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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가족묘 잇단 도굴에서 '산담'을 보다

화장으로 변하는 추세, 조촐한 가족묘 아쉬워

등록|2010.01.29 14:41 수정|2010.01.29 14:41

▲ 제주 여행에서 본 밭 가운데 산담. ⓒ 임현철




롯데와 한화그룹 가족묘 도굴에 이어 태광그룹 창업자 묘까지 도굴한 기사가 떴다. 돈을 노린 도굴이었다. 짐승만도 못한 일이다.

이로 인해 떠오르는 장묘 문화가 있다. 지난 1월 초 제주 여행에서 본 '산담'이다. 산담은 산소의 '산'과 산을 둘러친 '담'의 합성어로 삶과 죽음의 경계인 돌담이다. 이는 제주의 독특한 장묘 문화이다.

산담 구조는 간단하다. 봉분과 비석으로 이뤄진 다른 지역 무덤과 달리, 봉문 주위로 사각 혹은 원형으로 담을 쌓아올린 것이다. "짐승의 침입을 막고, 산불이 났을 때 불을 차단하기 위함이다"고 한다.

대기업 가족묘 도굴 소식을 접하니, 제주의 산담처럼 짐승(도굴꾼)을 막기 위한 돌담을 쳐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제주 관광지 내에 버젓이 묘지가 있는 이유

제주에선 자연스레 밭과 오름, 산 등지에서 묘를 보게 된다. 유심히 보니 개인 소유의 관광지 내에서도 심심찮게 산담을 볼 수 있다. 왜 개인 땅에, 그것도 관광지 내에 버젓이 묘지가 있을까?

제주 토박이 양경만씨는 "제주에서 묘 자리가 한 번 서면 연고가 있든 없던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관습이 있다"면서 "예외가 있긴 한데 관공서에서 개발할 때 이장(移葬) 공고 후 일정기간이 지나야 이장 하는 것뿐이다"고 설명했다.

육지 같으면 분묘 물권이 없으면 바로 이장 조치하거나, 보상 후 옮길 텐데 제주는 그게 아니었다. 그제야 관광지 내에 있는 묘지가 이해된다. 시설물을 설치 시, 묘를 비껴 구조물을 설치하는 아량에서 제주다운 여유와 넉넉한 그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살아서는 모진 삶이었지만 죽은 후에는 편히 살기를 바라는 제주 사람 마음에서 섬 공동체의 훈훈한 인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철학으로 다가왔었다.

▲ 제주 관광지 내에도 이렇게 산담이 자리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아는 철학인 듯했다. ⓒ 임현철



화장으로 변하는 추세, 조촐한 가족묘 아쉬워

묘 자리 보는 지관에 대해 양경만씨는 "마을별로 있던 지관은 세습이었는데 요즘 이를 물려받을 후손이 어디 있냐?"면서 "연로하신 지관들이 돌아가시면 누가 대신할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육지나 섬이나 발복을 찾는 건 마찬가지나 보다.

그나저나 제주 장묘 문화도 바뀌고 있다. 밭과 오름 등에 산담을 두룬 무덤이 조성되면서 토지 잠식 등이 사회문제가 됨에 따라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하는 추세다.

"제주지역 화장률이 2004년 30%를 돌파한 후 2007년 41%, 2008년 43% 등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바람직한 일이다. 이렇듯 장묘문화도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는 추세이고, 수목장도 관심 받는 시대에 위세를 자랑하는 묘는 사라져야겠다.

생각건대, 대기업 가족묘도 조촐하게 조성됐다면 아마 도굴꾼 표적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덧붙이는 글 다음과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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