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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연합'은 진부하고 '진보연합'은 힘이 없고

[선거연합 논쟁③-기고] 시민사회가 연합정치를 바라보는 시각

등록|2010.01.25 18:17 수정|2010.01.29 16:20
진보개혁 야5당은 연합정치에 동의했다. 그러나 방법론에선 제각각 입장이 달랐다. 이제 그 다른 입장들을 조율해가는 과정이 남았다. 곧 선거연합의 결과로 후보단일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오마이뉴스>는 헌정사상 최초로 가치와 정책에 기반한 선거연합의 현실을 상세히 보도한다. 이 논쟁은 선거연합 과정에서 필요한 주의와 주장을 연속적으로 펴나갈 계획이다. 연합정치 가능성을 묻는 논쟁은 계속된다. 시민사회 입장에 대한 홍성태 교수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말>
2010년 6월 2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과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그 초점은 한나라당 지배에 맞서는 것이다. 특히 서울-수도권의 경우에 서울, 인천, 경기도의 3대 광역 지자체를 비롯해 사실상 광역과 기초를 막론하고 모든 지자체와 지방의회를 한나라당이 지배하고 있다.

나아가 호남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한나라당의 지배는 사실상 확고하다. 영남은 물론이거니와 충청, 강원, 제주에서도 한나라당은 사실상 지배라는 말에 걸맞은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지배는 이미 큰 문제를 드러냈다. 그것은 무엇보다 잘못된 정책을 잘못된 방식으로 강행하는 문제이다. 만일 한나라당이 올바른 정책을 올바른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면, 한나라당의 지배가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4대강 죽이기', '세종시 줄이기', '미디어법 개악' 등에서 잘 드러났듯이 한나라당은 잘못된 정책을 잘못된 방식으로 강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심지어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우려까지 크게 불거진 상황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구체적인 정책과 민생 차원에서 한나라당의 지배를 큰 문제로 여기고 적극 대응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마불사의 자세를 버려라?

이런 배경 위에서 야당과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한나라당에 대응하기 위한 '선거연합'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지배가 워낙 명확하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우려로까지 비화되어 있기 때문에, 야당과 시민사회의 '선거연합'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거연합'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제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의해야 할 사안이 대단히 많기 때문에 제대로 '선거연합'을 구성하기에는 시간이 크게 모자랄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이 논의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될 것인가? 이에 따른 정치적 노력은 과연 어떤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인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나라당의 지배에 대응해서 이 사회와 정치의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정치개혁 노력이 '선거연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난 20년 동안 시민사회의 정치개혁 노력은 공정선거운동, 낙천낙선운동, 당선운동, 참여운동의 순서로 변모해왔다.

이 과정은 정치에 대한 주권자인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심화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사회의 발전이자 정치의 발전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대체적 과정이 아니라 기존의 것과 함께 새로운 것이 추진되는 누적적 과정이었다.

선거연합 유권자운동 직접참여운동

이번의 지방선거에 대응해서 시민사회는 그 동안 누적된 다양한 성과를 최대한 살려서 다양한 정치개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사실 이미 시민사회는 크게 '선거연합', '유권자운동', '직접참여운동'의 세 방향으로 정치개혁 활동을 시작했다. 

'선거연합'과 관련해 가장 널리 쉽게 제기되는 논의는 '민주연합'과 '진보연합'에 관한 것이다. 민주연합은 세력으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며, 정책으로는 자유권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권과 경제권은 부차적으로 다루는 것을 뜻한다.

이에 비해 진보연합은 세력으로는 노동운동이나 민중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생 약소야당들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며, 정책으로는 사회권과 경제권에 초점을 맞추고 자유권을 오히려 부차적으로 다루는 것을 뜻한다.

민주연합은 큰 힘을 갖고 있으나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데 비해 진보연합은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나 큰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양 쪽이 서로의 장점을 강화하는 상승효과를 거두도록 하는 것이 '선거연합'의 핵심이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이미 크게 불거진 현실에 비추어 보자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거연합'은 민주연합과 진보연합의 실질적인 연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대마불사'의 자세를 버리고 거대한 기득권을 강력히 제어해야 할 것이며, 신생 약소야당들은 원칙론에 함몰되어 비현실적인 존재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와 진보가 대립되는 것처럼 제시되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민주연합과 진보연합 모두의 적극적인 자기성찰과 자기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칸트의 말을 빌려서 말하자면, 민주주의 없는 진보는 맹목이며, 진보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하다. 상대를 단순히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강화하는 '상승연합'이 되어야 한다.

표면상으로 '선거연합'은 조직을 달리 하는 정치세력들이 단일의 후보를 제시해서 선거를 치르는 것을 뜻한다. 선거는 특정한 사람을 시민의 대표로 선출하는 정치과정이고, 그런 만큼 조직을 달리 하는 정치세력들이 단일의 후보를 제시하는 것은 '선거연합'의 핵심을 이룬다. 그러나 단일의 후보를 제시하는 것이 '선거연합'의 전부는 아니며 본질도 아니다.

정략연합 아닌 정치연합이어야

'선거연합'은 권력과 이익의 배분을 노린 '정략연합'이 아니라 국가와 공익을 위한 '정치연합'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표면의 단일 후보보다 이면의 토의와 협상이 훨씬 더 중요하다. 험난한 이면의 토의와 협상을 거쳐서 표면의 단일 후보라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어떻게 토의와 협상을 해야 할까?

