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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아 이제 울지 마, 응?"

등록|2010.01.25 21:51 수정|2010.01.25 21:51
샛마루 공부방도 2주간의 짧은 방학을 마쳤다. 방학을 마치고 새롭게 공부방이 문을 연지 2주째, 오늘은 지난 해 내가 가르쳤던 3학년 아이들이 이제 4학년 준비를 위해 4학년 국어 교과과정을 공부하는 날이다. 내가 아는 친구 4명 지수, 혜진, 영미, 주영이외에 새로운 얼굴이 보였다.

"이름이 뭐야?"

난 새롭게 내가 맡게 된 친구에게 다정하게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이요? 난 이름 없어요." 

순간 '이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뇌리를 스쳤다.

"에이, 이름 없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지 말고 한 번 만 가르쳐줘 응?"

이렇게 여러 번을 실랑이를 벌리다가  옆의 친구들이 이름을 불렀고 민준이는 마지 못해 자기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이 민 준! 이렇게 예쁜 이름을 왜 숨기려고 한 걸까? 내심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지만 꾹 참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시의 운율과 느낌 그리고 시의 반복 되는 운율에 대한 내용을 공부 했다. 내용 학습을 마치고 아이들은 참고서의 내용을 읽고 문제지를 풀기 시작하였다. 지난 한 해 동안 매주 월요일이면 문제지를 풀었던 아이들은 익숙한 솜씨로 쉽게 자신의 공부를 해 나갔고 모르는 문제는 친구들과 의논도 하고 내게 묻기도 하였다.

그런데 민준이가 이상했다. 빨리 빨리 풀어도 부족할 텐데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책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내가 한마디 했다.

"민준아~ 어서 풀어야지. 본문을 읽어야지."
"읽으면 뭐해요. 재미 없어요."
"친구들처럼 잘 하려면 어서 어서 진행 해야지. 응?"

잠시 다른 아이들이 모르는 문제와 단어를 가르쳐주느라 고개를 돌린 사이에도 민준이는 계속 딴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면 옆의 여자 친구들을 향해 소리친다.

"시끄러, 빙신들아~"
"뭐라구? 국어 시간에 친구들에게 그런 말이 어딨어?"
"얘들이 자꾸 떠들잖아요."
"친구들이 문제를 풀다 모르는 건 선생님께 물어도 되는 거야. 그렇다고 친구에게 욕하는 건 아니지."

민준이에게 엄한 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머리를 숙이는 가 싶더니 민준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잠깐 그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10분이고 20분이고 민준이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마침 공부방에 도구를 가지러 오셨던 수녀님이 민준이를 보시고 바로 데리고 나가셨다. 친구들은 나머지 문제를 풀고 오답을 확인하고 자유 시간을 가질 동안 민준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민준이에게 말했다.

"친구들은 빨리 진도 나가고 잘 하는데 속상하지? 민준아~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네가 모르는 건 선생님이 가르쳐줄게. 속상해 말고 다음 주에 꼭 여기까지 숙제로 풀어오는 거야!"
"풀어 오면 뭐해요."

민준이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너도 잘 할 수 있어, 선생님이 도와줄게."

아이를 달래고 타이르고 한 다음 민준이와 다음 주에  숙제를 해 올 것을 억지로 손가락 걸고 약속한 다음 수녀님 방을 찾았다.

수녀님이 민준이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민준이는 어려서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너무 엄한 엄마 밑에서 많이 맞고 자란 아이였다. 재봉 일을 하는 엄마는 도박하면서 집에도 오지 않는 아빠 때문에 밤 12시까지 작업을 해야 했고 그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삶이 많이 버거웠을 것이다.  말을 안들을 때면 가혹한 체벌이 가해졌다고 한다. 처음 공부방에 왔을 때 엄마 모습을 그리라고 하자, 팔 없는 여자 모습을 그려서 모두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얼마나 엄마의 꾸중이 싫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내 머리도 한 동안 멍해지는 것 같았다.

교사 일지를 쓰고 공부방을 나오면서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민준이에게 인사를 하려고 살며시 다가갔다.

"민준아, 문제가 어려우면 선생님이 가르쳐주려고 온 거잖아. 그러니까 걱정말고 열심히 하면 돼 혹시 알아? 니가 나중에 우리 반 에서 1등하게 될지?"

민준이는 이제 마음이 좀 풀렸는지 조용히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가만히 민준이를 안아 주었다. 공부방을 나오며 머릿속에는 아까 고개를 흘리고 눈물을 뚝 뚝 흘리던 민준이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민준이가 다음 주에 만날 때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또래 친구들과 장난치고 즐겁게 공부하길 바라며 길을 걸었다.

"민준아 이제 울지 마. 응?"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놀고 있는 모습 공부방 아이들의 쉬는 시간 ⓒ 송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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