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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순이 이모 옷수선 가게

등록|2010.01.23 18:59 수정|2010.01.23 18:59

봉 ⓒ 송유미


우리 동네 순이 이모 옷수선 가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 불어도
하루도 빠짐 없이 문을 열지요.

청바지 줄여야 할 것
유행이 지난 자켓의 카라를 넓혀야 할 것
고장난 쟈크 갈아 끼울 것들
안 입은 한복으로 방석 만들어달라는 부탁…
일감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데도,

보조 시다 한 명 없이
노점 천막에서
달달달달달달
경쾌한 음악 소리 같은
미싱틀 밟으며,  
달달달달달달
뜯어지고 헤어진
우리네 남루한 삶처럼,

여기저기 솔깃 터진 데,
옆구리, 소매 뜯어진 데, 
표 안나게 천의 무봉 같은
솜씨로 곱게도 깁지요.

(이모, 나 정말 급하단 말이에요. 이 옷 입고 장례식 가야 해요.)
(이모, 난 내일 일찍 이 옷 입고 결혼식에 가야 해요.)
(이모, 이모, 난 더 급해요. 오늘 저녁 모임 갈때 이 옷을 입어야 해요)

저마다 들고 온 옷모양과 색깔이 다른 것처럼
옷 수선에 쓰이는 실 색깔도
저마다 살아가는 삶의 빛깔처럼
가지가지 색깔이지요.

남편이 IMF로 사업을 부도내자
살길이 너무 막막해서 
처녀시절 잠시 봉제공장에 다닌
경험을 살려 옷수선 가게 연지
어느새 십년이 훌쩍 넘었다는
우리 동네 옷 수선가게 순이 이모

이 추운 엄동설한에
손이 곱아 제대로 바늘에
실을 갈아 끼우지 못하면서도
혹시 불이 나면 어쩌나 싶어 
꽁꽁 언 손을 열나게 
무릎팍에 비벼가며
달달달 틀질 하지요. 

애써 힘들게 옷수선해 놓아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서 
임자 없는 옷들을 모아
고아원 양로원으로 선물한다는,
우리 동네 옷수선 가게 순이 이모,

오늘도 버리기도 아깝고
입기는 그런 옷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바느질감 속에서
해가 지고 달이 뜨듯이
한철 지나면,
유행이 바뀌는 
최신유행 속도를
따라잡는 듯 
달달달달달 
속도감 있게
미싱틀 밟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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