'선거연합'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단계의 논의를 통해 실질화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가치와 목표의 공유이다. 가치와 목표의 공유가 전혀 이루어질 수 없다면, '선거연합'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결코 상승효과를 이룰 수 없는 세력들의 '선거연합'은 그저 '정략연합'일 뿐이다.

이른바 민주와 진보의 '선거연합'이라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전제 위에서 민주주의, 복지주의, 생태주의라는 가치와 목표의 공유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 방식, 일정 등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평화체제의 바탕 위에서 민주주의, 복지주의, 생태주의를 추구해야 민주와 진보의 '선거연합'으로서 시대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책의 공유이다. 정책은 가치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이다. 가치와 목표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력을 행사하는 실제적인 동력인 정부조직과 재정구조에 대한 연구에 기반을 둔 정책을 제시하고 공유해야 한다. 그것은 실현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이어야 하고, 이 사회의 발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래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유권, 사회권, 경제권 중심의 틀을 벗어나서 환경권을 적극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선진국'은 오히려 환경권의 기반 위에서 자유권, 사회권, 경제권의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정책을 제시해야 비로소 시민들의 가슴과 머리로 다가갈 수 있을 수 것이다. '보수연합'의 후진적 정책들을 모방해서 시민들에게 제시하는 식으로는 결코 올바른 민주와 진보의 '선거연합'을 이룰 수 없다.

셋째, 권한의 공유이다. 가치와 정책의 공유가 이뤄지더라도 '선거연합'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시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공유하지 않는다면, '선거연합'이 참여하는 여러 세력들의 실질적인 연대로 확립될 수는 없을 것이다. 권한의 공유에서 핵심은 당연히 단일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부의 다양한 기구와 직책들을 적절히 공유해서 전체적으로 정부의 기능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정 세력에 대항해서 선거에 승리하는 것은 '선거연합'의 목표일 수는 있어도 목적일 수는 없다.

목표와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정책을 시정하고 올바른 정책을 실현해서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이를 위해 실제 주체들이 적절한 권한의 공유를 이루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렇듯 '선거연합'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과제부터 미시적인 주체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토론과 협상을 통해 실질적인 연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마도 실제 논의는 지역과 상황에 따라 훨씬 복잡하고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전면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되 일률적인 연대가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식 위에서 시민사회는 '선거연합'의 실현을 위해 다양한 조정과 압력의 활동을 펼칠 것이다.

민주당은 자신의 숨통을 조이는 기득권의 덫을 벗어버리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신생 약소정당들은 사회의 발전은 물론이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독자전술에 매몰되지 않고 연대정책을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시민사회의 정치적 독립

첫째, 토건국가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돈 많은 못 사는 나라'이다. 그것은 단적으로 복지는 미흡하고 국토는 황폐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지만 우리의 환경 질은 세계 130위권이다. 이런 극단적인 격차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진화'를 위한 초미의 과제이다. 토건국가 문제가 바로 그 원흉이다. 토건국가는 파괴국가이고, 투기국가이고, 부패국가이며, 따라서 구조개혁과 민생향상의 양 면에서 문제의 핵심이다.

매년 50조원이 넘는 혈세가 토건사업에 탕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4대강 살리기'에서 그 극단화에 이른 토건국가 문제의 개혁을 전면적으로 제기하지 않는다면, 민주와 진보의 세력은 언제까지나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토건국가를 복지국가로!'는 바로 지금 우리의 구호여야 한다. 물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복지국가는 생태위기 시대에 걸맞은 것이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파괴적인 토건국가를 생태적인 복지국가로 개혁해야 한다.

둘째, 정당 중심의 19세기의 정치관을 정당과 시민사회의 협치라는 21세기의 정치관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정당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선거연합'이나 '직접참여'와 같은 정치활동을 적극 조직하고 조정할 수도 있다.

시민사회의 정치적 중립은 올바른 정책의 시행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정치적 중립을 곡해해서 시민사회의 정치적 무력을 강요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시민사회의 정치적 중립에서 핵심은 그 정치적 독립이다.

더욱이 21세기의 고도로 발달하고 복잡화한 상황에 올바로 대응하기 위해서 정당은 정치와 정책의 양 면에서 시민사회와 협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사실 정당은 본래 시민사회에서 출현한 것이다. 시민사회는 정당의 모태이자 기반이다. 이런 점에서도 정당은 시민사회를 경쟁자나 장애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조력자이자 원동력으로 여겨야 한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낡은 이념의 간판을 내걸고 사실상 '관변단체'나 '정략단체'로 구실하는 '사이비'의 문제에 극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선거연합'은 임박한 선거를 목표로 해서 결성되는 일시적인 연대의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당장 눈 앞의 결과에만 급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의 개혁과 사회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만 '선거연합'은 비로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염불을 제대로 해야 잿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법이다.

이를 위해 요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도 하는 지혜가 필요하며, 사회의 발전을 통해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바라건대, '민주화의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뿐만 아니라 양극화 위기, 생태계 위기에도 제대로 대응하는 진정으로 선진적인 '선거연합'이 이루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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