨야 한다고요.

그 기사는 주효했습니다. 그 가짜 기사를 읽자마자 바로 잠자리에 들겠다고 하더군요. 앞으로는 8시 정도에 일찍 잔다고 다짐까지 했구요. 그리고 혹시 자신이 그 사실을 까먹을지도 모르니 그 기사를 방문 앞에 붙여달라고까지 하더군요. 갑자기 모범생으로 확 바뀌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역시 활자의 힘이 컸습니다. 먹기 싫은 음식도 무슨 영양가 있고 어디에 좋다라고 인터넷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눈 딱 감고 먹는 녀석이니까요. 여하튼 이 녀석은 말과 글을 이용해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면 다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녀석입니다.

내일부터 주욱 지켜봐야겠습니다.

▲ 방문에 붙여 놓고 심각하게 가짜 기사를 보고 있는 큰아들 새롬이. ⓒ 윤태




▲ 제가 만든 가짜 기사입니다. 큰아들 녀석을 재우기 위한 프로젝트(?)지요. ⓒ 윤태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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